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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Apr 22. 2024

난징대학살 기념관 방문기

(사단법인 박약회 역사 탐방 여행)


  여행 닷새째 날은 난징 대학살 기념관 방문이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그 끔찍한 현장을 실제로 본다는 것에 착잡함과 동시에 떨림이 배가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중국의 난징에서 저지른 대표적인 최대 도살 사건 기념관이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중화민국의 수도 남경을 함락한 일본군은 대학살을 감행하여 30여 만 명을 도살하고 난징을 지옥으로 만든 현장이다. 일본 만행에 대해 가장 많이 연구하고 가장 많은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기념관이기도 하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하고 생을 마감했던 윤동주 시인이 소환되면서, 이 땅에 없어져야 할 전쟁에 치를 떨며 여덟 시부터 긴 줄을 선다. 그곳 직원들이 여덟 시 반에 업무 시작이라 꼬박 삼십 분을 줄 서서 기다리다 겨우 입장한다.

  건물 바깥 조형물이 눈뜨고 못 볼 형상이다. 같은 인간끼리 왜 이렇게도 잔인하게 죽이고 죽어야 하는지 눈물겨워 울컥하다 하늘을 쳐다본다.

 

(시체를 업고 허둥지둥)

                      (젊은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모습)

                (아기를 안고 허둥대는 모습))

                 (죽은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아기와  옆에서 오도카니 앉아서 울고 있는 어린이)

                          (체포되어 끌려가는 모습)


건물 내부에 들어가니 어두컴컴한 조명에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장송곡이 가슴을 울린다. '남경대도살사실전' 비 앞에 어느 학생이 든 하얀 국화꽃 한 송이가 처연하다.


(희생자 사진)


  공안의 촬영 제지를 받고 학살 현장은 더 찍을 수 없었다. 한 구덩이에 불을 피워 화형 한 모습과 구덩이에 그냥 묻어버린 참상을 목격하자 고개를 돌린다. 그 빛바랜듯한 풍경들이 가슴 저리게 다가오는 건 전쟁의 피해에 자유롭지 못한 필자의 탓일까.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로 조선시대 마지막 '아기씨'에서 아비 없는 자식으로 전락한 유년의 불행을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저 구덩이에 내팽개쳐진 해골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 행방불명된 내 선친인 듯, 데자뷔로 오버랩되어 머리가 쭈뼛 서고 가슴이 시려 핫팩이 필요할 지경이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저런 아비규환의 지옥을 만들었을까.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를 되뇌며 울컥하여 코가 시큰하다.


  [전사불망 후사지사]란 글귀가 크게 양각되어 있다. 과거 일을 잊지 않으면, 그것이 미래 일의 스승이 된다, 또는 그릇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지난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 테다. 지당하고 마땅한 말씀이다.

 


  관람객이 많아서 길잡이를 놓칠세라 수박 겉핥기로 지나치는 아쉬움이 있다. 얼른 포커페이스를 하고 밖으로 나온다. 아기를 안은 화평의 여신상을 보자 이제야 가슴이 따뜻해지며 안도의 호흡이 복식으로 이어진다.



  밖으로 나온 길 옆 둔덕에는 수양 회화나무가 끝없이 도열해 있다. 우리나라 공작단풍처럼 아래로 흐느적 늘어진 모양새다. 잘 정돈되어 운치도 있고 관계기관의 성의도 보인다. 나무 아래는 우리나라 크로바 대신 또는 맥문동 대신 콩과의 식물인 보라색꽃이 앙증맞다. 이 식물 이름이 소래풀이라고 한다.

 

(둔덕에 도열된 수양회화나무)
(크로바 대신 앙증맞은 보라색 소래풀 꽃)

우리 일행은 물푸레나무 아래 집결하여 다리 쉼을 한다. 나무가 워낙이 커서 67명 일행 모두에게 그늘을 제공한다. 이 물푸레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객의 마음을 보듬는 것처럼, 기념관 어디든 일본국의 사과문 하나쯤 걸려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간 세상에서 어느 나라든 누구든 잘못이 있지만, 뉘우치고 사과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들어 보니, 물푸레나무 꽃이 여백이 없게 빽빽하게 피어서 놀랐다. 나무가 영양이 부족해서 갈 때가 되면, 종자를 퍼트리기 위해 꽃을 많이 피운다는 우리 팀 중의 식물박사(?)의 조언이다. 자연이란, 식물이나 동물이나 종족을 퍼트리는 순환의 이치는 피할 수 없다. 30만 명을 학살했어도 그 도시는 지금 그 후손들로 북적인다. 진정한 사과와 용서의 길은 요원한 일일까.



  이 역사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하여 중국 학생들이 릴레이로 방문한다는 길잡이의 설명이다. 중국 학생들이 국화꽃 한 송이 씩 들고 참배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교육이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져야 하므로.

  지금도 중동지역에서는 국제사회가 긴장을 낮추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지만, 전쟁의 가능성이 더 커진 것 같아 걱정스럽다. 수많은 침략을 받았던 대륙의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매달린 우리 한반도는 또 어떻게 버텨야 할까. 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잘 이용해 국력을 튼튼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때아닌 애국심이 뿜뿜 솟아난다.


  ( 사단법인 박약회 중국 남경지역 역사 탐방 회원  이용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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