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계의 피카츄, 라이츄가 되다
나는 소송 기간은 3년다. 2017년 1월에 소 제기를 했고 이제 곧 2019년이 끝나가니 꽉 찬 3년 차다. 남들은 해보지도 않을 것, 해도 짧게 끝날 것을 3년이나 했으니 엄청난 경험이다. 만약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재취업을 하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이혼 업계에 발을 들일 수 있을 만큼 나름 내공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소송기간만 3년에 달한 것이 아니다. 그 시간에 남들이 하는 것들은 다 해봤다. 증거수집, 가정조사, 소장 작성, 재산 추적, 협의, 조정 등 웬만한 건 다 해봤다.
하다 하다 이번에는 나 홀로 소송을 진행했다.
이렇게까지 진화하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다.
1심의 변호사는 친척분의 친구였다. 당연히 이혼 판결이 날 것이라 믿었고, 친척분-법조계에 몸을 담고 있다-이 소개해 줘서 어련히 알아서 잘해 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자료만 넘기고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관심의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 그 날의 충격은 전날 상한가 친 주식을 내일도 오르겠지라는 생각에 종가로 매입했는데 다음날 30% 하한가 맞은 것보다 더 컸다.
당연히 원고 승소로 끝날 것이라 예상했는데 대반전이었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 판결문, 원고와 피고 양측 서면을 다 읽어봤다. 다 보고 나니 판결에 수긍이 갔다. 변호사는 내 얘기를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엉뚱한 이야기를 써놓았고, 상대방의 허무맹랑한 주장에는 반박도 하지 않았다.
시간과 돈을 생각해서 욕을 막 퍼붓고 싶었지만, 친척의 얼굴을 보아 그러지 못하고 "제 이야기를 제대로 안 들으신 것 같고 많이 서운하다."라고 말하고 인연을 끊었다. 아직도 그 변호사 사무실 앞을 지나가면 들어가서 욕을 퍼부어주고 싶다.
다시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내가 직접 진술 서면을 작성했다. 초안을 작성해서 사무장에게 넘기면 거기에 살을 붙여서 법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1심 때는 마지막 변론기일만 출석했지만, 2심부터는 한 번도 빠짐없이 나갔다.
심지어 수술을 받아 입원했을 때도 병원에서는 외출을 금지했지만, 몰래 나와 출석했다. 절박할수록, 간절할수록 소원이 이루어질 확률이 크다고 믿었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한 결과 나는 2심을 이겼다.
하지만 나의 전 배우자는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다. 역시나 상고를 했다. 나는 이혼소송으로 대법원까지 가봤다. 밟고 싶지 않은 이혼의 단계를 다 거친 것이다. 상고심은 법리로만 판단하기에 이혼소송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당연히 내가 이겼다.
하지만 상대방과의 끔찍한 인연은 여기서 끝나질 않았다. 이혼하면서 가장 옳지 못한 수단이라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아이를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비양육자와의 면접을 차단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다. 소송 중에도 법원은 상대방에게 면접을 재개할 수 있도록 협조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2심부터 뜻대로 되지 않은 상대방은 아이와의 면접을 막았고, 별다른 수단이 없는 나는 법의 도움을 받고자 했다.
면접이행명령을 신청해서 법원의 개입으로 면접을 재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고민되는 것은 변호사 선임비용이었다. 이미 지난 소송으로 많은 비용을 지출했기에 더 이상의 출혈을 원치 않았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홀로 임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소장 접수만 변호사 사무실에서 하고 나머지는 직접 했다. 요즘에는 전자소송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인터넷 게시판에 파일 업로드하듯 손쉽게 소송 관련 서류를 제출할 수 있다. 제출할 서류의 양식을 선택하고 기존에 작성한 파일을 업로드 하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서면자료 작성부터 변론기일 참석까지 홀로했다. 상대방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나왔지만 나는 혼자 나갔을 때, 쫄리지 않았다. 오히려 홀로 나온 내가 기특하다 생각될 정도로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샘솟았다.
물론 지지 않을 싸움이라 생각되었고, 비송사건-어떤 사건 대해 일반적인 소송절차를 따르지 않고 법원이 후견적 역할을 하여 간이·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기에 셀프로 한 것도 있다. 그래도 뭔가 괜히 뿌듯하다. 피카츄에서 라이츄로 진화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