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영화 프리뷰]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영화 프리뷰]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영화는 자는 경유(이진욱)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여자가 밥을 하고, 그는 일어나 한상 차려진 밥을 먹는다. 소설을 쓰던 그는 펜을 놓고 대리운전을 하며 여자친구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그 날 여자는 호랑이가 우리를 탈출해 도시를 헤매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하곤 사라진다. 그렇게 경유는 여자친구와 이별한다.
있을법한 이야기지만 잔인한 전개다. 극의 중간중간 경유는 굉장히 무례한 손님들을 만나고 그럼에도 다시 콜을 받아 걷는다. 손님으로 우연히 소설가가 된 옛 여자친구 유정(고현정)을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그에게 옛날 그가 써 두었던 글을 달라고 한다. 풀숲에서 호랑이의 눈을 본 것 같은 기괴한 밤, 그는 임신한 채 자살을 시도하던 여성을 살린다. 그리고 호랑이를 마주한다.
영화의 진행과 함께 경유의 자는 공간이 달라진다. 여자친구의 집에서 친구의 집으로, 그리고 모텔에서 유정의 집으로 그리고 다시 밖으로. 갈 곳 없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유정이 되기도 무례한 대리운전 손님들이 되기도 한다.
사라진 경유의 여자친구는 서점의 비정규직 점원인 듯 보인다. 서점의 정리해고와 백수 남자친구, 월세를 올려달라는 주인의 말은 그녀의 이상한 이별을 납득시킨다. 유정은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글이 안 풀려 괴로워하다가 경유에게 옛 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극의 말미에 그녀의 표절 논란에 대한 라디오방송이 나오고서야 그녀의 절박함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영화에서 두 여자는 호랑이를 조심하라고 경유에게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경유가 약간은 희화적인 모습의 호랑이와 마주할 때,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다가온다. 이광국 감독은 프레스 키트에서 “이야기 안을 떠도는 호랑이의 존재는 우리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두려움에 대한 은유이다. 영화의 엔딩에 경유가 마주하는 호랑이는 경유 안에 있는 두려움이며 그것을 온전히 대면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진욱이 연기한 경유가 감독의 말보단 좀 더 단단한 인물로 다가왔다. 본인의 마음을 피하다 마주했다기 보다 현실의 문제들이 지나가고 때가 되었다고 느껴 대면하는 느낌이랄까.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는 그도, 여자친구의 부모님께 드릴 한우를 다시 그대로 들고 와 우는 그도 마냥 마주하길 피하는 모습으로만 비춰지진 않는다. 이진욱과 이를 맞추는 탄탄한 고현정의 연기를 직접 보고 느껴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