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살려고 날 만난 거라고 생각해
2024. 8. 27. 화
뇌 mri를 찍는 날, 그날 바로 판독도 해주신다고 했다. 사실 뇌종양이라고 말만 들어봤지 내가 그런 병에 걸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 찍어보는 mri가 뇌종양 때문이라니 여전히 믿어지지 않아서 지금이라도 나에게 “지금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라고 말해주길 소원했다.
사실 살면서 두통이 있긴 했지만 죽을 만큼 아픈 것도 아니었고 두통이 없는 날이 더 많았으며 두통이 올 때면 흔한 진통제로도 괜찮아졌었다. 어떤 날은 찬물로 머리만 감아도 진정되는 날이 있었는데 틀림없이 오진일 거라고 생각했다.
옷을 갈아입고 mri실로 들어가는 데 낯선 여자가 날 보며 아는 척을 했다.
“ 스텔라 언니 맞아? 언니 나야, 홍신이 ”
단번에 날 알아본 그 여자와 달리 나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 퍼뜩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당황하는 나를 알아챘는지 24년 전에 같이 아르바이트했었던 동생이라고 말했다. 아 기억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알바를 했었는데 그때 같이 일했던 동생이었다.
그때 나는 닭꼬치를 구웠고 홍신이는 라면을 끓였다. 겨울 등산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곳으로 바처럼 생긴 가게였다. 한쪽면이 거의 뚫려있는 원두막 같은 구조로 손님들에게 라면이나 닭꼬치 소시지 등 간단한 간식을 팔았다. 서서 일하는 매장이어서 매서운 산바람을 그대로 맞아가며 일을 했었다. 일주일도 못하고 도망가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우리 둘은 겨울시즌이 끝날 때까지 같이 일했다. 나 또한 너무 추워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양말을 겹쳐 신고 털신을 신어도 발이 시려서 바닥에 박스를 몇 겹 씩 깔고 일했다. 어떤 날은 눈발이 들이쳐서 그대로 눈을 맞아가면서 일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마음이 잘 맞았고 같이 일했던 여사님이랑 케미가 좋아서 우리는 시즌마감 때까지 같이 일했다.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고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달리 도망치지 않는 나 자신이 뿌듯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는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었다. 근데 그 동생을 24년 만에 병원에서 다시 만난 거였다.
“어머 홍신야, 이게 웬일이야, 나를 어떻게 알아봤어?”
“간호사가 스텔라 님 오셨냐고 부르고 다니던데 언니 성씨가 흔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아는 언니인가 했거든. 근데 언니가 오더라고, 얼굴을 보니깐 20살 때 얼굴이 남아있더라. 그래서 나도 알아봤지ㅎㅎㅎㅎ”
“나는 못 알아봤는데 그때도 야무지더니 여전히 눈썰미도 좋고 야무지네. 여긴 어떻게 왔어?”
“엄마 유방암 검진 때문에, 언니는?”
“나는 의사가 mri 한번 찍어보자고 해서”
“언니 전화번호가 뭐야. 찍어봐 내가 이따 연락할게. 검사 잘 받고”
“그래. 세상에 병원에서 널 만나다니, 너 여기 살아?”
“아니 나는 인천 살아. 엄마만 여기 살고 엄마 병원 같이 가야 돼서 잠깐 내려온 거야.
오늘 바로 인천 가야 돼”
“응 담에 내려오면 꼭 연락 줘 밥 한번 먹자”
“응 언니 알았어 검사 잘 받아~”
mri는 소음이 커서 귀마개 두 개를 착용해야 하며 조영제 넣기 전 후로 나눠서 찍고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 사진이 정확하게 나와야 하니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당부, 기침이나 침도 넘기면 안 된다는 주의를 들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 같고 목안이 깔깔한 게 기침이 날 것 같았다. 촬영 중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의 이런 쓸 잘 데기 없는 걱정과는 달리 별 탈 없이 촬영이 끝났고 두어 시간 대기 후 신경외과 교수님 판독설명을 들었다. 역시나 나의 머릿속에는 종양이 있는 게 맞았다. 나이도 아직 젊고 종양이 계속 커지면서 주변조직을 압박할 것이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다음 외래 올 때는 보호자를 데리고 와야 한다고 했다.
mri 촬영으로 외출을 낸 것이라 외출 시간이 끝나기 전에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데 무너지는 마음에 병원 건너편에 있는 회사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도로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눈물에 앞이 안 보여 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벤치에 앉아 다 큰 어른이 창피한 것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결국 내가 뇌종양이라니, 아직 어린 우리 애들은 어쩌라고... 내 팔자도 진짜 불쌍하구나
한참을 울었더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시간은 이미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8월 땡볕아래 벤치에서 엉엉 울었더니 목도 마르고 진이 빠졌다. 엉망인 얼굴로 다시 사무실을 들어갈 수가 없어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수를 했다. 어색하게 사무실에 들어가서 늦어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괜찮다며 결과는 잘 나왔냐고 물으셨다.
차마 입이 안 떨어졌지만 앞으로 병원 다닐 거면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의사한테 들은 소견을 사실대로 말했다. 나에게서 시작된 무거운 공기가 사무실을 가라앉혔다. 이런 일로 회사에서 주목을 받게 되다니, 앞으로 나는 승진은 못하겠구나.
점심을 같이 먹자며 홍신이한테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점심은 내가 사야지 마음을 먹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인데 처음부터 동생이 밥을 사게 하기는 싫었다. 현실의 나는 40대에 애 둘 딸린 이혼녀였지만 홍신이를 만나면 20살 때 나로 돌아간 거 같았다.
“자주 못 온다더니 벌써 다시 왔어?”
“응 여기서 교육이 있어서”
“그랬구나, 오늘은 언니가 살 테니깐 많이 먹어”
“그럼 좋지. 근데 언니 저번에 mri는 왜 찍은 거야?”
“아.... 그게 사실대로 말하면 나 그날 뇌종양 진단받았어”
“뭐라고????? 언니 거짓말이지? 나이가 몇인데 우리가 벌써 뇌종양이야? 아냐. 거짓말하지 마”
“에휴 나도 거짓말이면 좋겠다.”
24년 만에 만난 사이였지만 대화에 어색함이 없었다. 그간 우리는 각자의 테두리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니면서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넌 뭐 해?”
“나 네일숍 해. 내 가게 차려서”
“우와 그럼 사장님이네 멋있다. 나는 그냥 회사 다녀”
“언니 그때 대학교 간다고 해서 알바 사장님이 회식했잖아. 나는 대학 안 갔어. 공부도 못했고 소질도 없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네일 배워서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다가 내 가게 차린 지 좀 됐지”
“대학 필요 없어. 네 가게면 애 키우면서 할만하겠네. 네 맘대로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처음에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일 배울 때는 애들이 불쌍해서 매일 울면서 다녔어. 일이 10시 넘어서 끝났거든.”
“열심히 살았네. 고생 많았어.”
“언니, 내가 사실 네일숍 하면서 시간이 많이 남아서 부업을 하나 더 시작했어”
“그래. 좀 쉬지. 뭔데?”
“네트워크 판매”
“네트워크 판매가 뭐야?”
“어.. 그게 쉽게 말해서 다단계 라고 하는 건데,
나는 그날 병원에서 언니가 살려고 날 만난 거라고 생각해. 언니 뇌종양이라는 것도 결국 암인데 몸에 독소가 쌓인 거야. 몸 안의 독소를 해독하고 우리 제품 영양제로 체력을 쌓아야 돼. 이거 미국에서는 엄청 알아주는 영양제이고, 우리나라 국가대표들도 많이 먹는 거야”
내가 살려고 홍신이를 만났다는 말이 가슴에 와서 콱 박혔다. 홍신이는 미리 준비해 둔 팸플릿을 펼쳐 보였다. 무슨 해독 프로그램이 한 달 기준 70만 원이 넘었고 무슨 성분이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영양제는 30만 원이 넘었다. 합해서 한달에 돈 백만원이 드는 프로그램을 몇달은 해야 한단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때 당시 나는 가볍게 밥 먹으려고 나왔는데 날 위해 이런 걸 준비한 홍신이가 고마웠다. 계속되는 홍신이의 설명은 끊김이 없었다.
“언니, 언니만 원하면 언니 몸에 맞게 설계해 줄 수 있어, 나는 그날 우연히 언니가 날 만난 게 하늘이 언니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준거라고 생각해. 내가 다음 주에 아는 선생님이랑 같이 내려올게. 이거 한번 진행해 봐 언니 뇌종양도 금방 나을 수 있어. 우리 제품 먹고 암 나은 사람 진짜 많아.”
정말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줬구나.
내가 이것만 먹으면 살 수 있다니.
뇌종양 진단받은 날 그것도 병원에서 홍신이를 만난 게 하늘이 날 도운 거야.
이것만 먹으면 몸 안의 독소가 해독되고 뇌종양도 낫는다니.
역시 나는 운이 좋아.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내 마음은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혹해진 마음에 나는 팸플릿을 받아왔고 주말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고 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여차저차 설명을 하며 이 약을 먹어보고 싶다는 나에게 언니는 쌍욕을 퍼부었다.
정신 차리라는 말과 함께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나의 행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언니를 설득하기 위해 길가는 사람들보다
뇌질환 환우들의 카페에 글을 올렸다.
카페 회원들의 오해가 없도록 동생과의 인연과 동생이 하고 있는 네트워크 판매약에 대해서 들은대로 자세히 썼다.
내 글은 겨우 반나절만에 댓글이 50개가 넘게 달렸고
댓글의 대부분은 절대 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머리에 바르면 암이 없어지는 연고가 있다고 해서 비싼 돈 주고 샀는데
받아보니 빨간약이었다며 나에게 제발 사지 말라는 댓글.
세상에 그런 약이 있으면 누가 수술하고 항암하겠냐며 질책 댓글.
암환자들에게 간수치 조절은 매우 중요하고, 뭘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약을 먹으면 안된다는 댓글.
아픈 사람 상대로 이런 영업은 매우 흔한 수법이며 받아주면 끈질기게 연락하니 조심하라는 댓글.
24년 만에 만난 사람이면 생판 남이니 옛정 생각해서 팔아줄 생각하지 말라는 댓글.
마음 약해진 언니를 상대로 약을 팔다니 인간같지도 않은 사람 이라며
차단하고 어떤 연락도 받지 말라는 댓글.
어느 하나 틀린말이 없었다.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더니, 낯 뜨거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눈뜨고 사기당해도 이상한 게 없을 정도로 현재 상태가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