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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돌 Aug 06. 2024

코로나 얼리어답터 2

번외편

일본 대학병원 여성 4인실에 배정 된 나. 이제 여기서 2번의 음성 결과를 받아야만 퇴원 할 수 있다. 4월이라 쌀쌀했는데, 에어컨 히터가 안 들어오는 창가자리여서 진짜 너무너무 추웠다. 손가락에 계속 산소포화도 기계를 끼고 있어야 해서 힘들었다. 오른쪽 팔에는 응급상황에 대비해서, 바늘도 계속 꼽아놓고 있어서 구부릴 때마다 아팠다. 가방에 다행히 이북이 들어있어서, 심심하면 책 읽고, 티비카드 충전해서, 티비를 보거나, 일기를 쓰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wifi는 당연히 안 되지요. 시간 때우는 것이 큰일이었다.      


 내 침대 건너편에는 70대 여성분이 계셨는데, 남편분과 같이 코로나에 걸려서 응급실로 왔다고 했다. 연세도 많으신데 기침이 잦으셔서 고생이 많으셨다. 내가 입원하고 한 4일 뒤에 음성이 나와서 퇴원 하셨다. 내가 한국인이라니까, 자기가 이중섭 작가를 좋아해서 제주도에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이건희展’에 가서 이중섭 작가 작품을 볼 때, 이 분 생각이 났다.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시겠지. 그 옆으로는 30대 여성분이셨는데, 활발한 분이셨다. 병원 생활 이것저것 알려주시기도 하고, 간호사 분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알고 보니 이 분은 위급해서 중환자실에서도 꽤 오래 있다가, 4인실로 내려오셨다고 했다. 그래도, 나보다 이틀 전에 음성 두 번 나와서 퇴원 하셨다. 나가면서 사용 안 한 마스크도 나눠주시고 친절하셨다. 내 옆 침대 아주머니는 진짜 단 한마디도 안하고, 음성 나오는 것만 기다리고 계셔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이 분도 나보다 먼저 퇴원했었음. 부럽다.      


 내 건너편에 있던 분 퇴원하고, 들어오셨던 분이, 고양이 키우던 집사님이여서, 같이 고양이 사진보고 수다도 떨며 친해졌었다. 그분이 배고플 때 먹으라며 초코파이도 나눠주고 해서, 같이 냠냠. 독신 여성분이라, 입원 중에 고영이들 은 펫호텔에 맡겨두고 왔다고 했다. 아비니시안 2마리였는데 사진만 봐도 너무 귀여웠다. 걔네 호텔비만 하루에 몇 천엔 이라서 빨리 퇴원해야겠다고 둘이서 농담 아닌 농담을 나눴다. 중간에 그분은 상태가 좀 안 좋아지셔서, 약도 먹고 고생 하셨다. 퇴원 할 때는 내가 가지고 있던 물이랑 여성용품이랑 샤워시트랑 다 드리고 나왔다. 어차피 난 귀국할거니까 다 버려야 된다고 제발 받아달라고! 눈물 글썽이며 쉰 목소리로 고맙다고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나한테 또 초코파이를 주셨다. 이 병실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은 초코파이랑 생수밖에 없네. 첫날의 기억에 생수에 매우 집착함.     


 일본 병실도 밥은 잘 나왔다. 메뉴가 다양해서 매끼의 메뉴를 궁금해 했었다. 입원복은 하루에 300엔씩 내고 렌탈을 해서 입어야 했다. 자기가 가져온 옷이 있으면 그거 입어도 되는데, 난 땀을 많이 흘려서 렌탈을 했다. 일본 병원의 일과. 오전 6시에 기상. 혈압과 체온 측정. 아침 식사. 약은 따로 주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침약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먹으라고 했다. 나 폐렴 아니냐...? 이게 다냐...? 뭐 없냐...? 병원에 두는 것이 치료가 목적이 아니고, 일반인들에게서 격리 하는 것이 목적 같았다. 중증 환자들에게는 다른 처치가 들어갔겠지만 말이다. 점심 먹기 전에 또 혈압, 체온. 오후 6시쯤에 또 반복. 오후 10시에 소등. 내가 입원 했을 때 일본 원로 코미디언인 시무라 켄이 코로나로 사망해서, 티비만 틀면 그 뉴스가 나왔었다. 병원서 그 뉴스 보고 있으려니 남의 일이 아니더라.     


 pcr 검사는 입원 이틀 차에 음성이 나왔다. 얏호.

‘역시 집에서 다 앓고 온 것이라서 이제 퇴원인가봐’라며 김칫국을 마시던 나. 이틀 뒤의 검사에서는 양성이 나왔다. 절망과 좌절. pcr 검사는 이틀에 한 번씩 받았다. 6일차에 음성 나오고, 8일차에 음성이 한 번 더 나와서, 9일차에 퇴원했다. 입퇴원시 행정 처리는 역시 아날로그의 민족답게 답답한 포인트들이 있었지만,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선생님들이 친절하셔서 위안이 됐다. 9일차에 코로나 음성이라는 진단서도 떼고, 짐정리 해서, 퇴원을 했다. 왜냐면, 그 다음날 귀국을 했기 때문이다. 음성 나오자마자, 귀국 비행기를 예약했다.


 집 계약기간이 일주일도 남지 않아서 큰일이었다.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 다행히 회사 동료가 집에 남은 물건들은 다 처분 해 주기로 해서, 내가 가지고 갈 짐만 저녁에 챙겼다. 퇴원 할 때는, 안 걷다가 40분 동안 집까지 걸으려니까 골반이 아팠다. 그래도, 퇴원하니까 살만 하다고, 길가의 벚꽃 사진도 찍었다. 내가 좋아하는 겹 벚꽃.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벚꽃이었다. 다시는 외국에서 혼자 안 살겠다고 다짐한 날이었다.      


 밤새 짐정리를 하고, 잠은 거의 못 잔 상태로 NEX를 타고 나리타공항으로 향했다. 관광객으로 붐비던 공항열차도, 공항도 모두 썰렁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인천공항 도착해서, 검역하는 곳에 일본에서 입원했다가, 음성이 두 번 나와서 퇴원했다고 신고를 했다. 그리고는, 바로 인천 공항 근처 숙소로 격리되어 또 pcr 검사 받았다. 전날 저녁은 공항에서 김밥을 주셨고, 다음 날 아침은 샌드위치와 바나나 우유를 주셨다. 역시 밥의 민족. 게다가 물도 주셨다. 생수 너무 소중함. 그리고, 어제 한 pcr 검사 결과가 양성이 나온 나는 동대문에 있는 중앙의료원으로 이송되었다. 지금이면,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은 전염력이 없어도, 남아있는 바이러스 찌꺼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양성이 나오는걸 알고 있다. 그때는 미지의 병이었던 코로나. 분명 음성 두 번이 나와서 퇴원을 했건만, 한국 와서는 또 양성이 나오는 미스터리. 이렇게, 다시 입원하러 앰뷸런스에 실려서 떠나게 되었다. 집에서 혼자 앓던 시간부터 일본 병원 입 퇴원까지 약 한 달이었는데 아직도 안 끝났다니. 하늘이시여.      


  구급차를 타고 국립중앙의료원에 도착했다. 병실로 입실하기 전에, ct 촬영과 다른 검사들을 야외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받았다. 그 후에,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8층에 있는 병실로 안내 해 주셨다. 나의 첫 음압병실. 만나서 반가워. 일본에서 입원했을 때는 일반병실이었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공용이라 복도를 걸어 다닐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음압병실은 병실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래도, 여긴 무려 1인실이었다. 내가 입원했을 때는 확진자가 소강상태였고, 마침 내가 들어온 병실에 있던 분이 바로 전날에 퇴원을 했다고 한다. 타이밍에 따라서는 다인실 사용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코로나에 걸린 것은 재수 없지만, 코로나 환자 중에서는 운이 좋은 편 아니냐며 웃픈 생각을 했다.


 삼시세끼 밥도 잘 나오고, 배고플 때 먹으라며 간식도 한 번 주셨다. 심지어 입원 시에 냉장고에는 물이 4통이 들어있고, 식사 때나 환자복 갈아입을 때마다 말씀드리면, 물을 얼마든지 주셨다. 일본서 입원하고 물에 한 맺힌 사람이라 매우 민감. 여행용 세면세트도 준비 되어 있어서 감동했었다. 대한민국 만세. 이때 ‘부부의 세계’랑 ‘슬의생’이 한창 인기일때라, 누워서 맨날 ‘부부의 세계’, ‘슬의생’, ‘맛있는 녀석들’. 이렇게 돌려봤다. 쀼의 세계는 재방송을 얼마나 하던지 징글징글 할 정도였다. 채혈하러 오시는 간호사 선생님들이랑 어제 봤냐면서 이태오 욕 하던 것도 소소한 추억.      


 이전에 말했듯이, 일본 병원에서는 치료를 받은 것이 아니라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기침도 많이 나고, 폐렴 후유증인지 호흡도 많이 딸렸다. 삼시세끼 도시락과 함께 증상에 맞는 약을 주셨다. 병실에 갇혀있으니, 활동량이 없어서 잠을 잘 못 잘까봐 걱정했는데 약 덕분에 매일 꿀잠이었다. 일본에서는 잠을 잘 못 잤어서, 좋았다. 확실히 잠을 잘 자야 회복이 되더라구요. 기침 뿐 아니라, 몸이 약간만 이상한 것 같아도 바로 담당 선생님이 전화로 문진하고, 해당 약을 처방 해 주셨다. 입원하면서 방광염, 대상포진을 앓을 때마다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만세. 면역력이 떨어지면 몸이 어떻게 고생하는지 경험 할 수 있었다. 건강은 너무나 소중한 것. 상큼한 과일이 먹고 싶었던 어느 날에는 마법처럼 후식으로 오렌지가 나왔다. 내 마음의 소리가 들렸나요. 영양사님. 입원 중에 떡볶이랑 아이스 라떼가 얼마나 먹고 싶던지, 퇴원하자마자 시켜먹었다.      

 음압병실에서의 나날 중에 가장 힘든 것이 뭐였냐면.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채혈 및 pcr 타임도 아니고 (일본에서부터 내가 pcr만 12번 받았다고요) 갇혀있다는 갑갑함도 아니요. 대체 언제 나갈 수 있냐는 불확실성이었다. 상기도, 하기도 음성이 두 번 연속으로 나와야 퇴원가능한데, 하기도에서 자꾸 양성으로 나왔다. 이주일이 넘어가니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갔다. 사실 채혈 시간도 공포스러웠다. 왜냐면 난 건강검진 가면 혈관이 안보여서 맨날 두, 세번씩 찔리는 사람이므로. 그런데 여기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채혈해서 검사 받아야 했다. 얼마나 아프던지. 간호사 선생님들도 손에 장갑을 착용해서 둔해졌다며 미안 해 하셨다. 제가 더 죄송합니다. 정말 채혈이 안 되던 하루는 발목 까지 한 10군데는 찔렀는데도 안 나와서 나도 울고 선생님도 울 지경이었다. 엉엉. 나도 혈관이 선명한 환자가 되고 싶어요.      


 어느 날 아침에는 지난번에 한 pcr 검사가 나왔는데, 상기도는 음성, 하기도는 양성이였다. 오늘도 탈출은 불가능하구나. ‘이러다 한 달 넘기는 것 아니냐.’ 점심 먹고, 맛있는 녀석들 보다가, 한숨 자다가, 저녁 먹기 전에 샤워하려고 일어난 순간!! 내 입원실의 내선전화가 울리는 것 아닌가. 담당 의사선생님이셨다.     


"네"

"삼일 전에 방역방침이 변경되어서요. 환자분은 일본에서 두 번 음성이 나왔다가, 양성이 나온 것이죠."

"네"

"재양성 환자는 전염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이제 퇴원하셔도 됩니다."

"오늘 아침에 양성 나왔어도 나갈수 있어요?"

"네. 바이러스가 남아있어서 pcr 검사가 양성으로 나올 수는 있지만, 전염력은 없습니다. 오늘 퇴원하시면 됩니다."     


  헐. 지금 오후 4시..? 나 강릉으로 내려가야 되는데..? 표 있나..? ktx 표를 검색하니 서울역에서 7시쯤 출발하는 티켓이 남아있었다. 급히 발권하고, 샤워를 했다. 생각 해 보니, 몇 일전에 뉴스를 봤을 때, 재양성 환자는 전염력이 없는 걸로 간주된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그때는 침대에 누워서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봤는데, 이게 ‘내 일’이라니. 오 마이 갓.      


  캐리어에서 필요한 짐들 빼서 사용하는 정도였으니, 짐 따로 쌀 것은 없었다. 퇴원 할 때 입을 옷과 신발을 가족들이 보내주면, 그걸 간호사실에서 보관했다가, 마지막에 병실로 전해줘서 갈아입는다고 했다. 엄마가 보내줬던 옷을 간호사 선생님이 가져다 주셨는데 옷이 웃겨서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둘이 보면서 깔깔 웃었다. (바지를 뭔 장터에서 파는 고쟁이 같은걸 보내줬다.)      


 1층 택시 타는 곳까지 간호사 선생님들이 캐리어도 들어주시고, 택시가 안와서 카카오 택시로 불러주시기까지 했다. 한국 의료진 진짜 최고. 배꼽인사 열 번하고 택시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참, 한국 병원서 퇴원 할 때는 얼마 냈는지 아세요!? 무슨 서류 뽑느라 만원 낸 것이 전부였어요. 대한민국 만만세! 강릉 집에 내려와서는 다음 날에 바로 치즈 추가한 응급실 떡볶이를 시켜먹었다. 여수언니 유튜브 보면서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고요. 우리 집 거실에서 아이스 라떼랑 떡볶이 먹었던 순간의 희열.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다.      


[2개월이라는 격리 생활 동안 내가 느낀 점]     

1. 가기 싫은 모임은 가지 말자.

그 송별회만 안 갔어도 코로나에 안 걸렸을 것이다.      

2. 내 인생 최고의 친구는 나 자신.

2개월 동안 자신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보니,

뭐랄까, 세상 다른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졌다.

원래는 다른 사람들한테 궁금한 것도 많고, 신경 쓰고 그랬는데 그런 감정이 모두 헛되게 느껴졌다.      

3. 아플 때 신경써준 모든 지인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물론 크다. 아플 때 제일 서러운데 친구들 덕분에 이겨 낼 수 있었다. 나도 누가 아플 땐 꼭 도움을 주리라.      

4. 건강이 최고다. 진심 건강 최고. 면역력 완전 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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