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함께 춤을7] 오월어머니들과 몸을 움직이며 느낀 '가벼움'의 미학
지난 6월 초, 518 민주광장의 하늘은 작년처럼 화창했다. 1년 만이었다. 오월어머니들과의 공연을 위한, 시민들을 광장으로 초대하기 위한 춤판. 근처 연습 장소에서 오월어머니회 선생님들과 공연 레퍼토리 일부인 '더하기 빼기 춤(힐링 커뮤니티 댄스 무브먼트)' 연습을 시작했다. 춤벗 서너 명당 어머니 한 분씩 팀으로, 대여섯 개 그룹이 만들어졌다.
순서 1번인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움직임으로 동작한 후 멈춘다. 2번 순서 오월어머니는 나를 '본' 후 당신이 원하는 동작을 '더하기' 한다. 이때 상대를 잘 보고 반응해서 더하는 게 규칙이다. 접촉하지 않고 10cm 정도 떨어져 사이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3번 순서 춤벗이 2번처럼 파트너들을 본 후 사이를 두고 몸동작을 더한다.
다시 1번인 나는 우리가 함께 만든 구도에서 몸을 '빼기' 해야 한다. 이때도 규칙이 있다. 속도는 천천히, 느낌은 바람처럼 스르르, 빠져나와야 한다. 천천히 세밀하게 움직일 때 느낄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 느낌이 다를 때 반응도 달라진다.
빠져나온 후 더하기 규칙은 다음과 같다. 내가 사라진 빈 여백, 사이를 느끼기. 아주 잠시 잠깐만 멈춰 느끼기. 느낀 후에는 바로 움직이기. 생각하지 않기. 준비하지 않기. 계획하지 않기. 그냥 움직이기.
더하기 빼기 춤은 내가 움직이고 싶은 욕구, 눈앞에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존중하게 해 준다. 이럴 때 내 몸의 이야기, 내 몸에 기억된 삶도 함께 더해진다.
우리 몸은 시공간으로 얽힌다
▲ 춤의학교와 오월어머니회가 춤공연에 나서다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이 작년(2021)에 이어 인문학과 예술이 융합된 축제 <세계 지성이 광주를 말하다>를 518민주광장에서 진행했다. 이중 춤의학교(대표 최보결)와 오월어머니회(관장 김형미)는 <러브 앤 피스>를 주제로 시민 참여형 댄스 공연에 나섰다. ⓒ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내 몸은 작년 공연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달릴 때면 솟아오르는 고관절의 불편함, 통증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는 몸. 항암 치료 후 달라진, 70대 같은 30대의 몸이다.
몸이 바뀌니 맘도 바뀌었다. 무릎 통증 때문에 종종 정형외과 주사 치료를 받는 어머니에게 깊은 공감하게 됐다. 공감 능력자가 된 것이다.
공감의 정도가 늘어난 점은 좋지만 가끔은 숨이 막힌다. 목숨을 부지한 대신 미래의 시간을 당겨 썼을까봐. 당겨 쓴 만큼 내게 남은 시간이 줄었을까봐. 하지만 땡겼든 덤이든, 나는 살아있다. 숨을 쉰다.
변한 몸으로도 삶은 살 수 있다. 게다가 달릴 수 없게 된, 천천히 움직이는 몸이 된 덕에 큰 능력이 생겼다. 바로 느끼기다.
느낀 만큼 움직이고 싶어지고, 느낀 만큼 춤이 더 즐겁다. 오월어머니회 분들은 어떠실까. 파트너 오월어머니회 선생님의 순서가 돌아왔다.
검은색 상의에 감싼 어깨 부분이 미묘하게 아래를 향해 굽어졌다. 그 끝에 달린 손가락 다섯 개가 내 어깨 쪽으로 뻗어 나왔다. 공기를 뚫고 이 세상에 등장했다.
선생님의 주황색 스카프에 감긴 얇은 목살들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로 시선이 올라갔다. 저절로 반응했다. 부드럽게 풀어진 눈가와 입매가 보였다.
우리는 눈과 눈으로 접촉했다. 어릴 적 기억에 잠겨있던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난 인연들, 그 뒷 배경에 흔들리던 버드나무 이파리. 그 흔들림처럼 따듯하고 아름답게 헤엄치는 우리의 몸.
서로의 움직임을 더하고 빼다 보면 우리는 박물관에 있는 것 같다. 몇천 년이란 시간의 퇴적층 속에서도 살아남은 신전처럼, 그 시대 이름 없는 누군가의 손길 속 창조된 예술품들처럼, 우리 몸은 시공간으로 얽힌다.
더하기 빼기 춤의 예술성이 확대되는 순간 규칙이 추가됐다. 이제 사이를 만들지 않는다. 접촉하며 더하기 뺀다. 손가락으로, 손바닥으로, 몸의 어느 부위든 상관없다.
어떤 그룹은 다리 불편함 때문에 의자에 앉아 계신 오월어머니회 선생님의 손으로, 다른 그룹은 움직임이 보다 자유로운 오월어머니회와 함께 바닥으로 손을 더해가며, 어느 그룹은 일렬로 움직임을 더해가며 춤추고 있었다.
그 순간순간마다 몸들의 건축물이 완공됐다. 다음 순간 새로운 건축물이 추가됐다. 나는 1년 전보다 더 가벼운 숨으로 춤을 추었다.
쉬어가는 몸은 그 자체로 대단하다
▲ 춤의학교와 오월어머니회의 <러브 앤 피스> 리허설 춤의학교(대표 최보결)와 오월어머니회(관장 김형미)가 지난 6월 11일 광주 민주광장에서 열린 <2022세계지성이 광주를 말하다-러브 앤 피스> 춤공연 리허설 중 "더하기 빼기 춤"을 추고 있다 ⓒ 춤의학교
단 한 숨이라도 쉬어가는 몸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춤을 출 때마다 한 숨의 위대함을 배운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정리된다.
가장 큰 깨달음은 당연하고 효율적이라 자부했던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나를 망치는 자는 내 가족도, 상사도, 부하도, 회사도, 사회도 아니다. 나 자신이었다.
일터에서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 내 숨과 입을 희생했다. 잘 쉬고 잘 먹는 일의 중요성을 등한시했다.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욕망 때문이다. 일을 잘하고 싶은 욕망, 일터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 일과 관련된 분야에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욕망, 이 모든 일을 하는 데 따라주지 못하는 몸을 갈아치우고 싶은 욕망.
무지 때문이기도 하다. 일터와 삶터의 균형을 잡지 않아도 괜찮게 살 수 있으리라는, 일터에서 성공한 후 건강을 챙기면 되리라는,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기 위해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것이 내 몸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무지.
나를 존중하지 않은 이가 남은 존중할 수 있을까. 남을 존중한들, 나를 존중하지 않은 삶이 지속 가능할까. 존중의 균형점이 흔들리자 삶이 무거워졌던 것 같다. 바닥으로, 구멍으로 떨어졌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의 무게가 몸의 질병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춤을 추면 가벼워진다. 방망이질에 빨래 구정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건조기 바람에 먼지들이 떨어지는 것처럼, 끈적하고 비대한 자아에 균열이 생긴다. 조각이 생긴다.
가벼워진 몸은 삶의 새로운 비전을 찾았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잘 먹는 것. 옆에 누가 있든지 간에 그와 역동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챙기는 것. 함께 움직이며 춤추는 것.
마지막 동작 후 파트너들과 눈을 마주했다. 더하고 빼는 동작의 역동 속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웃음소리들이 가득 쌓였다. 춤벗들의 얼굴에 즐거움이 빛났다. 숨길 수 없이 따뜻했다. 머리 위 태양처럼.
각 그룹의 오월어머니들이 소감을 나눠주셨다. 움직이기 불편해서 의자에 앉으셨던 어머님은 소감 발표를 위해 벌떡 일어나셨다. 또다시 웃음들이 모여 쌓였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동작을 더했을 뿐인데, 마음이 편안해지셨다고 한다. 예술이 별개 아닌 것 같으시다고.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말씀들이 터져 나왔다.
자신감으로 한 몸이 된 춤벗들은 이후 전체 공연 레퍼토리도 함께 연습했다. 일상 동작을 활용한 안무 동작들이라 그런지, 오월어머니회의 초심자분들도 큰 어려움 없이 따라오셨다.
이제 실전에서 즐기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