무난한 길이었다
대하소설처럼 거창하진 않더라도 뭔가 끄적이기라도 하고 싶은데, 무엇을 써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돌아본 지난 시간들.
아직 다 살진 않았지만
돌아보니 무난한 삶이었다.
장손 출산의 의무가 무거웠던 아빠의 자리 덕에 아들을 낳기 위한 테스트쯤으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내 뒤를 따라 태어난 남동생 또한 딱히 귀한 장손이라고 더 우대받을 것도 없는 가정형편이었던 지라 동생 밥상에 하나 더 놓인 달걀에 눈 흘길 일 없이 자랐고
푸른 잔디밭 위 디딤돌이 예쁘게 놓아진 근사한 양옥집에 살진 못했지만 없는 집 자식이라 어디서 홀대받진 않을까 걱정하신 부모님 덕분에 종종 자판기 커피 대신 찰칵, 캔커피 뚜껑을 딸 수 있었고
유리창이 쨍하게 추운 겨울날 아침, 오늘 하루는 진짜 진짜 학교에 가기 싫어 병이라도 났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 흔한 설사병, 열병 하나 없이 건강한 12년을 개근상과 함께 졸업했고
초등학교 때부터 남들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키, 남들 몸통만 한 다리통 덕분에 동네 무서운 언니 오빠들에게 주머니 한번 털릴 일없이 안전한 사회생활을 보내왔고
늘 고지대에 자리 잡은 덕에 홍수, 태풍 등 철마다 뉴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유리창 한 장 깨지는 일없이 뉴스를 보며 아이고 저 집은 어쩌나, 잠깐 품은 딴 집 걱정은 금방 잊은 채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고
나라가 IMF에 빚을 지게 되었다며 당장이라도 세상이 망할 것처럼 시끄럽던 대학생활 끝무렵, 욕심부리지 않은 덕에, (혹은 멀리 보지 못한 탓에) 튼튼한 중소기업에 취업한 훌륭한 자식으로 대학 졸업식에 부모님을 초대할 수 있었고
월급날마다 퇴사를 고민했을 만큼 적은 급여에도 불구하고 돈에 메이는 삶을 살지 않겠다며 절제도 저축도 없는 멋진 신세대인 척 살다가 월급이 통장을 스치다 못해, 마이너스 통장으로 구멍까지 파이게 만들었지만 중국 파견 근무 때 잠깐 주어진 넉넉한 주재비를 모아 빚 없는 경제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것이라며 비혼 주의자 인척 굴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0킬로그램이 넘게 살이 빠진 잠깐 사이, 나의 뚱보시절을 모르는 남편을 만나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고
(두 아이의 출산을 핑계로 곧바로 이전 체중으로 돌아갔으니 이건 거의 사기결혼이라 봐야 하는가)
인형 뽑기도 아니고, 딸을 낳을 때까지 출산을 감행하겠다는 나 혼자만의 다짐이 하늘에 들렸는지 어쨌는지 듬직한 아들 녀석에 이어 나와 똑 닮은 미니미 딸이 둘째로 태어나 이 어려운 시기에 셋째를 감행하는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회사에서 내가 필요 없다 할 때면 내가 필요한 회사가 나타나고, 일이 지겨워 똬리를 비비 틀 때쯤엔 새로운 현장이 나를 불러주고, 사람이 싫어 진저리가 날 때쯤 사람 좋은 사장님이 나를 찾아 주신 덕에 취업 걱정 없이 꾸준히 밥 먹고 살 수 있었고.
너무 무난한 삶이라 내 삶엔 글 거리가 없다.
그렇다고 인생을 뒤흔들 만큼 큰일이 생기거나, 감당 못할 만큼 큰 자연재해나 사고의 피해자가 되고픈 생각은 없다. 그저 심리적으로나 환경으로나 힘든 생활을 소재로 글을 쓰거나 작가의 실제 경험이라는 타이틀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작가가 되기는 글렀다는 아쉬움이 남을 뿐.
그나저나,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선 이 길을 잘 다지고 튼튼히 벽돌을 놓는 일일 텐데. 왜 난 늘 지나온 길에 눈을 박아둔 채 길을 걸어가는 것일까. 그러니 똑바로 걷지 못하고 흔들릴 수밖에.
앞으로 내가 걸어온 길은, 그 시간들 사이에 껴있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추억할 때만 돌아보는 걸로. 넘어지지 않고 내 앞에 놓긴 길들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