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_ 장수는 배를 두드리고 땅을 찬다

by 빈자루

"제가 대륭의 회장이 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양명 형님도. 조평 형님도. 사람들에 막혀 미네랄을 들고 이리저리 헤매던 SCV도 나를 보았다.

"아. 저는."

내가 말했다.

오래된 미네랄을 들고 있는 SCV의 팔이 저려보였다.

"저는."

SCV와 눈이 마주쳤다.

"저는."

내가 말했다.

"저는 저 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연단의 아래로 내려가 그의 짐을 나눠 들었다.

짐을 사이에 두고 그와 내가 손을 잡았다.

나는 사람들의 사이를 헤집어 나왔다.

그와 내가. 손을 잡았다.

그와 내가 말했다.

아임 온 더. 잡.






*

옛날 요임금 때의 일이다.

요임금은 바르고 어진 정치를 하여 정말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평복 차림으로 저자에 나섰다.

네거리에 이르자 아이들이 손을 잡고 노래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임금의 덕이 아닌 것이 없네.

우리는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임금을 따르며 살고 있네."


요임금은 흐믓하였다.

그래도 정말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지 알고 싶어 계속 길을 걸었다.

어느 곳에 한 노인이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 발로 땅을 구르며 노래하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밭을 갈아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임금의 힘이 무슨 소용인가."


이 노래를 들은 요임금은 매우 기뻐하였다.



*

"장수씨 뭐해?"

배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보고 정미인이 물었다.

"네. 배가 불러서요. 밥 먹고 바로 앉으니 졸려요. 혈당 스파이크 왔나봐요."

"지금 잠이 와?"

정미인이 물었다.

"왜요?"

"왜요?"

정미인의 눈이 커졌다.

"아니 선거 유세에 가서 사람들한테 뻥을 쳐도 모자랄 판에. 뭐? 두 형님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다 맞는 얘긴데 어떡해요. 맞는 걸 틀리다 할 수도 없고."

내가 볼맨 소리를 냈다.

"아니 그래도 상대가 틀리고 내 말이 맞다 해야지. 그게 정치의 본질이잖아!"

정미인이 말했다.

"그게 정치의 본질이라구요?"

"그래. 남 이기고 욕하고 윽박질러서 남의 껄 뺏어오는 거!"

"에이. 설마?"

"진짜라니까."

정미인이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뺏기는 뭘 뺏어요? 전 가진 것도 없는데?"

내가 물었다.

"뭐긴 뭐겠냐?"

"뭔데요?"

"표지."

"표요?"

"그래 표. 표 받아서 장사하는 거. 그게 정치잖아?"

정미인이 말했다.

"무슨 표를 받아서 장사해요. 동네 마트 적립도 아니고."

"동네 마트는 포인트라도 주지."

정미인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포인트도 안줘."

정미인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조폭이야."

그녀가 이어 말했다.

"아니. 조폭보다 더 심하지."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조폭은 TV에라도 안나오니까."

TV 화면 가득히 정사홍과 김사인의 얼굴이 비춰지고 있었다. 화장기 머금은 얼굴로 서로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세금으로 출연료까지 줘야하네..."

정미인이 말했다.

"예쁘지도 않은 얼굴."

정미인이 티브이를 껐다.

"다음엔 내가 손가락을 자르지..."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미쳤다고 내가."

정미인이 중얼거렸다.

나는 혈당 스파이크 때문에 잠이 왔다.

졸렸다.



*

"대저 지지율이 사도연합과 동일하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반면. 토론회가 끝난 후 무림맹은 발칵 뒤집혔다.

개방 방주 구걸륜이 말했다.

"맹주. 대륭은 우리 무림맹의 돈줄입니다. 대륭을 잃으면 우리는 모두 거리로 나앉게 될 것입니다."

그가 때에 찌든 타구봉을 바닥에 내리쳤다. 손톱 밑에 때가 검었다.

"그걸 누가 모르오? 대륭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이 없다면 당장 우리 밑에 시의원과 구의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할 것이오. 그들에게 자리를 주지 못한다면 누가 우리 지역구를 관리해주겠습니까?"

남궁세가 금금위가 구걸륜의 말을 받았다.

"방법이 없습니다 맹주. 다시 한번 당 이름을 바꾸거나 저희 개방 천막으로 당사를 옮기시지요. 아니라면 제가 다시 단식투쟁을 하겠습니다. 오랜 거지 생활로 며칠 단식쯤 식은 죽 먹기입니다."

구걸륜이 말하자 금금위가 말을 다시 받았다.

"흥. 밑에 장판 깔고 몰래 초코파이 까먹는 투쟁 따윈 안됩니다. 방주. 지난 단식 활동 때 되려 혈당이 올라 무림맹 전체가 곤혹에 빠졌던 것 기억 나지 않으십니까? 무엇보다 개방 거지 천막은 너무 불결합니다!"

"남궁 문주! 지금 개방을 욕보이시는 게요?"

구걸륜이 파륵 떨었다.

"그만들 하시오!"

정사홍이 소리쳤다.

"양명 이자는 아직 연락이 안되는가?"

정사홍이 물었다.

"예. 워낙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 자이기도 하였고. 오온의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기용한 자이다 보니 컨트롤이 어렵습니다."

구걸륜이 대답했다.

"흠. 이제 와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좋소. 일단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을 대동하여 무림맹의 파퓰리즘 정책과 무상 대책들을 쏟아내시오. 어짜피 예산은 세금으로 충당하면 될 터. 우리가 지금 쓰지 못하면 사도연합이 나중에 쓰게 될 거요."

정사홍이 말하자 금금위가 받았다.

"역시. 맹주. 과연 달인다우십니다. 제가 즉각 공무원과 산하기관에 지시하여 맹주께 올린 꽃다발과 조직 명부도 올리게 하겠습니다. 그들은 어짜피 저희들 꼭두각시 아닙니까."

정사홍이 말을 이었다.

"개방 방주는 사도연합의 비리를 캐세요. 자극적이고 민망한 것일 수록 좋습니다. 가령 매우 로맨틱하게 불륜을 한다거나, 공정하게 아들 시험을 대신 쳐주는 것 등이 좋습니다."

"그... 그런 것은 저희 쪽에도 불리할 텐데요?"

구걸륜이 대답했다.

"시키는대로 하세요. 우리는 대놓고 불륜을 저지르거나 대놓고 취업을 시켜주니 대중들이 우리보단 그들을 더욱 미워할 것입니다!"

"존명!"

"당사의 문은 꼭 걸어잠그고! 여기서 밀리면 다 죽습니다!"

"존명!"

금금위와 구걸륜이 사라졌다.

"성가시게 구는 군 김사인."

정사홍이 입을 비틀며 거만하게 웃었다. 그의 그림자가 무림맹 회의실에 길게 드리웠다.



*

"련주. 지금 지지율이 무림맹과 박빙입니다."

사도연합에선 김사인이 책사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 깨끗한 척을 하세요. 노동자와 여성들을 겨냥한 감성팔이 콘텐츠를 더욱 SNS에 올리시구요."

"하지만 이미 유권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성의 역치가 최고치를 갱신했습니다. 더 이상의 감성팔이는 위험합니다!"

"아니요. 민중들은 감성에 취약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이 표를 가졌다는 착각이에요. 그 착각을 역이용하세요."

김사인이 비릿 웃었다.

"일단 퍼주는 정책을 내세우시구요. 뒷일은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허나 그렇다면 무림맹의 정책과 동일해집니다."

"흥. 어짜피 민중들은 정책을 보고 투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는 건 브랜드지요."

"지금 무림 곳간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세율을 더 올리세요. 줬다 뺐는 것이니 그들은 모릅니다. 우리가 쓰지 못하면 정파 놈들이 다 씁니다."

"존명."

"그리고 무당파의 뒤를 캐세요. 무림맹이 표 받이용으로 무당들과 결탁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존명."

"놈들이 옥새를 가지고 튀지 않게 배후를 잘 살피시구요. 놈들은 여차하면 옥새까지 들고 튀는 놈들입니다."

"존명."

"남녀 갈등과 세대 갈등을 조장하세요. 청년들은 노인이 자기들 미래를 갉아먹는다 생각하게 하고 여성들은 남성이 자기 권리를 훔쳐간다 믿게 하세요. 시장을 잘게 나누고 니치 마켓을 공략하세요. 출산률과 노인 공경 따위 우리 알바 아닙니다."

"존명."

"마지막으로 조평에게 지시하세요. 칼이 필요하면. 칼을 써도 된다고."

"예. 알겠습니다."

책사가 물러났다.

김사인이 홀로 남았다.

"..."

그가 차를 마셨다.

"... 세상에 주인이 없다면."

그가 홀로 중얼댔다.

"내가 그것을 가지리."

그의 눈매가 서늘하게 빛이 났다.



*

현재 시각.

오후 두시 삼십분.

혈당 스파이크에 시달리던 장수는.

홀로 땅을 차고 있었다.






https://youtu.be/IUzJZcKHNM0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적나라한 표현에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미리 사과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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