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았다는 건 축복이 아니다. 이건 처벌이다. 누군가는 ‘사는 게 어디냐’고 말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게 아니라, 단지 죽지 않았을 뿐이다. 그날 이후 나는 의식은 있었지만 감각은 사라졌고, 몸은 움직였지만 마음은 그 자리에 멈췄다. 나는 무너졌다. 산산조각이 나서 다시는 맞춰지지 않을 형태로 부서졌다.
뿌리째 뽑혀서 거꾸로 공중에 매달린 나무. 내가 느끼는 건 정확히 그것이었다. 땅을 밟지 못한 채 허공에서 흔들리며, 쏟아지는 비에 젖고, 바람에 얻어맞으며, 이대로 떨어질 날만을 기다리는 삶. 자라지도, 숨지도 못한 채, 그대로 흔들리는 하루하루.
죽음은 정직했다. 무례했지만, 정확했고, 잔혹했지만, 분명했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가져갔다. 눈을 마주치던 그 사람, 입술에 머물던 숨결, 내가 믿고 안긴 온기까지. 그 모든 것을 아무 경고도 없이 데려갔다. 남은 건 공허한 방과 꺼지지 않는 슬픔뿐이었다. 죽음은 불쑥 다가와서 하나를 데려가고, 남은 사람의 시간은 끊어버린 채, 얼어붙게 했다. 기억 속의 그는 생생한데, 현실 속의 나는 점점 희미해졌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아무도 그 말에 책임지지 않았다. 아무도 내 시간을 살지 않았다. 내 슬픔은 나 혼자 삼켰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하루가 아침마다 나를 깨워서, 그것이 형벌처럼 하루를 시작하게 했다. 울음을 참고, 다시 삼키고, 버티다 토하고, 결국엔 조용히 무너졌다.
이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이 죽고, 그 옆에 있던 사람이 남은 이야기이다. 비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하다. 그 단순함 속에서 나는 천천히, 정확하게 무너져갔다. 이 책은 그런 시간의 기록이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그 사람을 떠나보낸 나와, 그 후의 내가 썩어가는 이야기. 사랑이 끝난 이후, 모든 것이 부서진 그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버텼고,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대한 이야기. 사랑은 나에게 모든 걸 주었고, 그 사랑이 끝나자 모든 것이 무너졌다. 나는 지금도 숨을 쉰다. 하지만 이 숨은 생명이 아니라, 잔존이다. 그 사람이 남긴 빈자리에서, 사랑이 남긴 폐허에서 나는 오늘도 숨을 쉰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 애도이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한 ‘숨 쉬는 시체’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