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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하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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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부장 Nov 08. 2022

어디서 일 할 것인가

자리가 직위를 만든답니다

**실수로 앞서 올린 글을 삭제해 버렸기에 다시 올립니다.  이미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업을 할 때 가장 부담이 되는 비용이 임대료라는데, 우리 사장님은 재물을 굴리는데 일가견이 있으신지 어쩐지, 일찍 사무실을 마련하셔서 그 큰 비용을 줄이고 있다.  

우리 사무실이 위치한 십 여동이 넘는 오피스 타운은 건물 전체 외관이 통유리 인지라, 멀리서 바라보면 번쩍번쩍, “나 여기서 일해!”라고 자랑을 하기에는 좋을만한 외관이지만 오후 시간이 되면 강렬하게 비치는 직사광선 때문에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서쪽을 향한 우리 사무실의 경우 통유리벽과 세로로 놓여있는 직원들의 자리와 달리, 통유리를 등지고 나란히 앉아야 하는 내 자리는 오후부터 창 전체를 통해 들어오는 직사광선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고 심지어 모니터에 비치는 반사광이 어찌나 눈을 자극하는지. 어느 시인의 “남南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를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리고 있다.




최근 들어 업무의 흐름상 자리 배치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원들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반응들이 심상치 않다.



두툼한 양 볼에 늘 심술이 가득한 투덜이 스머프 같은 직원의 불만은 햇볕이 강하게 비치는 자리에 앉기 싫다는 것이다. 누구는 통풍이 잘되는 창가 자리에 앉혀주고 왜 자기는 뜨거운 햇볕을 받는 곳에 앉아야 하나며, 이곳에 앉느니 차라리 햇볕이 강하지 않은 사무실 한쪽 텅 빈자리에 가서 혼자 앉겠단다.

혼자서 하는 일이냐 물었더니 입을 다문다.

그럼 조금 덜 햇볕이 비치는 자리로 옮겨 앉겠단다.

그래, 네가 불편하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거기 있다가 업무를 볼 땐 내 자리로 와서 서서 얘기해야 할지도 몰라.  내 앞에 너네 팀 두 명이 나란히 앉으면 소통이 편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배치한 거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부까오싱(不高兴 , 기분 나빠). 나만 불만인 거 아니야.”




그럼 또 누가 불만이냐

회사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제껏 관리자 대접을 받지 못한 직원에게 이제 업무도 바뀌었으니 내가 앉던 관리자 자리에 앉으라고 얘기했더니 역시 햇볕이 비쳐서 싫단다. 그리고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나만 옮기냐며 내가 쉬워 보이냐고 삐죽인다. 이전에 이런저런 사연으로 자리를 옮겼을  너만 옮긴  아니었을 테고, 무엇보다 너는 이제 직원들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인데. 책상이 커지면 책임도 커지는 것이고 그에 대한 대우도 달라질 것이라며 설득은 시켰지만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자리와 업무가 무슨 상관이냐며 일만 잘하면 되지 않느냔다.  직원이 앉던 자리는 햇볕 적당히 들고 바람도 솔솔 부는 창가 옆이라 투덜이 스머프 직원이 부러워하던 자리였는데 에휴. 점방 할머니도 아니고, 그곳에 앉아 가끔 몰래 꼬박꼬박 조는 것이 행복었을까. 이참에 파티션도  치워버릴까 부다.




중국사람들에게 자리가 직위를 만들어 준다는 말은 잘 안 통한다. 식당에서 중요도에 따라 앉는 자리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을 생각하면 관리자의 자리를 탐내지 않는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하긴. 중요한 외부 미팅이 약속된 날에도 트레이닝 바지에 푸석한 머리, 명함 한 장 없이 동네 앞 슈퍼를 가듯 출근하는 직원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아마도 아직 중국 사회생활에서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지 못 한 탓일 수도 있겠다.



정식으로 승진을 공지하는 빨간 도장이  찍힌 공문이 벽에  붙고,  자릿수가 급격히  바뀔 만큼의 급여를  받고 , 조그만 책상 하나 겨우 놓일 공간이라도  이름 박힌  하나 정도는 있어야 , 나도 관리자구나라고 생각을 하려나? 혹은 문화 대혁명 때처럼 도장 하나 정도는 허리춤에 차고 나를 평소 밥친구 정도로 여기던 동료들이 내게 굽신거리는 모양이라도 갖춰야 실감이 나려나.



한참 한국에서 이슈가 되었던 “태우기 사내 괴롭힘, 혹은 아부나 줄타기 같은 피곤한 관계 설정 없이 사회주의 가치관을 가진 국가답게 “동지로서 평등하게 일하는 것은 좋지만 이곳에서도 인간관계는 어렵다. 네가 미우니 너만 햇볕 쨍쨍한 들판에서 밭을 메라는 것도 아니고 네가 맘에 들지 않으니 문간에  앉으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불만을 들어줘야 싶어 피곤해졌다. 물론 그들의 의견에 따라 자리를 재배치해줄 생각은 없다.  불만 없이- 아니, 불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내색 않고 역시 햇볕이 강렬한 자리로 새로 옮겨온 직원 둘이 고마워서 음료수라도 쏴줄까 싶은데 햇볕이 드는 오후가 되니   조용히 챙이  모자를 꺼내 쓰고 일을 한다. 음료수는 접어두고  강력한 햇볕가리개나 골라 봐야겠다.



동지 여러분, 너무 그러지들 말아요. 나도 지금 관리자고 뭐고 큰 책상이고 뭐고 뜨끈뜨끈 굽혀 식빵이 될 지경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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