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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어블 Jan 23. 2020

취재와 의미 디자인

뉴스 스토리텔링 by 권보연, 신진주

그레마스 기호 사각형


뉴스 제작이란 사건의 전달 가치를 설득하는 과정이며, 이는 사건 심층의 뜻과 맥락을 정의해 강조점을 정하는 ‘의미 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뉴스 스토리텔링 제작 과정에서 의미 디자인은 구성과 편집 역할로 존재해 왔다. 시공간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 제작되는 뉴스의 특성상, 스트레이트 보도부터 복잡한 탐사 보도에 이르기까지 제작진은 모종의 의도와 기준을 갖고 정보를 선택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뉴스 제작에서 생략이 불가능한 의미 디자인은 뉴스 가치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행위다. 그리고 이 단계의 실패는 단지 흥미롭지 않은 기사 작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회 혼란, 자원 낭비, 사건 관계자 대한 치명적 피해, 미디어 영향력에 편승한 악의적 세력의 활동에 공격 빌미를 제공하는 등 여러 폐단을 일으킬 수도 있다. 뉴스 제작진이 의미 디자인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을 찾고 관련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호학자 그레마스(A. J. Greimas)의 기호 사각형은 뉴스 스토리 디자인을 위한 체계적 의미 생성 구조 설계 이론으로서 중요하다. 그레마스는 흑백, 혹은 찬반으로 단순화된 소쉬르(Saussure)의 이항 대립 구조로는 복잡한 의미 체계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의미 작용의 기본 구조를 표상하는 사각 도식을 제안하였는데, 이를 ‘기호 사각형(semiotic square)’이라 부른다. 기호 사각형은 중심 기호 S1에 대해 대립(S2), 모순(non S1), 함의(non S2) 관계 요소들이 상호 인식될 때 온전한 의미가 생성된다고 설명한다. 대립은 문맥에 따른 상반 작용으로, 대결과 저항 의미가 있다. 모순은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참이 될 수 없는 관계다. 흑백 관계를 통해 기호 사각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도식이 만들어진다.  

    

그레마스 기호 사각형


복합적 대결과 협력 관계를 포함하는 그레마스 이론은 제작진이 뉴스 스토리텔링을 위한 의미 디자인을 보도 이전, 취재 단계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뉴스 제작이란 취재와 보도를 통합하는 개념임에도 취재는 보도와 달리 뉴스 스토리 설계와 디자인 밖의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취재원이 누구이며, 어느 지점 혹은 관점으로 사건에 접근할 것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구성을 갖게 되는 것이 뉴스 스토리텔링임을 고려하면 취재는 의미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중시되어야 한다. 이어지는 주제를 통해 그레마스 기호 사각형을 활용해 취재 단계에 도입 가능한 의미 디자인 모형들을 살펴보자.



제보 검증 모형


사건 제보자(S1)로부터 취재가 시작된다면 S1은 대중이 아직 알지 못하는, 감춰진 사실을 드러내려는 자이다. 따라서 제작진은 취재를 통해 S1의 폭로를 검증하고 확인해야 한다. 취재진에게 필요한 검증 구조를 그레마스 기호 사각형을 통해 미리 정리해 볼 수 있다. 폭로자 S1에 대립하는 S2는 제보 내용을 감추려는 은폐자이다. 폭로자가 은폐자의 존재를 알고 있건, 불명확한 상태이건 간에 취재는 양쪽 모두를 규명해야 한다. 취재를 통해 누가, 무엇을, 왜 숨기려고 하는지 밝히는 과정이 의미 생성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원론이라면 폭로자와 은폐자로 단순화된 관계만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레마스는 사각 구조를 통해 취재진이 더 정교하게 의미 조건을 확인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하여 취재진의 다른 관심은 S1을 보완하는 관계인 non S2, 즉 은폐하지 않는 자에게까지 연결된다. 그들은 굳이 숨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S1이 모르는 중요 정보나 증거를 취재진에게 제공할 수 있다. non S2는 의지를 갖고 S1을 돕는 경우도 있지만, 사건의 실체와 전모를 잘 모르거나 취재진의 물음에 경계를 갖고 있지 않아서 결정적 조력자가 되기도 한다. 


 폭로자 S1과 모순 관계에 있는 폭로하지 않는 자, non S1에 대한 취재는 S1의 제보를 직접 검증하는 단계로서 중요하다. non S1은 침묵과 방관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취재진을 위협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폭로자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non S1, 즉 증언에 소극적인 사람들을 만나 사실을 확인하는 중에 제보자의 거짓이나 악의 실체, 때로 진실을 향한 결정적 접근 경로가 파악되는 일이 많다. non S1는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사건의 핵심 정보를 지닌 인물일 수 있다. 


 제보자 검증 소홀은 심각한 오보로 이어진다.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일수록 제보에 의존해 사건을 먼저, 단독 보도하려는 언론 경쟁이 치열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각도 취재와 합리적 검증 외면하면 뉴스 스토리텔링은 치명적 오보, 가짜 뉴스로 전락할 위험도 높아진다. 일방적 주장을 성급히 보도한 뒤, “반론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라는 형식적 메시지로 취재를 마무리하는 것은 의미 디자인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취재 단계에서 의미 디자인을 소홀히 한다면 뉴스를 통한 신뢰와 다양성의 저널리즘 실현은 불가능할 것이다. 



바위 깨기 모형

 

취재를 위한 의미 디자인 활용법으로 자발적 제보자 검증 모형을 역(逆) 배치하는 ‘바위 깨기 모형’을 활용할 수도 있다. 바위 깨기는 주로 사회의 거악을 드러내기 위해, 취재진이 숨어있는 제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 유용하다. 자발적 제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만, 그것에 의존하는 것만으로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제작진 스스로 의심스러운 사회 현상과 징후에 관심을 갖고 사건 관계자를 찾아 나서는 취재가 이루어져야 한다. 탐사 보도는 바위 깨기 모형 도입이 꼭 필요한 분야다. 따라서 탐사 뉴스 제작진은 취재 후 최종 전달법으로만 스토리텔링을 대하는 소극적 태도를 극복해야 한다. 공허한 단독 속보와 가짜 뉴스가 출몰하는 저널리즘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선제적 취재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의미 디자인 활용법에 제작진은 더 익숙해져야 한다.  


 강력한 권력자나 자본가가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건을 취재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2011년 공포된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제보자의 신원 노출과 기타 불이익을 법률로 보호하고 지원한다. 그러나 법의 존재로 증인과 피해자 대부분 갖고 있는 두려움을 온전히 해소할 수 없는 일이다. 제보자를 설득하고 결심을 유지시키는 것, 진실을 밝히려는 자의 우호 세력을 확보하는 것도 제작진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 상황을 바위 깨기 모형으로 의미 디자인해 보자. 


S1 위치에 자발적 제보자가 아닌, 바위처럼 강한 권력을 지닌 은폐자를 배치한다. 그들은 잘 보이지 않거나, 보인다 해도 취재진의 접근이 어렵다. 따라서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려면 먼저, S1과 모순 관계에 위치해 사건을 감추려는 은폐자에 맞서는 non S1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non S1은 사건의 핵심을 밝혀줄 폭로자 S2는 아니지만, S2과 모순 관계에서 그를 자극해 폭로를 유도하는 non S2에 관한 추적 단서를 제공해 은폐자의 거짓을 밝혀 줄 조력자이다.  


 법률가, 의사, 프로파일러, 화이트해커, 퇴직한 수사관을 비롯한 여러 분야 학자와 전문가들은 합리적 의심과 객관적 검증을 통해 취재를 지원하는 대표적 비(非) 은폐 그룹이다. 그들은 고등 지식과 경험, 네트워크를 통해 바위에 대항하는 취재진을 돕는다. 예컨대, 세무회계 전문가는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기업 이해관계와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범죄 심리학자는 프로파일링을 통해 유력 용의자를 압축한다. non S1 비 은폐자 그룹의 조력으로 의심 대상이 좁혀지고 문제가 공론화되면, 숨겨진 정보에 대한 공개 요구나 수사 의뢰를 통해 취재 강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취재를 위한 치밀한 의미 디자인은 폭로자를 설득해 은폐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과정에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참고문헌

공현희(2014). <겨울왕국>의 서술구조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일러스트레이션 포럼, 38, 77-86.

김경원⋅박영원(2017). 미디어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의 개념과 범주에 관한 연구 - 그레마스 기호사각형을 중심으로. ≪기호학 연구≫, 53, 7-30.

김성도(2002). 『구조에서 감성으로 - 그레마스의 기호학 및 일반의미론의 연구』. 고려대학교 출판부, 143. 

류유희, & 한창완. (2011). 그레마스 기호학적 접근을 통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분석-TV 애니메이션< NEW 아기공룡 둘리> 를 중심으로. ≪한국디자인포럼≫, 30, 166-175.

박태순(2007). 스타크래프트에 관한 기호학적 분석.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7권1호, 21-29.

임운주(2015). SBS 수목드라마에서 나타난 등장인물 관계분석 - 그레마스 행위소 모델 중심으로. ≪디지털 융복합연구≫, 13권1호, 481-486.

Greimas, A. J.(1983). Structural semantics: An attempt at a method. Lincoln, NE: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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