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아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교내 언론사, 학생회 활동에 전념하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우리 제자. 수많은 선생님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대접을 받기도 하면서 학생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애쓰던 녀석. 학생회장으로 1년간 고군분투하다 지쳐 버렸나보다.
# 그의 생각.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힘들고, 자신을 불사르더라도 인정받을 수도, 추구하는 가치를 이룰 수도 없다. 한번 사는 삶을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다. 누군가가 나의 삶을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손을 놓아도 어차피 세상은 진보할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너무 지친다.
# 나는 그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
가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일, 어려운 일이잖아. 쉽사리 결론에 도달하거나 성과를 손에 쥘 수가 없는 일이니까, 지치기도 쉽고. 투쟁을 업보마냥 짊어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네가 하고 있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분명 있지 않을까? 금방 지치고 포기하고 싶고.
현실적으로는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이 정의니, 자유니 하는 것들만을 추구하며 사는 삶을 꾸리는 것이 애당초 가능하기는 할까? 무리하지 말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남들보다 조금씩만 더 투자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 혼자 세상의 진보를 짊어진 것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잖아.
이 글에서 너는 당장의 행복을 찾아 정의를 포기하는 것마냥 썼지만, 내가 아는 너는 분명 행복을 찾아가는 마당에도 부정, 불의 등을 쉽사리 지나치지 못할걸. 아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계속 무언가 시도하겠지. 그 과정에서 다시금 즐거움을 얻기도 하겠지. 그러니 가치 있는 삶을 포기하는 듯, 비난 받을 만한 일을 하는 것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말이 길었네. 요지는, 쉬엄쉬엄 걷자고. ^^ 지칠 때는 쉬어가는 거라고. 네가 즐거운 삶을 살라고. ^^
*
나는 학교에서 벌떡 교사로 살아오지 못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이해 관계, 쉽사리 풀릴 수가 없는 문제들 사이에서 갈등하기만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심할 때는 '이런 내가 학교에 머물며 다음 세대와 마주하는 것이 옳은가.'하는 생각으로 침잠하기도 했다.
다행인 건 여러 번 침잠하고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이제는 내 나름의 템포를 찾아가는 듯하다는 것이다. 함께 진보를 꿈꾸는 이들에게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은 덕에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 그래서 지칠 대로 지친 우리 제자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사실은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