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한 주
코로나 정국
바이러스 창궐인데 백신이 없다. 치료약도 없다. 인간 세상을 무력하게 만든 미생물의 반란이다. 집안에만 머물다보니 ‘방콕’ ‘집콕’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모든 일상이 올 스톱이다. 외출 못 하니 그동안 못 봤던 영화나 실컷 볼 요량으로 심심풀이 땅콩과 오징어도 준비한다. 기생충과 변호인을 보고 삼 일째 조커를 보는 도중, 갑자기 관리실 방송이 긴박하다. “우리 아파트 000동 00호 라인에 코로나 19 양성 환자가 나와서 엘리베이터와 계단 전체를 방역하여 미끄러우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외출을 삼가시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외출 시에는 필히 마스크를 끼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맙소사! 그 000동 00호 라인이 바로 우리 라인이 아닌가. 그 환자 댁은 내 집 꼭대기 층에 있다. 그 댁 하수가 내 집을 통해 내려간다고 생각하니 낭패감에 소름이 돋는다. 선 자리가 *언틀먼틀하여 몸이 덜덜 떨린다.
식초와 락스를 박스로 주문해서 물 내려가는 곳마다 뿌리고 은박지로 막았다. 공기로 전염되지는 않는다지만, 환기도 조심스러워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날은 택배 상자를 일 층 우편함 앞에 놓고 간다는 문자가 왔다. 그도 들어오기 찜찜하겠지만, 나도 우편함까지 내려가기가 두렵다. 내용물이 명란이라 냉장 보관해야 하는데,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이튿날 전수 조사한 결과 퇴근길에 그 환자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사십 대 여성이 양성으로 나왔다. 죽음의 공포가 *어둑서니처럼 주변에 어슬렁거리니 당황스럽다. 스무 층 올라가는 단 몇 분의 시간에 감염되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하필이면 둘째가 이사 날짜가 안 맞아 내 집에 와 있는 처지라, 집으로 퇴근하지 말고 잘 방역된 호텔로 가라고 했다. 천륜(天倫)이 무엇인지 큰애가 뉴스 보고 놀라서 “엄마 모시고 제주도로 피신가는 게 어떠냐?.” 라고 재택근무 들어간 아우와 상의하며 안달이다. 며늘아기는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며 육개장과 갈비탕을 배송시키니 완전 전시 체제(戰時 體制)다.
공항 가는 택시 안에서 전염될 수도 있고 기내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도 모르니, 오히려 자충수(自充手)를 두는 꼴이라고 반대했다. 아이들은 그냥 앉아서 당하는 것보다 일단 소나기나 피하자고 우긴다. 사흘간 공포에 떨며 설왕설래하다 결국 짐을 꾸리고 오전 열 시쯤 나가려고 하는데, 음압병실에 있는 그 환자 둘 다 계속 음성으로 나와서 격리 해제되었다는 반가운 뉴스가 나왔다. 구청과 관리실에 다시 확인하고 짐을 도로 풀었다. 항공료와 호텔 예약비는 몽땅 손해 보면서….
내 생애 가장 급박했던 일주일이다.
‘언박싱(unboxing)’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두 달이나 집에 갇혀 있으니 매일 인터넷 쇼핑만 한다. 인터넷 쇼핑이 재미있지만, 택배 상자 여는 재미도 쏠쏠하다. 식탁 위에 박스가 쌓이면 기분이 좋아지니 나름대로 위로가 된다. 무슨 거창한 판도라 상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상자 개봉 직전의 그 설렘은 소개팅 직전의 두근거림과 일맥상통한다.
친구가 홈쇼핑에서 옷은 사지 말란다. 외출했다가 같은 옷 입은 이가 있어서 재빨리 귀가했다는 해프닝을 전한다. 모두 집에만 있으니 홈쇼핑을 많이 하게 되겠지. 생산 소비 투자의 삼중 감소, 주가 곤두박질, 매출 반 토막 등 슬픈 해시태그 난립 중에도 성황리에 영업을 이어가는 업체도 있으니 양면성은 어디나 존재한다.
이번 기회에 행주와 수세미도 일회용으로 바꿨다. 제주 당근과 양배추, 남해 시금치, 강원도 감자 등 모두 택배로 받는다. 당귀 잎을 주문해서 장아찌도 담그고, 노르웨이 고등어도 주문해서 냉동실을 채운다.
오늘도 참치액과 굴 소스를 주문하고 도라지청과 사과즙 상자를 뜯으니, 차츰 인터넷 쇼핑에 중독되어가는 중년의 주부가 설핏 보인다.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확산하고 있다. 요가장과 수영장이 휴관이니 완전 운동 부족으로 휘뚝거리게 된다. 조심스럽게 집 앞 공원에 나갔더니 산책 나온 이가 꽤 많다. 사람을 피해 좀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 보니, 남자 중학생들이 삼삼오오 삼선슬리퍼를 신고 짝다리 짚고 서 있다. 한손은 주머니에 반쯤 찔러 넣고, 검지 중지에 담배를 끼워 팔을 둔각으로 벌리고 담배 연기를 훅 내뿜는 모습이 가관이다. 아무리 아래위로 톺아봐도 너무 어리다. 한 살만 젊었어도 오지랖이 넘쳐 야단치고 타이르겠는데, 이젠 비겁한 합리화로 절충하며 재빨리 자리를 피한다.
반면에 놀이터에는 아이들 그림자도 없다. 어린아이들이 사회 거리 두기를 가장 잘 지키고 통제가 잘 되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공원 산책은 개학하면 나가려고 집안에서 인터넷 뉴스만 본다. 유학생들이 자가 격리하지 않고 돌아다니다 양성 판정받고 감염 확산을 부추긴다. 그들이 다닌 영업장이 줄줄이 폐쇄되고, 직원 모두 자가 격리에 들어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정책의 실패로 코로나 정국이 몇 달을 후퇴한 거다. 처음부터 해외 입국 금지하고 강제 격리 시켰어야 할 일이다. 지구촌의 동물 중에 가장 말 안 듣는 게 인간이라고 했던가. 더 이상 정책이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 세상을 오래 살아 인내심이 커진 주부도 흥분하여 국외로 추방하든지 구속하라고 강성 댓글을 단다.
한편, 대한민국이 코로나 19 대처를 가장 잘하고 있다고 지구촌 언론이 들썩인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사재기가 극성이라 마트에 휴지와 생필품 매대는 텅텅 빈다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일이 없다. 지역 농산물도 주문 다음 날 배달받을 수 있고, 질 좋고 저렴한 두루마리 휴지도 언제든지 살 수 있다. 미국에서 코로나 19가 터지자 너도나도 총을 산다는 뉴스에 경악했다. 코로나로 무법천지가 되면 침입자로부터 내 가족을 지키려고 총을 산다니, 자유민주주의가 좋지만 저런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허점이다. 더구나 전시의 규칙에 따라 소생 가망이 적은 노인은 배제하고 젊은이부터 치료한다는 어느 나라 이야기는,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생각에 씁쓸하다. 노인 한 명이 죽는 건 도서관 한 개가 없어진다는 것과 같다는 말의 의미가 무색하다. 우리나라는 성리학과 유교의 정치이념으로 아직은 위급한 환자부터 치료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가 사재기하지 않는 것과 압축적 근대화로 명실공히 선진국에 진입한 것도 모두 이런 사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약국에 요일별 마스크는 사러 가지 않는다. 집에만 있으니 굳이 마스크가 많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활동하는 젊은이들에게 양보한다는 차원이다. 그동안 마음대로 들이마시던 공기도 귀하고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던 때도 그립다. 사람이 무서운 세상, 사람 간 거리를 두어야하는 세상이 빨리 끝나야 한다. 아이들도 학교로 돌아가고 경제도 팡팡 돌아가자면, 질병관리본부 발표에 귀 기울이고 사회적 거리 두기와 여타 생활 수칙도 잘 따라야겠다.
고생하신 환자와 가족, 의료진, 자원 봉사자들께도 진심어린 위로와 응원이 필요하다. 방역에 적극 협조하고 나눔과 배려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비가 그치면 봄도 오겠지.
*언틀먼틀 : 바닥이 고르지 못하고 울퉁불퉁한 모양
*어둑서니 : 어두운 밤에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것처럼 잘못 보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