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를 경계하라

사탄의 전략은 단순하다_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게 만드는 것.

by 치유 보드미

의식주를 경계하라(눅 6:39–45)

눈은 열려 있었으나, 보지 못했다


사람은 악해지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사탄은 사람을 괴물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눈은 열려 있었으나 빛은 들어오지 않았고,

확신은 가득했으나 진실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은 맹인인 채로 다른 맹인을 인도했다.

선의로 말했고 열심으로 가르쳤지만 둘 다 같은 구덩이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사탄의 전략은 단순했다.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게 만드는 것.

자기 눈의 들보는 감춘 채 남의 눈의 티를 확대하게 했다. 정죄는 경건의 언어를 입었고, 비판은 정의처럼 포장되었다.


그 사이 회개는 사라지고 사랑은 침묵했다.

사탄은 열매를 고치게 했다.

그러나 뿌리는 보지 못하게 했다.

행동은 바꾸려 애쓰게 했지만 마음은 그대로 두었다.

(지금 우리들의 삶과 닮지 않은지 돌아보자.)

그래서 사람은 반복해서 넘어지고,

왜 늘 같은 자리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마음은 전쟁터가 되었고 상처와 두려움과 불신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기 말이 자기 자신을 찌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간다.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이 적잖다는 반증 아닌가? 요즘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면 여전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붐빈다.


그 자리에

예수께서 서서 말씀하신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이 말은 정죄가 아니다. 진단이다.

“너희가 나쁜 게 아니라 너희가 묶여 있다.”


그래서 예수는 행동을 고치지 않으셨다.

사람을 고치셨다. 눈을 열어 주셨고, 마음을 새롭게 하셨고, 뿌리를 바꾸셨다.


오늘의 시대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왜 이렇게 서로를 상처 내는가.

왜 옳다 말하면서 함께 무너지는가.

답은 하나다.


보지 못한 채 인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망은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맹인을 꾸짖지 않으신다.

눈을 뜨게 하신다.

들보를 지적하기 전에 사랑으로 만지신다.

나쁜 나무를 잘라 버리지 않고 새 나무로 다시 심으신다. 그래서 복음은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너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회복될 사람이다.”


이 음성이 들리는 순간 시대는 다시 숨을 쉬고,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난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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