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이 똥이 되는 과정
내가 중학생일 때 ‘김혜수의 플러스 유’라는 토크쇼가 있었다. 남자가 봤을 때 너무 예쁘지만, 여자가 봤을 때는 더욱 아름다운 배우 김혜수 님이 메인 MC였고, 보조 게스트로 차승원 님이 나왔었다.
지금은 ‘삼시 세 끼’에서 요리 잘하는 배우인 차주부로 유명하지만, 90년대 세기말 TV에서 볼 수 있었던 그의 모습은 보는 순간 입이 쫙 벌어질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왔었다. 큰 키에 남자다운 이목구비, 넘치는 자신감과 호탕한 웃음을 보이는 그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다 가진 남자였었다. 적어도 혈기왕성한 중학생이었던 그 때의 나에겐 그랬다.
이토록 완벽한 남자가 방송에서 자신은 결혼을 일찍 해서 이미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아들에 대한 사랑도 자연스레 표출하곤 했다. 영화 300의 스파르타 전사들처럼 남성의 짙은 향기만 뿜어낼 줄 알았던 차승원 님에게 이렇게 달달한 면도 있었음을 알게 된 후로, 나의 병은 시작되었다.
바로 ‘차승원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병이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남자 차승원의 매력 넘치는 부분만을 골라서 닮고 싶었다. 하지만 그 넘치는 매력을 닮기엔 너무도 제약사항이 많았다. 우선 키랑 외모는 하늘과 유전자가 물려주는 거니까 어찌할 수가 없어서 패스했다. 잘개 쪼개져 탄탄한 근육으로 둘러싸인 몸매는 아직은 학생이니까 학업에 충실하자라는 얼토당토 한 핑계로 넘겨버렸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처럼 멋진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 이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계곡으로, 바다로, 스키장으로 주말마다 놀러 다니셨다. 덕분에 동네 놀이터에서 놀던 친구들에 비해 여러 장소에서 행복했던 기억들을 만들 수 있었고, 그때를 회상하면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게 되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좋은 아빠와, 진짜 아빠가 선물해 준 추억 돋는 경험들로 멋진 아빠가 되는 것은 현실 가능한 꿈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연애를 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스무 살이 되면 대학에 가서 얘랑 결혼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생각이지만, 당시에는 첫사랑의 풋풋함이 만들어낸 결심으로 여겼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애가 고3의 시기에 이르렀을 때 그 친구의 늦둥이 동생이 태어났다. 서로의 집에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사이였기에 동생을 볼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나랑 18살 차이가 아기가 그토록 이뻐 보일 줄은 몰랐다. 아기의 몸에서는 달콤하면서 순수한 냄새가 났고, 어쩌다 인심 써서 웃어줄 때는 기분이 너무도 좋았다. 그렇게 아이는 나의 ‘스무 살 아빠’에 대한 환상을 더욱 굳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고등학생의 계획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질 않았다. 몹시도 차가웠던 11월의 어느 날, 수능의 실패라는 엄청난 좌절을 겪으면서, 우리는 가슴 아픈 이별을 하였다. 동시에 스무 살에 아빠가 되겠다는 환상은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20대의 연애를 할 때는 그런 환상이 생기질 않았다. 고등학생 때 늘 품고 있던 '20대만 되면 삶이 엄청나게 바뀔 것 같은 기대'가 무너지면서, 삶이란 달콤하기만 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취업을 하고 경제적 능력치가 레벨업 되면서 저 깊은 지하에 묵혀뒀던 나의 '차승원 병'이 슬금슬금 지상으로 올라와 뇌의 대부분을 잠식하게 되었다.
“지금 만나는 여자랑 올해 말, 내년 초에 결혼할 거야.”
지인들에게 ‘올말 내초’에 결혼하겠다를 외치고 다녔고, 그 말대로 만난 지 3개월 만에 솜사탕처럼 부드러우면서, 마카롱처럼 달콤한 신혼의 문으로 들어갔다.
입에 달달한 음식은 먹을 때는 너무도 행복하지만,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의 원인이 되고 원래대로 돌아가기까지 다이어트라는 수 백번 포기하는 혹독한 과정을 거치게 만드는 것처럼. 너무도 황홀했고,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꿀 같은 시기는 웨딩 로드를 걸은 후 딱 한 달만에 헬게이트로 변해버렸다.
말과 행동이 너무도 다른, 일상의 거짓말이 아닌 리플리 증후군을 의심할 정도의 모습을 보인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은 점차 식어갔고, 줄어드는 사랑의 크기에 비례해 환상도 깨져만 갔다. 그럴듯한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순간을 모면하자고 하는 거짓말까지 품고 살기에는 나란 사람의 그릇은 그렇게 넓질 않았다.
꿈꾸었던 환상이 부서져가는 현실이 되어갔음에도 마지막 남은 꿈은 지키고 싶었다. 차승원처럼 멋진 아빠가 되는 것. 그게 결혼 생활의 최후의 보루였다. 하지만 부부간의 싸움이 치열해져 가면서 이대로 있다가 이 꿈마저도 지키지 못하게 될 것 같았고, 그때 난 이혼을 결심했다.
사람들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을 때마다 28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을 하곤 한다. 내 삶의 최악의 빌런이었던 그 사람과의 연을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고, 그 빌런을 피해 다른 사람과 만난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결혼을 안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결혼과 아빠로서의 환상이 가득 찬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깨지지 않고 더욱 부풀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길가다 노란색 덩어리를 봤을 때, 무시하고 지나가 버리면 혹시 황금 아닌가 하는 생각과 상상의 날개를 펼치겠지만, 발로 뻥 차 버리면 똥이었구나를 알게 되면서 쓰레기통의 휴지처럼 구겨져버린 기분에 처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두 번 다시 길 위의 똥을 발로 차는 행동을 않을 수 있게 된다.
황금이 똥이 되는 과정에서 비싸고 힘든 경험을 했지만, 몸으로 배운 교훈과 지켜야 될 소중함들이 생겼기에 후회하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