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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Mar 21. 2020

이혼의 매력

이토록 매력 터지는 캐릭터들이란

서울에 연고도 없다 보니 퇴근 후나, 주말에 만날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딱히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고,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까지 발생해버렸다.


그리하여 자발적인 것 같으면서도 강제적으로 집에 있거나, 아님 사람이 많지 않은 동네 카페를 가는 것이 나의 여유시간을 소비하는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주로 하는 활동은 책을 보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가끔 글을 쓴다

오늘도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스콘을 시킨 후 배가 서서히 차오르는 즐거움을 누리며 책을 보는데, 갑자기 번뜩이는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내가 올해 봤던 콘텐츠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혼을 했거나, 다른 이유로 돌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고 내용들을 취했는데, 돌아보니 다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목이 빠지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해외직구의 택배처럼 간만에 글의 소재가 날 찾아왔다.

 



내가 올해 본 드라마, 영화, 소설들이다.


동백꽃 필 무렵

동백이는 이혼은 안 했어도, 미혼모니까 돌싱이다. 작년 연말, 이 드라마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부터 꼭 보고 싶었다.


스릴러가 겸비된 일반적인 로맨스 같지 않은 구성, 인간미넘치는 대사에서 베어 나오는 작가의 필력, 몰입도 높은 배우들의 연기 등 흥미 요소가 넘치는 드라마에서 처음에 나의 관심을 끈 요인은 공효진이 미혼모로 나온다는 설정이었다.


종방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본방 사수하면서 다음 주를 기다리는 고통이 나에겐 더 힘들기에 종영이 되면 그때부터 드라마를 본다) 뒤늦게 동백이와 용식이에 빠져버렸다.

동백이의 매력을 다시 말해 무엇하나. 연기 하는 사람이 공블리 공효진인데.


댓 번 우려낸 사골처럼 진국인 황용식이를 한눈에 사로잡아 사랑에 인생을 올인하게끔 만들었고, 옹산의 모든 남자들 눈길을 한 번 이상 끌어 동네 언니들의 핍박과 질투를 받으면서도 결국에 그녀들까지 자기편으로 만들어 버린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다.


까불이의 협박에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도 굴하지 않은 동백이는 뭐랄까. 위대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스토브리그

믿. 보. 배.(믿고 보는 배우) 남궁민이 나오는 드라마다. 이거 하나로 볼 이유가 충분했다. 전에 그가 출연한 ‘닥터 프리즈너’란 드라마를 봤는데, 몰입도 최강이었다(연말에 상을 못 받은 게 아쉬울 정도였다. 대신 공효진이 받아서 그걸로 나름 위안을 삼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이 들 때까지 그의 연기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스토브리를 보는 순간만큼은 내일 출근 걱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번 보기 시작하니 재생을 멈출 수 없었고, 불타는 금요일인 어제 드디어 정주행을 마쳤다.

비록 이 드라마에서 그의 이혼 경력은 드라마 전개상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티끌만 한 비중을 차지했지만, 그가 연기한 백승수란 캐릭터는 이혼의 과정도 쉽게 지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돌싱남 백승수가 드림즈 단장이 된 후 그를 해하려는 폭력과 팀을 해체시키려는 외압이 계속 이어진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대기업인 모기업과 당당히 맞짱을 뜨고, 츤데레처럼 부하직원을 챙기고. 빠른 손익 판단 등으로 만년 꼴찌 팀을 우승에 가장 근접한 팀으로 만들어 냈다.


결혼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제목이 눈에 띄었고, 어벤저스의 걸 크러쉬 나타샤 로마노프 역의 스칼렛 요한슨이 나와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칼렛 요한슨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팔색조 같은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된 영화였다.


그동안 익숙했던 히어로의 모습은 미세먼지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이혼을 마주하게 된 현실 여자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들이 헤어지는 과정을 볼 때는 나의 경험들도 다시금 떠올랐고, 공감을 많이 한 영화다.


좋지 않은 기억 굳이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같은 후회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 다시 되짚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영화는 이혼 상담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왕년의 하이틴 스타였던 스칼렛 요한슨은 결혼을 하고 난 후, 재능 있는 연출가인 남편의 그늘에 점점 가려진다. 특별한 문제는 없었고, 이대로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나를 찾기 위해 이혼을 택한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를 직시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아이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남편과의 관계를 마무리된 후, 그녀는 다시 배우로서 빛을 받으면서, 새로운 사랑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한다.


물론 전남편과의 관계도 더욱 원활해졌다.



봉제 인형 살인 사건

다음앱의 책 추천해주는 코너에서 제목을 보게 되었다. 제목부터 자극적이었다. 봉제인형 살인사건이라니. 시체를 갖고 조작을 한 건가. 책을 살 수밖에 없게끔 맛깔나게 설명을 해서 바로 구매 버튼을 누르고 완독 했다.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시신의 여섯 부위를 이어 붙인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소설이다. 사건의 담당인 울프 형사는 겉으로는 전형적인 마초형의 남자다.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범인을 추적하다가 지금 벌어진 사건의 시발점이 자기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 그는 어떻게든 범인을 잡고 종결짓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결국 사건을 해결한다.


타우누스 시리즈

몇 년 전 읽었던 책인데, 이사를 한 후 책 정리하다가 눈에 띄어 다시 한번 읽었다.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게 정말로 다행이었다. 이 시리즈들 덕분에 코로나를 피해 집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이혼의 끝판왕이다. 시리즈라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혼한 사람들이 늘어난다. 관계도 복잡하다.

 
- 피아와 헤닝은 부부였지만 이혼하였고, 몇 년 후 헤닝은 피아의 친구 미리엄과 재혼한다.
- 코지마는 마흔 중반에 본인 의사로 셋째를 낳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탐험가와 바람이 난다.

- 코지마의 바람으로 이혼하게 된 올리버 보텐슈타인은 첫사랑이자 사돈인 잉카와 동거한다.


심지어 비중 없는 인물 중에도 이혼한 사람이 많다. 독일은 이혼에 정말 관대한 문화를 가진 듯하다. 이런 관계만 들으면 막장드라마 같지만, 구성이 너무도 촘촘하여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추리 소설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했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작품이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총 9권까지 출판되었고,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기에 내용은 생략한다. 참고로 앞에 말한 막장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인물들은 능력 있는 법의학자, 경찰, 수의사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형태 중 하나는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것이다. 스토브리그의 백승수 단장(남궁민)을 제외하고는 모든 주인공들에게 이혼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드라마에는 이혼 과정에 관한 내용이 없다).


흔히 말하는 쿨한 마인드의 서양인들에게도 이혼은 힘든 시간인 듯하다. 힘든 시간을 버티고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도 만나고, 전 배우자와의 관계도 원만해지고, 이혼 이후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을 즐기고, 직업적 성취도 거두면서 각자의 인생에 성공의 발자취를 남긴다.

실존적 아픔을 겪고 그걸 이겨낸 사람만이 성숙해지고 자신을 변화시킬  있다.’ 


타우누스 시리즈 중에 나오는 말이다.  이혼만큼 아픈 실존적 아픔도 흔치 않다.


커밍아웃으로 오랫동안 세상의 멸시와 비난을 받은 홍석천이 지금은 탑게이가 되었듯, 이혼의 아픔을 이겨낸 사람도 탑돌싱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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