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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Feb 24. 2020

돌싱의 연애

편애중계에 너무 몰입했다


‘편애중계’라는 예능프로그램을 봤다. 원래 즐겨보는 방송은 아니지만, 이번 방송은 돌싱남 특집이라는 연예 뉴스를 보게 되어 시청하게 됐다.


일상생활에서도 이혼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표현해본다면 저 밑에 있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지상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 듯한 종류의 경험을 공유한 동지의식(?)이 생기는데, 모처럼 그런 마음을 갖고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혼 후 연애가 궁금했다. 이혼 후 끝 모르게 무너져 내린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자기 관리에 더욱 충실하고, 사교모임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며, 아이를 키우는 그들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돌싱남 3명과 여성 3명이 미팅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찾는 내용이었다. 처음 만나 호감을 표시하는 모습에서 내가 괜히 설렜고, 조심스레 질문하는 모습에서는 그러한 신중함이 이해가 되었다. 이들의 만남 과정을 중계하는 연예인들은 돌싱이라 그런지 저번 모태솔로 특집과 달리 시원시원하다고 표현을 했다.


아무래도 돌싱은 최소 1번 이상의 연애와 결혼의 경험이 있기에 연애에 관한 어느 정도 기본 소양이  있기에 진도가 빨리 진행될 수도 있지만, 최소 1번의 이혼으로 예전과 달리 몇 배의 신중함과 조바심으로 스스로를 주춤거리게 만들 수도 있다.




돌싱의 연애는 분명히 어렵다.


싱글일 때처럼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고백을 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내 마음을 표시하기까지 복잡하게 꼬인 이성과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야 하고, 어렵사리 인연이 되었어도 관계의 지속에 있어 여러 개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

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치명적일 만큼 날 괴롭히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장애물이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이혼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바로 결심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만든 원인 중 하나는 이혼한 사람에 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겉 보기에는 말짱해도 우리가 모르는
문제가 있으니 이혼했겠지
본인 가정도 잘 이끌지 못하면서 무슨
사회생활을 한다고
팔자가 센 가 보다


엄마, 아빠가 있고 자녀 2명이 있는 4인 가족의 모습을 가장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여기는 이 곳에서 그다지 강인하지도 모질지도 않은 성격의 내가 과연 이런 시선들을 견뎌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한 눈초리들을 나만 받으면 그나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부모님과 아이들도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도 너무 괴로웠다. 못난 아들이라 부모 속을 썩이고, 미안한 아빠라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그토록 이혼을 망설였다.


하지만 나의 결혼 생활은 깨진 유리창처럼 점점 금과 구멍은 늘어만 갔고, 결국에 박살이 났다. 물론 별거와 이혼 과정의 초기에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다시 생각해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무리가 된 지금에서 돌아봤을 때, 언젠가 백사장 위의 모래탑처럼 무너져버릴 관계였기에, 더욱 빨리 이혼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당시 이혼 후 나에게 생길 거라고 염려했던 어려움들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나마 생긴 일들도 어찌어찌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이혼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바늘처럼 나를 찌르지 않았다.


단지 몇 년 사이에 이혼에 대한 시선이 급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때는 내가 겪어보지 않았기에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이 컸을 뿐이고, 지금은 막상 겪어보니 별 거 아니네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고로, 이 문제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자신에게 거대한 장벽이 될 수도, 혹은 웃어넘길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 살기도 바쁘고 힘든 세상인데, 점점 늘어가는 이혼 인구에 대해 관심 가질 여유가 없다.



아이

기본적으로 연애는 남녀 두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돌싱의 연애는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가 등장한다. 바로 연애 당사자의 자녀이다. 특히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나이일수록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을 것이다. 평소 가고 싶었지만 못 가본 곳도 가야 하고, 손끝만 닿았을 때의 짜릿짜릿함도 느끼고 싶고, 하루 종일 그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고 싶을 때 도 있다.


어렵사리 다시 쓰게 되는 로맨스 소설이 나와 상대방 오직 두 사람만의 달달한 에피소드로만 구성되었으면 하지만, 당사자들의 자녀는 이야기가 그리 흘러가도록 도와주질 않는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이 그리 행동하는 것은 아직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나이기에 당연하다. 엄마, 아빠의 새로운 썸이나 사랑이야기보다 본인이 보고 싶은 겨울왕국을 봐야 하고 먹고 싶은 킨더 초콜릿에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데이트를 할 때도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없고, 식사를 할 때도 어린이 세트가 있는 음식점을 가야 한다. 그렇다고 매번 데이트를 할 때마다 아이 위주의 만남을 가질 수도 없고, 부모님이나 지인의 도움을 받는 것도 어쩌다 한 두 번이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의 어느 지점에서 딜레마가 찾아올 듯싶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생명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과 가슴 아래 깊은 곳에서 벅찬 오르는 감동을 느꼈고, 아이가 아팠을 때 처음으로 내가 대신 아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 여리고 가냘픈 존재를 위해 그 무엇도 할 수 있다고 다짐했는데. 지금은 그러한 아이가 내 인생의 천덕꾸러기처럼 여겨진다.


혹시 이러한 생각이 들 때는 자신에게 부담이 없는 마음 편안한 결정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끊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이러한 부분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연애를 하면 되고, 이 부분이 계속 문제가 되면 그 연애는 거기서 매듭을 지으면 된다.


짧은 연애였지만, 잠시나마 행복했던 기억으로 만족하면 된다. 괜히 이번 이별로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사랑은 없어’ 같은 다짐에 다짐을 하며 앞으로 아이를 위해 살겠다며 본인의 삶을 옥죄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더욱 적합한 여건이 되었을 때 그때 다른 사랑을 만나면 된다.


사랑의 대상을 결정하는 것도, 시기를 택하는 것도 나의 선택이다.


연애의 결말

싱글일 때 연애의 완성은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누리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만들어 백년해로 하는 것. 그것이 연애의 최종 목적지라 여겼다. 그러나 돌싱의 연애에서는 결혼이 종착지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우선 이미 결혼을 해봤다. 연애는 여러 번 해볼 수 있지만 결혼은 다르다. 결혼과 이혼은 할 때마다 당사자에게 보이지 않는 치명적인 생채기를 남기기에 두 번 이상을 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아이가 있다면 가족계획에 관한 고민도 훨씬 복잡해진다. 그래서 결혼에 이르지 못할 연애를 여러 번 하면서 이별을 겪고 싶지 않기에 새로운 인연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이 꼭 연애의 종착역은 아니다. 돌싱의 연애는 서로의 다른 입장으로 여러 가지 변수가 등장하고, 그렇기에 기존의 틀에 박힌 모습이 아닌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을 완성할 수도 있다.


다시 쓰는 사랑 이야기의 결말이 기존에 내가 알던 것과 다르다고 먼저 겁을 먹거나 위축될 필요는 없다.


만약 다시 한번 연애 세포가 깨어나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결혼보다는 같은 동네에서 다른 집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오고 갈 수 있는 그런 만남을 하고 싶다. 이미 서로 만들어 놓은 공간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주 보고 의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혼한 사람의 장점 중 하나는 몇 번이고 계속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연애 당시나 결혼 초기의 찌릿찌릿, 불끈불끈함은 사라진다.


이건 사랑이 식었다기보다도 인간의 뇌 구조가 그리 되었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대신 그 자리를 믿음, 신뢰, 의리 등 더욱 견고한 무언가가 채워준다. 살아가면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 같은 존재가 있는 것은 너무도 축복받은 것이다.  


다만 돌싱들은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짝을 찾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번에 함께할 배필을 고르는 복은 없는 대신 꿀 같은 달콤함을 여러 번 맛볼 수 있는 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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