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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Feb 03. 2020

영화<결혼 이야기>를 보고

제목과 내용은 정반대

<결혼 이야기>

제목은 결혼 이야기지만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연인들의 모습이나 결혼의 시작 혹은 완성이 되어가는 과정에 관한 것이 아닌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는 모습을 상세하게 그린 영화였다.


부부 사이의 언쟁, 별거, 외도, 상담, 면접, 소송 등 이혼하는 과정에 만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어벤저스의 걸 크러쉬 나타샤 로마노프 역으로 친숙한 스칼렛 요한손이 니콜 역으로, 스타워즈의 아담 드라이버가 찰리 역으로 결혼의 마지막을 맞이한 부부를 연기한다.



두 사람이 부부 상담을 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서로가 미리 적어온 상대방의 장점들이 나열된다. 누군가의 장점을 찾아내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 둘은 배우자로서, 부모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장점을 너무도 많이 찾아냈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애정보다는 불만 혹은 분노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 시기임에도 장점을 많이 적어온 두 사람의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남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장점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만약 나에게 전 배우자의 장점에 대해 적어보라고 하면 나는 과연 몇 줄이나 쓸 수 있을까 싶었다.

상담사는 각자 적어온 것을 상대방에게 읽어주라고 한다. 별거를 하고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질 수 있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이 심하게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니콜은 요청을 거부하고 사무실을 떠난다.


대화로서 풀어가려 했던 두 사람의 이혼은 니콜이 LA로 가게 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니콜이 이혼을 준비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동료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혼을 담당했던 변호사 노라를 추천한다. 변호사와 마주한 니콜은 자신의 결혼과 이혼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꺼내기 시작한다.

애한테 이래도 되나 모르겠어요 ”

자녀가 있는 부부가 이혼을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아이가 받게 될 상처일 것이다.


혹시 엄마와 아빠가 헤어진 것이 자기 탓일 거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될지, 부모 중 사라진 한 명의 역할을 어떻게 채워줘야할지, 한부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등 아이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건강에 대해 염려를 한다.

망설이는 니콜에게 노라는 말한다.


이건 희망찬 행동이에요. 당신은  나은 인생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죠.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예요. 좋아질 일만 남았죠.”

이혼하는 과정에서 두려움, 불안함, 스트레스 등 사람에게 좋지 않은 호르몬을 생성할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을 느꼈다. 지인들에게 현재 내 상황을 토로해 보기도 했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을 술로 채워 보기도 했고, 극단적인 선택의 방법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부정적 감정의 파도는 계속 밀려왔고, 파고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언젠가는 날이 개는 것처럼 나 역시 어느 순간 지금이 내 인생의 밑바닥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래도 살아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망가져서 쓸모없다고 생각한 나의 인생이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니콜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하여 말을 한다.


 계속 찰리와 그의 인생에 맞춰서 살았어요. 그만큼 좋았고 살아있는 기분이었거든요

처음에  스타 배우였고, 특별한 사람이라 관객들이  보러 온다고 느꼈어요. 근데  잊혀 갖고......
   극단이 호평받으면서  점점 보잘것없어졌어요. 그리고 ...    나갔던 반짝 스타로 남았어요
   그리고 찰리가 주목받았죠. 사실 그건... 상관없었는데...... 내가 작아졌어요. 내가 살아난  아니라 찰리에게 생기를 더해 줬던 거죠.”

한 사람만으로 세상이 충분했을 때도 있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았고, 둘 만의 공간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음에도 앞으로 채워나갈 생각에 행복했었다.


그러나 반복된 거짓말과 눈속임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면서 신혼 때 생기가 돌던 나의 모습도 시들어 버린 꽃처럼 변해갔다.

찰리는  인정하지 않았어요. 자기와 다른 별개의 인격체로요.”

누군가의 남편으로써 인정받는 느낌을 받지를 못했다. 상대방은 자신의 생존에 내가 필요하였고, 난 그러한 목적에 충실한 도구에 불과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다.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과실이든 자신의 행동이 옳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을 때는 사과를 하고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진심 어린 사과가 용서의 전부는 아니지만 부부니까, 내 아이의 엄마니까 한 번 더 이해하려 노력했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는 마음속으로 삭힐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해의 폭도 점점 좁아져만 갔다. 습관성 거짓말은 아닐지, 리플리 증후군처럼 병은 아닐지, 나를 남편은 물론 한 사람의 인격체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심만 짙어졌다.



이혼 변호사의 개입으로 둘의 이혼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하게 된다.


일부러 여러 변호사와 상담을 해 서 상대방의 변호사 선임을 어렵게 만들고-미국의 경우 한 사람이 변호사와 상담만 하더라도 상대방은 그 변호사와 위임계약을 맺을 수 없다-, 일상적이었던 대화조차 언쟁으로 재해석되고, 바라던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사라지고, 더욱 엉켜버려 풀기 힘든 관계만이 남아버렸다.


이혼 소송이 길어지면서 니콜의 엄마는 딸의 변호사 비용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찰리는 파산 직전까지 간다. 그러한 현실 문제 앞에서 니콜은 찰리에게 합의를 제안한다.


하지만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에서 대화는 처음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진행되고만다.


대화에 임하는 태도를 문제 삼고, 서로의 단점을 언급하고, 가족들의 단점까지 결부시키고, 결국엔 욕을 하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대화는 시비조의 말투로 시작되었다. 낮은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고, 상대가 꼼짝 못 할 근거를 들이대면서 압박하는 것이 일상 다반사가 되었다. 과거의 잘못이 다시 언급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그러한 싸움 끝에 상대방이 방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면 싸움에서 이긴 승리감보다는 지금 우리의 모습에 환멸감이 더욱 밀려왔다. 이겨도 이긴 사람이 없는 결국 모두가 패자인 그러한 싸움이었다.



서로를 너무 사랑했고, 가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이 부부는 결국 이혼에 도달한다. 영화 막바지에 찰리는 ‘being alive’ 라는 노래를 부른다


Someone to need you too much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Someone to know you too well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Someone to pull you up short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to put you through hell                                

지옥으로 경함 하게 하는 사람
And give you support for being alive       

그리고 살아가도록 날 도와주지
make me alive                                               

내가 살아가게 하지
make me alive                                               

내가 살아가게 하지


......


As frightened as you                                  

너만큼 겁은 나지만,
to help us survive,                                       

같이 살아가야지
Being alive                                                    

살아가자
Being alive                                                    

살아가자
Being alive                                                    

살아가자

헤어진 부부의 마음을 이토록 잘 표현한 노래는 처음이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담담하게 노래를 부르는 그의 표정에서 이혼한 당시 기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소송 중일 때는 이혼만 확정되면 “동네 사람들. 저 이혼했어요. 아이고 좋아라.” 하고 잔치를 벌이고 싶었건만 막상 판결이 났을 때는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아마도 헤어지는 과정에서 모든 감정을 소진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제 나는 완전한 이혼남이구나 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한 때는 정말 누구보다 사랑했고, 어느 순간엔 어떤 것보다 증오했지만,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그 사람이나 나나 그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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