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보통의 그런 날
나는 내가 결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막연히 빨리 어른이 되어 30살쯤에는 내 집도 마련하고 쉬엄쉬엄 살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지냈던 것 같다.
24살이 되도록 연애도 제대로 못해봤던 내가 27살에 친구들 중 가장 빠르게 결혼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내가 결혼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엄마가 혼자 우리 남매를 힘들게 키웠던 모습을 옆에서 봤기 때문이다.
158cm에 38kg라는 가녀린 체구의 우리 엄마는 3교대 공장을 다니며 나와 내 남동생을 키워냈다.
열심히 모은 자산으로 마련한 아파트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우리 집은 그렇게 정부지원은 받지 못하고 급여로 생활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 사교육은 꿈꿀 수 없었다.
그런데 욕심은 많아서... 청소년을 위한 무료 강연이나 교육은 빠짐없이 듣고 참여했었다.
남몰래 연극배우의 꿈도 키웠지만... 중학교 3학년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준다는 이야기에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예전에는 일명 여상으로 불렸고, 내가 입학할 때는 특성화고등학교라고 불렸다.
그렇게 입학해서... 열심히 학교 생활하고... 어쩌다 보니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은행에 취업도 했다.
물론 적성에 너무 안 맞아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퇴사했다.
내가 목표한 1억이라는 돈을 달성하고 퇴사한 뒤 정말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걸 다하면서 살았다.
어린 시절 착실한 학생이었는데, 사회인이 되고 나서 주어진 자유에 반항하는 청춘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바보 같을 정도로 아낌없이 사랑해 주는 남편에게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돈보다는 사랑이지라는 생각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2년 연애하고, 내가 프러포즈를 해서 연애 3년 차에 우리는 결혼하게 되었다.
2019년 10월, 그때 왜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는지 진짜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이 사람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야 내가 벌면 되는 거고,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남편을 엄청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연애 상대도 남편이 처음이었기에 비교군이 없었다.
다만... 남자 사람 중에 남동생을 제외하고 누군가에게 다 해주고 싶었던 건 남편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남편을 사랑한 거겠지? 싶다.
처음 친구들은 남편을 보고... 돈이 많은 줄 알았다고 한다.
9살의 나이차이, 학창 시절 때부터 비혼을 외치던 내가 결혼을 결심했으니..?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나의 자존심이었다고 할까...?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남편은 돈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아끼고 돈을 모으는 거에는 꽤 재주가 있었으니...
그 당시 나는 1억 5천만 원, 남편은 영끌하고 영끌해서 가져온 오천만 원.
우린 풀옵션 투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와서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자취 생활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던 남편과 나는...
여느 자취인의 집 같은 느낌의 신혼생활을 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연애와는 다른 행복.. 자유로움.. 평온함.
물론 이 평온함은 결혼 3개월 만에 친정엄마의 암 발병과 함께 투병생활을 하며 깨지긴 했다.
이후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굳이 절절하게 쓰지는 않겠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이 상처가 아물면..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작성해 봐야겠다.
결혼하고 3년간의 시간은 암흑기였다.
인생에서 이렇게 힘든 순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온갖 불행이 나를 뒤엎었다.
결혼생활의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외부적 요인으로 결혼을 끝내고 싶지 않았고, 남편도 내 손을 잡아줬다.
당시 우리는 심각해서 심리상담을 받았었는데, 내 상황은 꽤 심각했었다.
그때 남편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암흑기가 조금씩 걷히고, 엄마의 건강도 회복되었고,
우리도 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 중간중간 아이에 대한 생각은 없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난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냥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게 뒀다.
굳이 나서서 정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쏟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졌고,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리하는 그런 시기가 되었다.
어쨌든 돌이켜보면,
처음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인생은 힘들어진다고 어릴 적 생각했었다.
그러다 아이에 대한 애정을 쏟는 것보다 우리 엄마에게 잘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흐르니 아이를 잘 키워낼 자신이 없다.
한 생명을 책임지고 사회의 일원으로 잘 성장시키는 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엄마아빠들이 대단해 보인다.
주절주절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결론은 나는 딩크이다.
7년 차 딩크!
아주 보통의 딩크로운 하루로 지금은 남편이랑 평일에는 회사 다니고,
주말에는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도 하고, 집에서 뒹굴 거리면서 보내는 딩크 일상이다.
주변 사람들과의 차이라면... 조금은 자유롭다는 점?
경제적으로도 아주 조금은 여유 있다는 점?
그리고 평범한 어느 날과 똑같다.
남편은 처음 결혼하고 나서 내 생각이 바뀔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7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내 생각.
그리고 남편도 딩크의 자유로움을 알아버렸다.
지금은 둘이 잘 먹고, 잘살고, 행복하게 지내자가 되었다.
그래서 아주 보통의 딩크로운 하루를 잘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