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지막 날 저녁에는 가족들과 오랜만에 모여서 밥을 먹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옛말은 틀리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올리려 하지 않았던 화제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릴 수 있었다. 49재를 지척에 두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꿈에서 아빠를 본 사람은 나뿐이었다. 다시 그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가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아빠의 형상은 검은색 항공점퍼를 입고 비틀거리며 빌라 단지를 힘없이 누비는 모습뿐이었다는 게 조금 마음이 아팠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입고 갈 옷은 내가 기억 속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밝은 색채를 띠었다. 평범해빠진 흰 속옷과 딱 봐도 싸구려일 것이 분명한 한복,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제사상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목욕재계를 위한 빗과 거울, 비누, 치약과 칫솔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에 더해 위패와 영정까지 서울 외곽에 있는 절에서 싹 태운다고 했다. 아빠가 저 옷가지들을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됐고, 엉뚱하게도 아주 어릴 적 외할아버지의 고희연에서 파스텔톤의 한복을 입고 찍은 가족사진이 떠올랐다.
스님이 외는 천수경과 금강경을 모조리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최근 20여 년 동안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생각이었다. 언젠가 아들을 낳는다면 어떨까. 아빠가 내 아들로 태어나 준다면 어떨까. 내가 아빠의 심약한 성정을 닮았듯 그 애는 나를 닮아서 몹시 예민할 테고, 그래서 우리는 잘 지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을 가르쳐 주고 싶다. 엄마랑 아빠는 사랑해서 너를 낳았단다. 엄마의 엄마도, 아빠도 엄마를 사랑했단다. 사랑이 엄마를 살게 했단다.
한 많은 삶이었다. 이제 다 끝났다.
그러니까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