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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Mar 15. 2020

이혼과 사별, 그 이후의 삶

나름 토론

나의 지인 중에는 전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이 있다. 이 분은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난 이후에 홀로 일을 하면서, 아이도 키우면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이혼한 사람들이 부럽다고 했다. 적어도 한 달에 1~2번 전 배우자가 아이와 면접을 하는 시간에 나 홀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양육비도 꼬박꼬박 보내주니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그 이유라고 했다.


만약 자신도 사별이 아닌 이혼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삶이 조금 나았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분이 부러워한 대상은 이 말을 듣자마자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차라리 사별이 속 편하다고 했다. 지금처럼 면접이 진행되고, 양육비가 정해진 날짜에 들어오기까지 자기가 겪은 힘든 시간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핀잔을 주었다.


양육비에 관해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고, 면접을 진행하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다툼이 발생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 나이라 지금도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행사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함께 참석하는 자리도 있는데 그러한 경험들이 결코 기분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이 자신의 처지보다 낫다는 의견을 티키타카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결과는 ‘사별이 낫다’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딱히 모두가 수긍할만한 완벽한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자리에 사별을 경험했던 사람이 그분 1명뿐이라 그리된 것 같다.


원래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난 고난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다수결로 결론을 내면 이렇게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둘 모두가 나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 명은 전 배우자와의 관계가 그리 모나지 않은 사이라 부러웠고(헤어졌지만 서로의 연애에 관해서 알고 있고 통화도 자연스레 진행되기에 나는 이 분에게 할리우드 스타일이라고 했다), 한 명은 모난 관계의 배우자가 없다는 것이 부러웠다. 전 배우자와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은 사람의 입장에서 둘의 얘기는 그저 배부른 소리일 뿐이었다.


그래도 다수결에서는 ‘이혼보다 사별이 낫다’에 한 표를 보탰다. 사별은 경우에 따라 좋은 기억 가득한 결혼 생활일 수도 있지만, 이혼은 거의 100%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이 전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먼저 다른 세상으로 보내는 경험을 겪어보지 않아 그 슬픔의 크기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아마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 이상이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렇지만 사랑했던 사람과 악으로 싸우는 좌절감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툼으로 얼룩진 기억보다는 추억으로 가득 찬 과거라도 존재한다면 남은  시간의 어느 한순간이라도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라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혼하면 양육비 받잖아.”

내 말을 들은 그분의 답변이었다.

“님은 상속받았잖아.”

한국의 이혼 가정에서 양육비는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나, 다른 조건들을 배제하고 상속재산과 비교하면 로또와 연금복권의 차이정도 같았다.


일시불로 받는 것과 할부로 받는 것.

전에 독일에서 잠시 살던 지인이 말해준 일화다.

“내 옆집에 살던 언니가 이사를 가는데, 남자가 3명이 와서 이삿짐을 옮기는 거야. 처음에는 당연히 이삿짐센터 직원들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조금 이상하더라고. 셋이 짐을 큰 화물차 1대에 싣는 것이 아니라 일반 트럭 1대랑 SUV 2대에 넣는 거야. 아무리 봐도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단 말이지. 그래서 그 언니한테 말하니까 막 웃으면서 그러다라고. 첫 번째 남편, 두 번째 남편, 현재 남자 친구라고.”

당시는 내가 이혼하기 전이라 서양인들의 쿨한 마인드에 한 번 놀라고 다음 화제로 넘어갔는데,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와 태도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




사실, 독일인들이나, 이 둘의 상황만 놓고 보면 난 이혼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많은 상속 재산을 받더라도 아이들에게 아빠나 엄마만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도 있으니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진 못해도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렇지만 아직 주변에서 이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이혼했다고 굳이 원수가 되기보다 양육의 동료로 남는 관계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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