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부전장애를 겪는 어느 신입 사원의 회고
신입 사원은 언제부터 신입이 아닌 건지, 혹시 따로 기준이라도 있는 건지 애매합니다. 전학생을 언제까지 전학생으로 불러야 하는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그런데도 현 부서에 들어온 지 2년이 넘었고 이제는 정말 신입 사원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저는 최근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고민이 고이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제대로 일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불안한 정서가 일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되어 상담 센터를 찾았고 제가 기분부전장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경미한 우울감이 최소 1년 이상 지속되는 증상
다행히도 상담사분과 잘 맞아 상담을 통해 저를 우울하게 만든 관점을 알아차리고 하나씩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반년 가까이 상담을 받은 지금은 새로운 자아가 어렴풋이 그 형체를 드러내는 듯합니다. 어떤 날은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된 느낌이 들곤 하는데요. 반가운 마음에 제가 체화한 관점을 한번 정리해볼까 합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저는 이제껏 일에 저를 100% 걸었습니다. 따라서 일에 불만족인 시기라면 생활 만족도 역시 100% 불만족이었습니다. 반성을 넘어 ‘왜 이것밖에 못 했지?’라는 생각을 하루 종일 붙들고 있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에서의 성취보다 ‘인정’에 저를 걸었습니다. 성취는 설정된 기준을 달성하는 것이라면 인정의 기준은 전적으로 남에게 달려있습니다. 내가 100% 알 수도 없는 기준에 나를 올인했던 겁니다. 주식에 전 재산을 넣는 바보가 있나 싶죠? 부끄럽지만 한때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일 욕심이 정말 많은 사람이지만 이제는 일에, 특히 '남의 인정'에 저를 전부 거는 일 따위는 안 하려 합니다. 내 인생에는 수많은 차원의 제가 있고, 일은 그중 하나입니다. 들이는 시간을 생각하면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일에서의 성공만큼이나 가족, 친구, 그리고 그냥 저로서 존재 가치도 더없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이 패배자나 하는 정신승리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회사에서는 리소스일 수 있지만 내 인생에서는 주인공입니다.
'사생활의 천재들(정혜윤 저, 봄아필 출판)'에서 정혜윤 작가가 전해준 박수용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분이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숲을 헤매다 우연히 사슴 뼈를 마주하셨을 때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인생 전체가 중요하다는 것, 매일매일 불행하다가 어느 한순간 찬란하게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나는 뼈 한 조각을 보면서 보람이란 것을 어떤 핵심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과를 마주하는 날만큼이나 고군분투하는 하루하루도 인생이지요. 혼자 비트에서 숨죽이며 호랑이를 기다리는 감독님의 시간처럼요. 그리고 말씀처럼 어쩌면 인생의 본질은 그 고요한 매일을 보내는 생각과 태도인 듯합니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갈지 충분히 그려보고 입사를 시작점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입사를 발단으로 제 직업 '디자이너'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경험을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을 뿐인데 이제는 직업으로 이 일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커리어 패스를 고민해야겠지요. 긴 여정이 시작됩니다.
이때 회사의 인재상을 참고할 수 있지만, 시작점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또 이 인재상도 한 회사에서 그린 인재상이고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인재상이 있으며 시대에 따라서도 계속해서 바뀝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인이 그린 인재상은 어디까지나 허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내가 그려야 합니다. 내 일의 서사는 오직 나만 쓸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을 간과해 제 개성을 다 잘라내고 허상에 저를 끼워 맞추려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보다 더한 건 펜을 쥔 사람이 나라는 사실도 모른 채 엄한 곳에 기웃거리면서 매분 매초를 아까워하며 저를 다그쳤습니다. 제대로 된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았으면서 최단 경로로 도착하고 싶어 했습니다. 사실 최단 경로는 예상치일 뿐 실제로 제일 빠른지는 한번 가봐야 압니다. 즉 최단은 서사를 그려나가는 현시점에는 성립할 수조차 없는 개념인데 현혹되기는 참 쉽지요.
뜬구름 잡기는 그만두었습니다. 이제는 방향 감각을 느끼면서, 나와 현재에 충실하며, 제 일의 서사를 차분히 써 내려가려 합니다. 이 글도 바로 일련의 과정 중 하나가 되겠지요.
내 일의 서사를 그려나가기 위해서는 타당한 근거와 실질적인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주식 투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아니라 시간과 노동력을 투자하는 거지요. 어디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이성과 직감을 줄다리기하며 신중히 선택해야 합니다. 이 정석을 모를 일 없지만 우리는 오늘도 잘 안다는 아무개에게, 그리고 다수의 생각에 쉽사리 휘둘리곤 합니다.
또 저처럼 자기를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들(그래서 기분부전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외부 자극 하나에 내 가치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캐닝합니다. 저 사람이 주장하는 게 맞는지, 내가 잘못된건 지 점검하는 거지요. 귀 닫고 사는 것보다 낫겠지만 흔들리는 것도 에너지 소비의 과정입니다. 많이 흔들릴수록 한 걸음 떼기가 어려워집니다. 까딱 잘못하다 가스라이팅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남의 잣대에 내 자아가 옴짝달싹 못 하게 되지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내 서사를 꿋꿋하게 써 내려가려면 '적어도 내게는 이게 맞아'라고 말할 논리가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나를 뒷받침해주는 거지요.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일해야 할지, 이 일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또 내 노동의 가치와 권리, 의무와 사회적 책임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지식이 어디로 나아갈지 방향을 잃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동력이 되어줄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늘 배움의 길 위에 있다 마음먹으려 합니다.
최근 재밌게 읽고 있는 '롤모델보다 레퍼런스(한선회 외 5명 저, 진저티프로젝트 출판)'에 담긴, 액티비스트 리서처 백희원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자기희생을 당연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그게 당위적으로 옳기 때문에 나를 기획하려고 들거든 절대 응하지 마세요. 오히려 사회 변화와 연결된 활동에 그런 덫이 많은 것 같아요. 경제적 이익이 명확하면 거래 조건이 명확하게 성립하겠지만 가치를 둘러싸고 투쟁하는 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래요.
사실 덫은 어디에나 많습니다. 제가 '나다움'을 버리고 맞추려고 하던 허상도 덫이지요.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덫에 한 번 걸리거나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덫의 존재를 배워야 합니다. 다시는 덫에 걸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또 덫에 걸린다고 하더라도 그리 오래 아프지 않고 벗어나고 싶습니다. 더 많이 뛰어다니고 더 많이 배우면 가능할 거라 믿습니다.
우연히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작가의 세바퀴 강연을 본 적 있습니다. 남들이 지겨워할까 봐, 가벼운 푸념으로 여길까 봐 자신의 우울을 털어놓기가 두려웠다는 작가님을 보면서, 마음이 곪은 상황에서도 남의 시선을 우선했던 제 모습과 겹치면서 문득(그리고 드디어!) 억울함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자기편이 아닐 때 우울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의 평가에 내 감정을 너무 내어주지 말자, 나는 끝까지 내 편이 되자고 늘 다짐합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게 전혀 두렵지 않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당장 내일 직면하는 인간관계가 있으니깐요. 아마 우울에 대해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오늘 동생과 작은 말다툼을 했습니다. 발단이 어떻게 되었든 결론은 누구의 잘못이 더 크냐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생활 규칙을 하나 추가했습니다. 우리 둘의 잘못은 같은 크기다. 여기서 '잘못'을 얼마든지 노고, 아픔 등으로 치환할 수 있겠습니다. 저의 어려움을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이 경험하신 어려움과 같은 크기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앞으로 제가 마주하는 타인의 어려움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려 더욱 노력하려 합니다.
고생한 신입은 이제 그만 들어가라고 해야겠습니다. 수고 많았다!
저의 깨달음이 하나의 레퍼런스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새로운 장에서는 디자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