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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듬 Dec 02. 2020

신설 학교에 대한 단상

혁신 학교? 자율 학교?

우리 동네에 새로운 학교가 들어선다. 내년 개교 예정인 유초중 통합 학교이다. 우리 지역은 소규모 학교가 많은데, 도시 구역의 인구 밀집으로 어쩔 수 없이 소규모 학교 몇 개를 잃으면서 통합 학교 하나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소규모 학교들을 폐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 경제적 논리일 수밖에 없고, 좁은 부지에 재학생이 1000명이 넘는 유초중 통합 학교가 들어서게 된 것도 경제적 논리이다. 예산을 최소한으로 들이면서 학구의 학생들을 최대한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이 덕분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하나의 운동장, 급식소, 체육관, 특별실 등을 함께 쓰며 지내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시골의 작은 규모 학교라면 동네 누나 언니 형 오빠 동생들이 사이좋게 등교하고, 서로 놀이 장소나 놀잇감을 나누고 양보하며 지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이건 규모가 커도 너무 크다. 초등학교 6개 학년 각 3개 학급 이상, 중학교 3개 학년 각 4개 학급. 학급만 총 30개 학급이 넘는 대규모 학교가 과연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살 수 있을까. 초등 입전학 예상에 따르면 이미 학급조차 과밀 학급이 될 예정이라 하니, 수많은 학생들이 좁은 학교에서 얼마나 부대끼며 살게 될지 걱정이 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일과표 다르다. 초등이 40분 수업할 때, 중학교는 45분 수업을 한다. 특별히 쉬는 시간을 조절하지 않는다면 쉬는 시간이 일부 엇갈리는 상황이 생긴다. 누군가는 학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노는 중에 누군가는 수업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특별실은 떻게 이용할 것인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시종 시간이 달라 살짝 걸쳐지는 시간 때문에 특별실 이용이 아예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는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초등학생들과 중학생 다수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을까. 신설 학교라 당연히 업무가 많을 것이 분명한데 행정실은 하나이고, 행정실의 인원이 두 학교를 운영하는 만큼 배정될 리도 없다. 교무행정사도 충분히 배정이 될까. 교무행정사가 학급 수에 따라 배정이 잘 된대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운영 지원을 동시에 잘해 줄 수 있을까. 교사들은 통합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문화와 풍토가 다른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들이 협력적으로 잘 움직일 수 있을까. 병설 학교보다 더 긴밀한 통합을 추진하는 학교가 정말 병설 학교만큼이라도 해 낼 수 있을까.


게다가 도교육청 지침상 신설 학교는 모두 혁신 학교로 지정한다는 소식에 학부모들은 전전긍긍이다. 학부모들은 혁신 학교의 학력 저하, 정치적 편향 교육(?), 페미니즘 교육 사례(?) 등 온갖 근거를 찾아 실어 나르며 ―그것이 합리적 판단인지 아닌지를 떠나― 혁신 학교에 반기를 들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교육 혁신에 뜻있는 선생님들이 신설 학교를 위해 준비하고 일해 온 사실을 아는 나는, 학부모들이 혁신 학교의 문제점이 무엇이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에 의지해 덮어놓고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이 든다. 열심히 가르치고 함께 성장하려 노력하는 교사들이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교육과정에 자율성을 주면 절대 안 된다'는 학부모의 민원을 전해 듣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답답하다. '국가 교육과정을 고대로 실현'하는 것이 교육 전문성이 아닌 시대인데, 교사들에게 자율성을 주면 안 된다고 하니 오늘날 교육의 흐름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런 학부모들의 민원이 나를 향한 것도 아닌데, 괜히 교사 집단에 속한 나도 덩달아 욕먹고 있는 기분마저 들어서 내가 다 방어를 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은 편향적 교육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것이다. 수업과 평가를 개선하는 것이다! 획일성과 타율성을 낮추고 더 나은 교육을 위한 것이다!' 하고 말이다. (실제로 그럴 수 없지만) 어쨌든 학부모들은 교육청에 민원 전화를 넣어야 한다고, 연대 서명을 하고 교육감을 직접 만나야 한다고 단단히 뿔이 났다.


학부모들이 민원 전화와 국민신문고 민원 등의 인증 글을 올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교육청도 난리가 났겠다 싶다. 학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치는 통에 장학사는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을 게 뻔하다. 하루는 학부모들의 원성에 못 이겨 급히 혁신 학교 간담회를 하겠다더니 그것마저 취소하고 단 하루 만에 혁신 학교 철회를 선언했다. 자율 학교 지정과 교장 공모제는 유지를 하려는 모양인데, 이마저도 혁신 학교를 위한 발판이라는 꼬투리가 잡혀서 쉬이 넘어가려나 모르겠다.


학교 개교를 3개월 앞둔 상태에서 예견되는 문제점을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도 모자랄 판에, 학부모들과의 갈등과 불화가 점점 커지고 있는 모양새이다. 갈등과 불신을 모두 해소하지 못하고 개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시작하면 개교 후에도 쉽사리 학교가 안정 궤도에 오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다.


이 상황을 보며 나는 학부모들이 교육 혁신에 앞장서고 학교 안팎으로 열심히 일하는 교사들의 기를 꺾어 놓지 못해 안달일까, 교육 현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무턱대고 반대만 하고 있을까 원망스럽다는 감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며칠 동안 감정을 내려놓고 이해하려 해 보니, 비단 학부모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통합 학교. 교육 당국은 교육을 더 잘할 생각보다 교육에 돈을 덜 쓸 궁리가 급하고, 그 결과로 제대로 시험해 보지도 못한 '통합 학교'를 다짜고짜 학부모들에게 들이밀었다. 통합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정리가 잘 안 되어 교사들조차 우왕좌왕하는 상황인데, 학부모들에게는 어떨까.


혁신 학교. 교육청은 자신들이 십 년 가까이 추진해 온 혁신 학교가 무엇인지, 지금껏 어떤 교육 과정을 운영해 왔으며 실제로 학력 저하는 없었는지 학부모들에게 설명한 적이 있었을까. 학부모들이 '혁신 학교가 되느니 차라리 학급당 학생 30명 이상인 과밀 학급이 낫겠다'는 말을 하게끔 누가 만들었나. 코딩이니 A.I.니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재구성과 많은 재정 지원이 필요하고, 이러한 측면에서 일반 학교보다 혁신 학교의 여건이 낫다는 것을 설득은 해 보았나. 학부모의 민원에 순식간에 철회해 버릴 정도로 줏대 없는 교육 철학이라면 애초에 왜 하겠다고 고집했을까 싶을 정도이다. 정말 아무 성과도 없는 실험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려고 했다는 오명을 쓰고 끝내겠다는 얘긴가 싶다. 자율 학교는 일반 학교에 비해 무엇이 낫고, 새 학교에 교장 공모제가 필요한 근거가 무엇인지 알려는 주었는가. 자율 학교든 혁신 학교든, 우리는 학생들을 잘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노라, 학부모들을 안심시킬 만한 신호는 보냈는가.


불안은 무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알지 못하는 것에 확신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설 학교에 입전학할 학생들도, 자녀를 입전학시켜야 하는 학부모들도 마찬가지겠지 싶다. 학부모들이 신설 학교의 교육 방향을 우려하고 혁신 학교 지정을 불안해하는 이유는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아이가, 대다수가 다니는 학교와는 좀 다른, 검증되었는지 알 수 없는 교육 방식으로 배우게 된다는 것, 게다가 단 몇 년만 지나면 타 학교 학생들과 똑같이 상급 학교 진학을 하여 입시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 과연 이러한 과정에서 낙오하지 않게끔 최소한 동등하거나 더 나은 교육을 해 줄 수 있는 학교인지 모르겠다는 것. 통합 학교든, 혁신 학교는 단순 신설 학교든 이러한 불안들을 해소시켜 줄 만한 노력이 없다면 학부모들은 앞으로도 계속 불안해하고, 학교가 하는 일을 불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누가 잘못하고 있는지 선명해 보인다. 교육청에서도 제각기 신설 학교로 인해 부단 애쓰고 있을 것이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리라는 사실을 안다. 나는 외부인이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어쨌든 학교는 세워지고, 내년에 개교를 할 것이다. 더 나은 교육을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면 이제라도 주춧돌을 다시 바로 놓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 공동체의 신뢰와 지원 없이, 더 나은 교육은 어림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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