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충수란, 자살골 또는 자기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행위라는 것이 사전적 의미다.
삼성의 오너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걸 보니 자충수란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문득 현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님이 생각난다.
툭하면 돈 내라고 청와대에 불려 가니, 경영은 해야 하고 당장 말을 안 들으면 기업이 사달이 나니까, 일단 돈은 내고 본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권력이 더러워서 나도 대통령 한번 해 봐야겠다고 대권 도전을 한 적이 있다.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시사하는 팩트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대통령이 돈 내라 해서 냈는데, 소극적이니 적극적이니 따지는 건 무슨 잣대인가.
대통령이 돈 내라 하는데, 안 내고 버틸 기업이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같이 정치 후진국에서 버틸 수나 있을까.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어느 누가 거금을 내고 싶겠는가.
궁여지책으로 억지춘향으로 돈을 바친 거는 자명한 일이다.
더 이상 추측성 코걸이 귀걸이를 내세우지 말라.
수사한 검사들은 "누구나 법에 따라 처벌한다."라고 했다.
일반 국민도 세금 좀 덜 내 보려고 부부 공동명의로 등기를 하기도 한다.
자유경제민주주의 체재에서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세금을 적게 내는 방법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을 꼼수라며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소가 웃다가 코뚜레 부러질 일이다.
2008년도인가 미국 조지아주에서는 현대자동차 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조지아주에 일자리 창출해 주는 것만으로 법을 떠나서 주지사 재량으로 그런 큰 특혜를 준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들먹이며 특혜라는 잣대로 광화문 사거리 폴리스 라인이 백 번도 더 쳐졌을 거다.
법의 잣대와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는 달라야 한다. 1월 19일 백 분 토론에서는 "뭐 오너가 없다고 삼성이 망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 경영인이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한다. 향후 2년 정도의 플랜은 이미 짜 있을 거니 문제가 없단다.
플랜을 앞서서 실행할 리더가 없는데, 그 플랜이 무슨 소용인가.
머뭇거리다 앞선 기업에 뒤쳐지면 2~5년 후면 끝장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태에 지금 그런 탁상공론이나 할 때인가. 주가도 하루 떨어지다 바로 받들어 준다고 한다.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대출받으라고 전화를 때려대는 판이다.
동학개미들이 대부분 대출받아서 주식투자하고 있다. 부동산도 종잣돈 없이 전세 끼고 대출받아서 샀다 팔았다 한다. 모두 저금리 정책이 불러온 사단이다.
대장주인 삼성 주가는 아직은 모두 믿고 가는 상태이니 두고 볼 일이다.
세계 속에서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전쟁을 치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할 때 기업총수들을 대동하고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나라에 총수들 얼굴 도장 찍고, 신뢰를 심어주기 위한 문제 아닌가. 그동안 쌓아놓은 인맥을 무시 못한다.
농경사회에서도 상머슴과 새경을 절충하고 계약할 때는 집에 제일 연장자인 가장이 가야 하고, 꼴머슴 구할 때는 새파란 젊은 아들이 가야 쉽게 체결이 된다.
이런 이치로 보면, 오너가 없어도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파산의 위기, 실업의 위기, 취업의 위기가 올 것이란 비관적인 우려가 크다.
그나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온라인 문화가 또 다른 사업을 주도할 것이란 희망이 있다. 뉴노멀 시대는 비대면을 기본으로 하는 일상이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은 우선 서방 국가를 보면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이다.
아시아 쪽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겁나게 달리고 있다.
미국에 가 보니 코리아는 잘 몰라도 삼성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유럽에서도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잘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패키지여행으로 그랜드 케니언을 갈 때다. 라플린에 들리려고 모하비 사막을 건널 때, 현대 로고를 단 일 마일 트레인이 달리는 걸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있다.
회사에서 마련해 준 LA아파트에 빌트인 된 가전제품이 모두 미국 제품이 아닌 삼성 제품이어서 크게 놀랐던 적도 있다.
이런 경쟁에서 삼성의 오너가 구속되었다면, 나라밖에서 보면 삼성의 윤리적 도덕적 신뢰가 땅에 떨어질 것은 뻔한 이치다.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은 지구 반바퀴를 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의식주 중에서 제일 우선은 무엇인가. 먹고사는 일이 아닐까.
삼성이 없다면 실업의 위기와 취업의 위기를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 지금도 선진국으로 유학 간 학생들이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귀국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도 '누구나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하나?'
부자인 그를 가두면 쾌감을 느끼는 열등생도 많겠지.
국민은 굶어 죽어도 상관없고, 부자인 그가 보기 싫은 사치한 감정은 사촌이 땅사면 배 아픈 국민성이 원인이다.
이 땅에 닥치는 바이러스 외에도 기후환경의 위험성과 미래의 물부족 같은 현안이 산더미이다.
단언컨대, 삼성이 없으면 우리나라도 없다.
융통성이란 말은 무엇을 위해 생긴 말일까.
필자는 삼성 부회장 이재용 구속은 자충수라는 것을 감히 주장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집행유예로 풀어주든지 대통령이 사면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지금 정부에서 코로나19로 힘든 소상공인을 위해 피해를 덜 본 기업에서 자발적으로 성금을 내라고 한다.
이 또한 다음 정권에 가면 대가성 뇌물이라고 법에 따라 처벌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자발적이라는 조건까지 달아놓았으니, 코걸이 귀걸이 꾸미기는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