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hye Jan 26. 2021

N잡러는 무사히 생존&성장할 수 있을까?

제6회 열린소통포럼 <코로나시대의 내:일 탐색>에 N잡러 패널로 참여했다

2020년 11월, 광화문1번가 포럼 <코로나시대의 내:일 탐색>에 N잡러 패널로 참여했다. 


발제를 할 때에도 나 자신이 N잡러인지, 프리랜서인지, 프리워커인지 모호해서 '내가 이 얘길 하는게 맞을까?'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단어에 갇힐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부수입을 위한 N잡은 아니었고, 넉넉한 일상 시간 확보와 '이렇게도 먹고 살 수 있나?'라는 실험적인 기간을 갖는 것이 주 목적이었기에 남들에 비해 전략적/건설적인 N잡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 참여했고, 딱 작년 그 시기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만큼을 하고 왔다. 당시 발제 내용은 실시간으로 500~600명(주로 중장년층)에게 중계되었는데, 댓글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고 한다. 오히려 그래서 좀 더 이야기해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게 망한 선택이든, 앞으로 늘어날 선택이든, '어쨌든 이런 선택을 해보는 사람도 있다' 는 존재를 드러내본 경험이 꽤나 후련했다(실제로 나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몇 있고). 


주최측에서 디지털리포트의 형식으로 정리를 해주셨기에, 브런치에 남겨본다.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일의 다양성, 재미, 일상을 중요시하는 N잡러는

무사히 생존&성장할 수 있을까요?


돈, 재미, 의미를 벌기 위한 N가지 돈벌이

저는 작년 12월에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이후, 정말 다양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중 제가 지속하고 있는 일들을 분류하니 크게 세 가지로 나뉘더군요.


첫 번째는, 기존의 업무 경력을 기반으로 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전 직장에서 포럼과 컨퍼런스,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여기서 나온 이야기를 콘텐츠로 작성해서 발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퇴사 후 이 경력을 토대로 교육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주 16시간 근무로 계약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커머스 플랫폼과 프리랜서 계약을 하여 객원 에디터로 일하며 작업물에 대해 건별 지급을 받고 있고요. 이 일들은 제가 잘하는 일을 기반으로 예측 가능한 소득을 버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관련된 일입니다. 저는 3년차 채식주의자로, 사람들이 채식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을 허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년 전부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채식에 쉽게 도전할 수 있도록 채식 소스를 만들어 플리마켓에서 판매하고, 사장님들이 여행 간 가게나 밤에만 운영하는 식당을 빌려서 비건 팝업 식당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유튜브 콘텐츠도 만들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채널 '요즘것들의 사생활'에서 채식 생활에 대한 시리즈를 맡았거든요. 이외에도 온라인 기반 채식 커뮤니티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채식 관련 굿즈를 만들어 팔기도 합니다. 유튜브를 제외하고는 정기적으로 하지 않아 소득을 예측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 [요즘 것들의 채식생활] 채식 이야기 + 비건 쿡방 & 먹방 보러 가기


세 번째는 제가 관심 있는 사회 문제와 관련된 일입니다. 저는 환경 이슈에 관심이 있어서, '지구를 식히는 쿨루프 사회적 협동조합'의 페인트칠 활동에 참여하여 가끔씩 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쿨루프(cool roof)'는 옥상에 햇빛을 반사할 수 있도록 흰색 차열 페인트를 발라 건물에 열기가 축적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냉방에너지를 절감하는 시공 기술입니다. 쿨루프 시공 기술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시공 작업자로 등록하면, 운영팀에서 공유하는 일정 중 가능한 때에 일하고 일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쿨루프는 제가 관심 있는 사회문제를 기반으로 모인 사람들의 커뮤니티 역할도 하고 있고, 제가 N잡을 하다 보니 다달이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데 필요한 때에 소득을 보충할 수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고 있어요.



N잡러,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올해 N잡러로 벌이를 시작하면서 정말 다종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나는 뭘 하는 사람이지?'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한 일들의 맥락을 정리했더니 크게 세 가지 갈래가 있더군요.


N잡러 발제 자료 캡처: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우선, 하고자 하는 일을 세부화하여 기획하는 기획자인 동시에 실제로 참여하는 플레이어입니다. 둘째로, 산발적인 정보를 편집하여 발행하는 에디터고요. 마지막으로 관심 있는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활동가입니다. 이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갖고 다양한 주체와 이런저런 일들을 시도해 보고 있는 사람'이 현재 N잡러로서의 저의 정체성입니다.



말로만 듣던 N잡러 제가 해 보았는데요

이렇게 일하면 정신없지 않느냐, 왜 굳이 이렇게 하느냐라는 질문이 들 수도 있으실텐데요. 우선 일하는 방식을 놓고 봤을 때 제게는 N잡러의 형태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N잡러 발제 자료 캡처: N잡러로 일하는 장점


투자에 대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라는 말이 있죠. 저는 일 역시 이 말이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한 회사에 소속되어 그 회사 직원의 정체성 하나만 가졌을 때보다, 두 개 이상의 정체성을 갖고서 각 모드를 전환할 때에 그 업무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또한 한 가지 일터에 생계가 달려 있으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전환을 함으로써 업무와 나 사이에 거리 두기가 가능해지니 일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제 일상을 지키는 데에도 N잡의 형태가 잘 맞습니다. 제가 지키고 싶은 일상은 계속 채식을 하, 반려견과 하루에 두 번 산책할 수 있는 일상입니다. 굉장히 소박하지만, 회사에 다니는 자취생으로서는 어려웠던 일이거든요. N잡러로서 일하면 일하는 시간과 환경을 주도할 수 있으니 이 일상을 지킬 수 있어 만족스럽습니다.



당연히 불안한 점도 많습니다

최근 N잡러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고는 있지만, 제가 생각해도 비일반적인 노동 형태인 건 사실입니다. 말이 좋아 N잡러지 프로 알바꾼인지, 프리랜서인지, 프리터인지, 이따금 정체성에 혼란이 오더군요. 그리고 16시간짜리 근로 계약을 할 때에, 회사도 저도 이런 형태의 계약이 처음이다 보니 불협화음이 일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 계약이 종료된 이후도 고민입니다. N잡러로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별로 없으니, 내년에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N잡러 발제 자료 캡처: N잡러로 일하는 불안


내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감각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단순히 커리어의 여정에서 잠깐 멈추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기간은 아닌지, 나중에 다른 회사와 계약할 때에 그 회사가 이 기간을 안 좋게 바라보는 건 아닌지 문득 불안해지고요. 레퍼런스가 있으면 좋겠는데, N잡러로서 셀프 브랜딩에 성공하신 분들이나 재테크에 성공하셨다는 분들의 이야기가 들려 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N잡을 하면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회사원에도 프리랜서에도 속하지 못하여 사회 보장에서 소외됩니다. 퇴직금도 없고, 내일채움 공제 등의 혜택도 못 받고요. 그래서 미래의 나를 가난하게 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계속됩니다.



어떻게 하면 덜 불안하게 N잡을 지속할 수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N잡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N잡의 형태가 맞아서 N잡러를 할 수도 있고, 재테크를 위해 N잡을 할 수도 있고, 자아실현을 위한 N잡러가 있을 수도 있는데 대부분은 재테크와 자아실현욕구 충족이야기에 포커싱 되어있고, 나에게 맞는 업무적 환경으로서의 N잡 사례는 많지 않다고 느껴요. N잡러와 일하는 회사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면 좋겠고요. N잡과 관련된 이야기가 더 많이 발굴되면 좋겠습니다.


요즘 많은 이들이 N잡에 관심이 많습니다. 실제로 N잡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주 2일 일하는 일자리는 어떻게 구하는지, 쿨루프는 언제 모집하는지 같은 것들요. 그런데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초기 진입이 힘듭니다. 누구나 N잡에 도전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환경이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주 2~4일 일하는 일자리를 창출한다거나, 창업을 하지 않아도 가벼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식으로요.


마지막으로, 정부가 '일하는 청년'을 생각할 때에 주 30~40시간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N잡러처럼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을 아울러서, 추후 일하는 청년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졌을 때 저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확신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런

실시간 댓글 질문N잡의 방식을 개척하신 분들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하지만 N잡을 최종적인 형태로 보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단단하고 안정적인 자리로 가야 하지 않나'라는 사회의 시선과 요구에 흔들리지 않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발제자 답변     흔들리지 않는 노하우는 없습니다. 저 역시 불안하니까요. 저도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것에 계속 휘둘리고 있거든요. 다만 현재로서는 노동에 대한 공간적/시간적 자유를 확보하며 유지하고 싶은 일상이 있고, 저 스스로가 일의 모드 전환이 돼야 몰입도가 더 높아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했는데 이걸 맞출 수 있는 최선의 형태가 N잡이어서 유지하는 것입니다. 혹 다른 형태로도 가능하다면 굳이 N잡을 고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안정적인 일자리에서도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2021년 1월 관점으로 돌아온 나)


위에서 정리한 것 처럼, 작년엔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채 여러 종류의 일을 하며, 시간을 꽤나 자유롭게 썼다. 덕분에 일상의 질감이 훨씬 부드러워졌지만, 그만큼 불안하기도 했다. 특히 하반기에 했던 일 중에는 주16시간 근무로 4개월의 계약을 맺고 조직과 하는 일이 있었는데, 프로젝트 자체가 단기적인 일이었다보니 연속성을 가질 수 없는 일에 진심을 다 할 수가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불안했다. 다행히 이것저것하며 소득이 꾸준히 있었지만, 이 중 어떤 것이든 곧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면 조급해졌다. 커리어적으로는, 내가 벌린 일들은 모두 '사이드프로젝트' 정도의 볼륨으로 지속하고 싶은데(특히 요리는!), 이것이 나의 메인 업이라는 인식으로 굳는 것이 염려됐고, 다시 조직에 들어가면 신입부터 해야하는 게 아닐까, 고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조직 밖 노동자로서도 먹고는 살 수 있군(=먹고만 산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것을 확인했다는 점이 앞으로 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지속하든-다시 조직 내 노동자로 돌아가든, 그것을 진짜 '선택'으로 여기게 해줄 것 같다. 이 글을 기록하는 2021년 1월의 나는 다시 조직 노동자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조직의 미션과 나의 가치관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조직에서 책임감있게 업무를 수행한다면, 조직도 나라는 개인의 생활에 대해 존중해줄거라는(그런 조직을 만날 수 있을거란)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팀으로 연속성 있게 일을 좀 더 해보고 싶어졌다. 물론 개인으로 하고싶은 이야기도 계속 해나가면서. 


코로나 시국의 이직 준비 쉽지 않고, 종종 우울감과 불안함에 시달리지만, 불안은 직장인으로 일해도 프리랜서로 일해도 곁에 둬야 할.. 삶에 필연으로 따라 다닐 감정인 것 같다. 어차피 불안하다면, 내 선택이 야기하는 환경과 감정에 대해 면밀히 파악하고, 좀 더 주도적으로 불안키로 하자.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 현재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습관을 잃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초보 프리워커의 일과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