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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씩한 스텔라 Oct 07. 2024

상간소 시작을 위한 상간녀의 개인정보를 알아내다

그녀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빼박영상까지  

2024. 8. 13. 화  

   

23년 2월 28일 오후 다섯 시가 다돼서 집으로 온 남편은 엄마와 바람 쐬러 강화도 갔다가 급하게 내려오느라 제사 음식을 하나도 못싸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녁은 양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양고기라는 말에 아이들과 나는 깜짝 놀랐다. 양고기라니... 우리 집 외식메뉴는 항상 무한리필집이었다. 지난해 어린이날 쿠우쿠우 가고 싶다는 큰애의 소원에도 거긴 비싸서 안된다며 단칼에 거절하고 기어코 명륜진사갈비에서 외식을 했던 유책이었다.  그런데 양고기라니... 저녁 외식 메뉴가 신기했던 둘째가 참지 못하고 질문을 했다.   


“아빠 승진했어?”

“승진은 안 했지만 승진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아.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비싼 거 먹는 거야”

신이 난 아이들은 지하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유책이의 차 앞으로 뛰어갔다.

눈을 뜬 채로 밤을 지새운 내가 조수석에 앉으려고 차문을 열자 유책이가 말을 걸었다

“너는 뒷자리로 가”

“어? 뭐라고? 내가 늘 조수석에 앉았잖아?”

“둘째야 아빠랑 같이 앞에 앉자, 너는 뒷자리에 타든지 아니면 오지 마”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큰애와 뒷자리에 앉았다.

언제부터인가 온갖 핑계를 대면서 나를 조수석에 못 앉게 하더니 이젠 애들 앞에서도 대놓고 나를 무시하는 태도가 상간녀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 익은 양고기를 아이들 먹기 편하게 놓아주면서 말을 걸었다.

“내일은 3.1. 절이니까 애들 데리고 유관순 기념관이랑 생가 다녀오자.”

“나 내일 출근해야 돼”

“무슨 공무원이 하루를 안 쉬고 출근이야? 누가 들으면 회사일 혼자 다하는 줄 알겠네”

“아빠 내일은 같이 놀자, 제발. 우리도 개학하면 바빠”

큰애도 아빠랑 놀고 싶었는지 끼어들었다.

“그래~ 오전에 잠깐 다녀오자 저녁에 아빠 회사 가야 돼”

기어코 내일도 나가서 상간녀를 만날 생각인 거 같았다.




3.1. 아침이 되자 아이들은 태극기를 단다고 부산을 떨었다.

주방에서 아침을 차리며 유책이 와 아이들이 태극기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유관순 생가까지 가는 길에도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내가 조수석에 앉으면 유관순생가를 안 가겠다고 선언한 유책이의 태도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는 조수석에 앉지 말고 뒷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와 큰애는 뒷자리에 앉고 둘째가 앞자리에 앉았다.

조수석에 못 앉는 게 크게 슬퍼할 일이 아닐 법도 한데 마음이 너무 서글펐다.     


유관순기념관에는 관람객도  많았고 작은 이벤트를 하고 있었는데 큐알코드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고  유관순 기념관을 돌아다니며 증강현실을 체험하는 것이었다. 핸드폰이 없던  둘째에게 유책이가 자기 핸드폰 비밀번호를 풀어서 체험하라고 줬다. 그리고 유책이는 큰애와 다니고 나는 둘째와 팀이 돼서 증강현실 체험을 하기로 했다.


순간 지금이 기회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애가 척척  증강현실 체험을 하며 유책이 와 진도를 나갈 때 나는 억지로 헤매는 척하며 뒤로 처졌다. 유책이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걸 확인하고 터져나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켜 가며 떨리는 손으로 카카오톡을 열어봤다.  젤 위에 남자 4명에 여자 1명 단체톡방이 있었다. 남자 4명은 다 내가 아는 유책이 친구들이었는데 여자사람친구가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직감이 왔다. 이 여자구나.

그 여자 프로필을 띄워서 전화번호가 나오게 한 다음 캡처를 하고 바로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 핸드폰으로 그 여자의 프로필이 넘어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한테 보낸 카톡 메시지를 삭제했다. 너무 긴장해서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단체톡방을 들어가 보니 가족모임을 같이 하는 동생 남편도 채팅 멤버였다. 대화 내용을 훑어보려던 차에 유책이가 오더니 핸드폰을 낚아챘다.


“너 뭐 하는 짓이야, 남의 핸드폰을 왜 봐! 너 뭐 봤어?”

“아니 본거 없어. 카톡이 자꾸 오길래 뭔가 했지 근데 별거 없네”

“그럼 별게 있겠냐?”

아차 싶었던 유책이는 태연한 척하면서도 둘째가 아무리 애원해도 절대로 핸드폰을 주지 않았다.

상간녀라고 저장해 놓고 카카오톡 친구목록에 뜨는 걸 확인했다 프로필 사진을 보니 사진 속 그 여자가 맞았고 지하주차장에서 본 그 여자가 맞았다.     




바람피운 남편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상간녀와 헤어지게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상간소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상간소를 시작하려면 최소한 전화번호와 이름 세 글자를 알아야 했는데

이날 상간소를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수집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여수 호텔  체크인 체크아웃의 동영상 확보였다.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여수호텔에 증거보전 신청을 해야 하는데 상간소가 민사로 바뀌면서 숙박업소의 협조가 의무가 아니라고 했다. 흔히 말하는 빼박증거를 확보하려면 모텔이나 호텔의 협조가 필수일 텐데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경찰의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외도를 해도 안 걸리면 그만이고, 걸리더라도 오리발을 내밀면 된다. 증거를 수집하는 건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피해자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소송이라도 해서 두 사람을 혼내주고 싶은데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증거수집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책이가 예약한 여수의 그 호텔은 그나마 이름 있는 호텔이었기 때문에 cctv 영상 보존기간을 길게 한 달로 보고 지워지기 전에 업체에서 영상을 받아야 했다. 내가 섣불리 호텔에 연락했다가 일이 틀어질까 겁이 나서 변호사 사무실에 의뢰하기로 했다.


증거보전 220만 원 변호사 수임료 440만 원

순식간에 660만 원이 나갔다.

알토란같이 모아 놓은 적금을 깼다. 큰애 초등학교 졸업하면 다 같이 해외여행 가려고 열심히 모았던 돈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그래도 유책이만 정신 차린다면 아깝지 않다고 나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때 당시 나는 무급휴직 중이었고 매월 가계부를 써서 유책이에게 검사를 받았다. 유책이는 가계부 항목을 일일이 따져본 후 정말 순수하게 생활비와 아이들에게 쓴 돈만 나에게 보내줬다.


예를 들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 비용은 내가 날 위해 쓴 돈이기 때문에 생활비에서 받을 수 없었다. 관리비도 1/4로 나눈 후 3/4만 받았다.  


주식에서 손해가 많아 대출 이자 갚기도 버겁다는 말을 믿었다. 오죽 돈이 없으면 그럴까 싶어 다 이해하고 받아줬다. 빚내서 주식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지만 푼돈으로 주식해서 언제 돈 버냐며 내 동의도 없이  신용대출을 받더니 이자를 내기도 힘들다고 나만 보면 죽는소리를 했다.  생활비를 제때 안 줘도 내가 번돈으로 쓰면 되니 괜찮다고 했는데 이제는 내가 회사를 쉬고 무급인걸 알면서도 유책이는 지갑을 닫아 버렸다.           



돈을 들인 보람이 있었는지 변호사사무실에서 진행한 증거보전은 성공적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의 실장님의 전화가 왔다.

“사모님, 체크인하는 날 사장님이 여자분 허리를 감싸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은 확보했는데 그날 탄 엘리베이터 cctv는 고장 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엘리베이터 영상은 없어요.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둘이 객실로 들어가는 복도 영상 확보했고요. 여자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긴 한데 그날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랑 비교해서 옷차림으로 동일여성이라고 주장하면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둘이 객실에서 나오는 복도 cctv 영상 있고요, 다행히 체크아웃하는 날 탄 엘리베이터 cctv영상은 있더라고요. 근데 뭐 딱히 애정표현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럼 바로 소송 시작 하나요?”

“그건 아니고요, 호텔에서 cctv영상을 순천지법으로 제출하기로 했어요. 그럼 사모님이 순천지법에서 영상 복사를 해오신 다음 저희에게 보내주셔야 합니다.”

“네? 제가 직접 순천까지 가야 된다고요???”

변호사사무실에 맡기면 알아서 다 해주는 줄 알았더니 tv드라마에서나 변호사가 다해주지 현실은 수임료는 수임료대로 내고 서면작성부터 증거 수집 및 정리는  소송을 시작한 원고의 몫이었다. 

유책이 덕분에 나는 순천을 당일치기로 갔다 와야 하는 미션까지 부여받았다.      


둘이 여수여행을 다녀온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직접 영상으로 확인하는 것은 또 달랐다.

복사된 영상의 플레이버튼을 못 누르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제대로 복사가 안되면 순천을 다시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떨리는 마음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그 둘은 부부 같았다.

로비에서 객실 키를 받은 유책이는 그 여자를 보며 다정하게 웃고 자연스럽게 그 여자 허리에 손을 감싸더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객실로 들어간 그 두 사람은 다음날 체크아웃 시간이 다 돼서야 나왔다.

더 볼 수 없었다.

제대로 복사된 것을 확인하고 변호사사무실로 보냈다.

이제 계약서 작성하는 일만 남았다.

대표변호사님 면담은  재판 없는 날로 약속을 잡고 상간소를 위한 서면작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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