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아이들 놀이에까지 내려온 오늘을 보며 나는 놀이에 대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아본다.
놀이는 평등해야 하고, 평화를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공짜여야 하지 않겠는가” P.161
“첫 번째 까닭은 아이들이 그동안 놀이다운 놀이를 해본 경험이 너무 적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무수한 놀이를 통해 무수한 승리와 패배의 두터운 경험을 쌓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 경험이 두텁지 못하기 때문에 한 차례의 패배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로 반응하는 것이다. 삶에서 이런 패배를 수없이 겪게 된다면 아마 아이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놀이는 이런 경험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놀이 밖 현실에서 겪는 승리와 패배의 경험을 즐기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놀이에서 기를 수 있다”(p.197)
“놀이의 차례와 방법을 머리에 넣고 가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칠 뿐이다. 놀이를 가르치다니, 사실 이건 말이 안 된다. 아이들과 놀이 속으로 들어가 함께 놀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놀이를 가르치려 들면 그만 달아나기 때문이다.”(p.278)
“놀이는 가르칠 수 없다. 이런 저런 책을 펴놓고 배울 수도 없다. 오로지 놀면서 느낄 수 있고 그 재미있고 따뜻하고 때론 흥분되는 느낌을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
놀려면 놓여나야 한다.
놀려면 교사와 아이들을 일상에서 붙잡고 있는 이런저런 것들에서 놓여날 수 있어야 한다.”(p.279)
“제대로 놀려면 놀이하는 방법과 차례가 적힌 책을 먼저 손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놀이보다 중요한 것은 놀이를 서로 오래도록 하다 보면 생기고 쌓이고 오고가는 따뜻한 사랑과 이해의 우정이다. 사랑은 말로 마음에 새기기 어렵다. 교사와 부모가 아이들과 놀이로 서로 부대껴야 사랑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무슨 놀이를 하든 관계 없다. 꼭 민속놀이나 전래놀이를 할 필요는 없다. 그때그때 상황을 놀이로 여기고 즐겁게 놀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이렇듯 놀이를 하는 시간이 바로 사랑을 나누는 시간으로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이 세상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음을 깨우친다. 가까이 있는 동무가 나와 생각이나 몸짓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배워서거 아니라 놀면서 깨우친다. 놀다보면 서로 다르니까 조절하는 것을 배우고 조절하다 보면 자기 고집도 돌아보고 가진 것도 나눈다.
잘 알듯이 놀이 속에는 다툼을 중재해 줄 어떤 절대적인 권위자가 없다…그러니 교사가 심판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놀이를 깨는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어 늘 조심해야 한다.
놀이는…관계와 관심과 사랑과 우정이 빠지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오락으로 떨어져버리고 만다.
..놀이와 게임은 다르다(p.280~281)
“이렇게 아이들을 동원하는 것이 놀이일 수 없다. 경험일 수는 있다. 놀이 한마당이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가서 동무들과 그 놀이를 할까? 하지 않는다. 이것이 놀이가 아니고 게임과 레크리에이션이라는 증거이다.”(p.284)
“아이들 삶의 한복판에 놓일 수 없는 것을 놀이라 하지 말자…자발성과 함께 가야 할 것이 바로 따뜻한 사랑의 샘솟음이다. 멀리 가지 않고 큰 돈 들이지 않아도 엄마아빠와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고…내 부모와 형제와 이웃과 동무에 대한 사랑과 관심과 이해로 나아가는 만남의 물꼬를 놀이로 틀 수 있고 놀이가 이 일을 도울 수 있다. 뭐라도 하며 함께 자주 놀다보면 서로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니까.”(285)
“아이들은 물, 불, 바람, 흙 속에서 비로소 해방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놀이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것들과의 원시적인 만남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을 떠나 추위, 더위, 비바람을 맞서 보아야 한다. 나는 안다. 이런 것들 속에 아이들이 가장 만나고 싶고 놀고 싶어하는 놀이가 가득 숨어있다는 것을…이렇게 잘 놀아본 아이라야 행복을 찾아 나설 힘이 있다는 것”(290)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편해문/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