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정은 집에서 만드세요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저작권 탓인지 예전만큼 거리에서 캐럴이 들리지도 않고, 미디어에서도 연말 분위기가 그리 느껴지지 않지만, 직장이나 소속된 모임에서는 연말이라고 구색을 갖추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망년회, 송년회, 송년의 밤, 종무식 이름은 다르지만 각종 연말 약속들이 즐비하게 생기고 있다.
인싸가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지난 일 년동안 잘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연말에 한 번쯤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교류의 자리가 있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자리가 있기에 협소하지만, 나름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면 괜히 반가운 기분이 들기도 하고, 친근함이 솟구치면서,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두세 시간은 훅 지나간다. 그러나 모든 모임이 이렇게 즐길만한 자리는 아니다. 다양한 연말 모임 중 내 기분을 심히 불쾌하게 만드는 모임도 있다.
바로 가족동반 모임이다. 예전에 나 역시,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가족일 때는 가족동반 모임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아이들도 더 많은 관심과 이쁨을 받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자리라 여겼다. 지인들이 아이들을 이뻐라 해서 주는 용돈은 덤이었다. 그러한 자리를 즐기면 즐겼지 피할 이유는 없어서 가족동반 모임에 항상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의 가정은 비트코인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변동성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결국엔 박살이 나버렸다. 입장이 바뀌어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팀장님이 왜 연말 송년회에 혼자 오시는지, 대학교 동문회를 가족 동반으로 하자고 했을 때 왜 극구 반대하던 선배가 왜 그리 행동했는지 이제는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정말 몰랐다. 1년에 한 번쯤은 가족끼리 교류하면 좋을 텐데 왜 함께 오지 않았을까 하는 의아함만 있었다. 이제는 그때의 내가 단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이들이 어려서 행복할 확률이 많았던 시기였다는 것, 그분들은 귀차니즘이든, 불화든, 별거든, 이혼이든, 무슨 이유가 있어서 혼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가족동반 모임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다. 지인들의 가족을 만나면 한층 더 친밀감이 쌓이는 긍정적인 느낌을 나도 겪어봤기 때문이다. 단지 꺼려지는 모임도 있다는 것이다. 내키지 않는 가족 동반 모임의 주동자는 서열관계가 있는 조직의 보쓰다.
보쓰는 정상가족이다. 본인에게는 남편이든, 부인이든 데리고 올 사람이 있다. 실제로 라면과 김치처럼 궁합이 좋아서 한 시도 떨어지기 싫어 모임에 데리고 오는 건지, 쇼윈도 부부 짓을 하려고 그러는지, 대가족을 꿈꿨지만 신체적, 경제적 여건 때문에 핵가족이 되어 이름도 모르는 가족들을 소집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은 함께 올 모임 파트너가 있기에 가족 동반 모임을 한다. 그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직원들 (회사 모임은 강제성이 있어서 참가하여야 하기에) 에게 남편 어디 갔냐, 부인 왜 안 오냐, 남자 친구는 어딨냐 등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물어본다.
본인은 배우자가 있겠지만, 직원 중에는 별거 중인 사람, 이혼한 사람, 사별한 사람-그나마 사별의 경우는 자신의 입장을 조금 더 수월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미혼모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는데 가족동반 모임은 그런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 그래. 이런 말을 하실 수도 있지만, 가족은 가족이고, 회사는 회사지,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는 양립할 수 없는 단어들의 배열 같다. 마치 살이 찌지 않는 카라멜 마끼아또 같은 느낌이다.
제발 연말에 가족 같은 분위기는 엄한 곳에서 찾지 말고, 집에서 가족들과 오붓하게 분위기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