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X황선우
위즈덤 하우스 2019.02.22
19.10.21
*평생을 약속하며 결혼이라는 단단한 구속으로 서로를 묶는 결정을 내리는 건 물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어떤 시절에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 개인이 서 로에게 기꺼이 그런 복지가 되려 한다면, 법과 제도가 거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다채로운 가족 들이 더 튼튼하고 건강해질 때, 그 집합체인 사회에도 행복의 총합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p.275)
1-1.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동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나요? 이 책이 아니더라도 동거에 대한 생각의 전 환이 일어난 시점이 있었다면 언제였는지 공유해봅시다.
1-2. 동거라는 삶의 방식을 단순히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간 법적 인정-생활동반자법의 도입-에 공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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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 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 (...) 함께 산 지 2년쯤 지난 지금 우리는 거의 싸우지 않는다. 그동안 서로가 서서히 내려놓은 것은 상대를 컨트롤 하려는 마음이 다. 대신 둘이 공통적으로 원 하는 집의 모습과 상태, 또 각자가 확보하길 원하는 독립적인 시공간을 정확히 얘기하고 그것을 함께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상대를 바꾸려 드는 것은 싸움을 만들 뿐이고, 애초에 그러기란 가능하지도 않다. 둘이 함께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단체 생활에 필요한 팀 스피릿이다. -테팔 대첩과 생일상 (p.131)
2-1.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사람이 제일 어렵다”. 이 사람이랑 진짜 안 맞는다고 생각할 때 각자 어떻게 해결 하는 지 공유해봅시다. 김하나처럼 불처럼 화를 내는 스타일인지, 황선우처럼 회피형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인지!?
2-2. 김하나와 황선우의 테팔 대첩은 가부장제의 해체가 아닐까 두 여자와 네 고양이로 이루어진 분자 가족의 실없는 이야기 들을 읽고 있자니 그토록 견고할 것 같았던 가부장제가 점차 해체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의 생활 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즐겁기만 해서가 아니라, 답답할 정도로 다른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요. 테팔 대첩의 결론에는 어느 한 쪽의 통솔이 아니라 “둘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집의 모습과 상 태, 또 각자가 확보하길 원하는 독립적인 시공간을 정 확히 얘기하고 그것을 함께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싸우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때에도 강제로 그 싸움을 종식시키려는 지배가 아닌 둘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솔과 지배가 없는, 그리 고 결국 그것들로 갈등을 무마시키려는 권력이 없는 가족.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출간 이틀 만에 3쇄, 일주일 만에 5쇄!)하고 있다는 사실. 이처럼 각자 생각하기에 가부장제가 해체된 가족은 어떤 모습일지 말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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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 달간 누군가와 같이 살며 나에게 생긴 변화에 대해, 그리고 최근의 일주일간 나에게서 다시 사라졌던 그것에 대해. 타인이라는 존재는 서로를 필연적으로 귀찮게 하게 마련이며 가끔은 타이어 파손으로 인한 항공편 지연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만들기도 한다. 동거인이 없는 일주일 동안 내 생활은 아주 매끄럽고 여유로웠으며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상실은, 웃을 일이 사라졌다는 거다. -혼자 보낸 일주일 (p.235)
3-1. 혼자 or 함께?
3-2.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타인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들이 모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점점 더 지옥으로 이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에게는 내가 바로 타인일 테니까요. <타인은 놀이공원이다, 지승호,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