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굴거리는 잉여의 변
20대 중반 즈음에 세웠던 서른 살까지의 목표는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었다. 서른까지는 탐색의 기간으로 둔다. 서른부터 나는 와다다다 달려 나갈 뿐이다! 하는 각오였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인 40대 중반의 과차장님들도 "보금아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 하시던 걸 보면서 난 그런 목표를 세웠더랬다.
그래서 8월 30일 생일을 맞은 지금,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찾은 것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안 좋아하는 일과 잘 못하는 일은 120개 정도 더 찾긴 했다. 그렇지만 '와다다다' 달려 나갈 그 길은 아직도 모르겠다. 어딘가에 있는 거 같긴 한데 어슴푸레하고, 내가 꿈꾸던 나의 모습과 지금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건 너무 다르다. A가 좋겠어 → 아냐 원래 B를 하려 했잖아 → 그럼 B'는 어때? → A가 네가 제일 잘하는 거라니까. 하면서 혼자 쳇바퀴 돌리고 있는 중이다.
"20대 때 세웠던 유일한 서른의 목표: 영혼의 일 찾기"도 찾지 못한 주제에 놀랍게도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 않다. 집안에는 신종 우환이 가득하고 예전처럼 일주일에 약속 다섯 개씩 잡아 사람들을 만나면서 영감을 얻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썩 괜찮다고. 엄청 해피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우울해서 방에만 서른 밤씩 갇혀 울지도 않는 상태, 적당히 -3과 +3을 오가는 상태로 부유한다. 그리고 20대 초중반 때와 다르게, 지금은 이 고요하게 떠다니는 상태를 '좋다', '괜찮다'라고 평하고 있다. 어쩐지 그렇게 되어버렸다.
근 일주일째, 내가 가장 열심히 하는 건 사실 게임이다. 하루에 14시간씩 새벽 4시까지. (카톡 등으로 연락이 영 안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게임 중이었습니다...) 30년 인생에 현질까지 하면서 이렇게 게임에 몰두하는 건 처음인데, 엄마랑 아빠랑 할머니랑 동생까지 아주 놀라는 중이다. 너무 신기한 광경이라 게임 좀 그만 하라며 말리지도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게임하는 사람들이 제일 한심했고 "시간 아깝게 그런 식으로 허송세월 하다니, 실패는 자초한 것"이라며 동생들을 꾸짖었던 사람이다.
이러했던 나는 어떻게 오늘날 밥 먹으면서까지 게임을 하고 있는가. 제1의 원인은 물론 '행복의 저택'이 잘 만든 재미있는 게임이기 때문이고 (떠넘기기) 제2의 원인은 내가 꽤 변했기 때문이다. 하루 순 공부시간이 14시간이 되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던 고3 때의 악독함이나 남들은 출석도 못할 테니 난 월화수목금 1교시를 듣고 오후 3시에는 과외를 3개씩 뛰자던 대학생 때의 유노윤호 다움은 없어져 버렸다. 이 꽉 깨물고 살았던 때 생각하면 퍽 대충 사는 것이다. 아무래도 10년간 열심히 턱 보톡스를 맞았기 때문인 거 같다. 꽉 물어도 턱에 힘이 안 들어가더라니까.
덜 치열하고 더 소소한 서른으로 생일을 맞았다. 마흔에는 또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서른 때 불안하고 불행해도 계속 최고 속도로 달리지 그랬느냐 자책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은 썩 좋으니 괜찮다. 보톡스 때문인지 게임 때문인지 아니면 내 주변에 나를 참아주었던 사람들 덕분인지, 서른에는 잘난 사람보다는 잘 지내는 사람이 나은 거 같다. 다시 막내가 된 것도 꽤 마음에 든다. 20대 중 가장 으른이었던 스물아홉보다는 징징댈 수 있는 30대 막내 할래. 서른쨜 최보금.
이번 생일에는 엄마 아빠한테 감사하다고 편지를 썼다. 아빠는 점심을 엄마는 저녁을 푸지게 대접해 주셨다. 생일날 잘 먹었으니 일 년 또 아주 잘 살겠다. 내년에는 좀 더 좋은 어른이 되겠습니다.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하 생일날의 먹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