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네탈

by 소봉 이숙진


입술이 샐쭉하다. 봉긋한 양 볼에 갈색 연지가 설핏 웃음을 부른다. 이마에는 볼연지보다 더 큰 곤지가 태극 문양처럼 도도하다. 아래로 살포시 내리깐 실눈이 조신하고, 정수리에 얹힌 여섯 타래의 머리가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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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결혼 때 외국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산 하회탈 ‘부네’의 얼굴이다. 탈 중 하나를 안방 벽에 걸었다. 나무 냄새가 풍기면 남편과 뒷산을 산책하던 날의 풀 냄새가 소환된다.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탈이니 더욱 애착이 간다. 그러나 산책을 즐기던 남편이 의료사고로 집중치료실에 누웠을 때, 탈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온갖 기기에 둘러싸인 그의 모습은 충격이다. 숨결이 잦아들면 실눈을 뜨고 확인하던 나, 그저 곁에서 숨 쉬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젊은 날 코 고는 소리를 마뜩잖게 여기던 사치가 얼마나 부질없는 응석이었는지 깨닫는다.

지쳐가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잠든 사이 환청처럼 들려온 속삭임. “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거야.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눈을 뜨니 부네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눈꼬리는 댓 자나 내려와 있고 콧구멍도 없는 답답한 모습이 영락없는 지금의 내 모습이다. 결국,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퇴원했지만, 여전히 남편은 천사표 나이팅게일을 원한다. 늘 갈색 톤을 즐기는 내가 알록달록 밝은 색 홈웨어를 사들였다. 내가 지치지 않고 우울감에 빠지지 않으려는 최면 요법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할 수 있다. 아자~ ” 하면서 야무진 다짐을 해 보지만, 허한 마음속에 헤적이는 스산한 바람 앞에서는 번번이 휘뚝거리게 된다.

내팽개친 탈을 다시 걸었다. 지난번과는 달리 잔잔한 미소를 띠며 겨울 눈밭의 나무처럼 초연하다. 탈의 표정이 시시때때로 변한 건 내 마음의 눈이 변덕을 부린 거다. 내 주관적인 견해로 사물을 바라보니 그럴 수밖에. 아직은 시시포스(Sisyphos)의 노동처럼 나의 손길을 끝없이 요구하지만, 때가 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비가 온 뒤 아름다운 무지개가 서듯이 나의 인생 이모작에도 쨍하고 해 뜰 날이 기다릴 것이다.

물색없는 주부는 부네 탈 옆에 볼품없는 편액 하나 내다 건다.

‘나는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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