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 이직 후기
나는 대학 졸업 후 취준 생활 없이 딱 한 번의 이력서로 집 근처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그리고 복지와 직무가 만족스러워서 5년간 근무하다가 작년 11월부터 이직을 준비했고, '네카라쿠배' 중 두 군데에 지원하고, 한 달 만에 두 군데 모두 합격했다.
요즘 MZ 세대들이(나도 MZ이지만) 중소기업을 선호하지 않고, 첫 직장부터 대기업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래서 "취준 지옥"이라는 말도 생긴 것 같은데,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도 나쁘지 않고, 그곳에서 커리어를 잘 쌓고 자기개발만 꾸준히 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곳으로 점프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 브런치를 작성한다.
나는 대학교 1,2학년 때 학점이 우수해서(A 미만 없었음) 학기별 최대 학점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래서 3학년 때 졸업 학점을 거의 채웠고, 몇 학점 남지 않은 채로 4학년에 올라갔다. 조기 졸업도 가능했지만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이었어서 남은 1년 동안 졸업 논문을 쓰고, 학기당 1개 과목씩 수강하며, 내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서두가 길었는데, 4학년 때 남들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휴학이나 취업계를 내지 않고, 학교 전산실과 삼성전자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이때 전공(개발) 외에 나에게 어떤 직무가 맞는지 몸으로 부딪히며 고민했고, 삼성전자에서 접한 기획/마케팅 업무가 흥미 있고,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그쪽으로 취업하기로 결심했다.
이때 대부분의 동기들은 SSAT 또는 NCS를 준비하거나, 외국계 기업 면접을 준비했는데 옆에서 보면 정말 지쳐 보여서 그 무리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네임밸류나 연봉보다 규모가 작더라도 비전 있는 기업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뜨고 있던 핀테크사 중 규모는 비교적 작으나 곧 상장할 비전이 보이고, 신규 비즈니스를 개발하는 곳을 알아봤다. 그러다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중소 핀테크사(현재 코스닥 상장사, 직원 200명 대의 중견기업)를 발견했고, 마침 마케팅/사업기획 직무를 채용 중이어서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그래도 중소기업 중 규모가 큰 편(당시 직원 150명, 비개발 초봉 4천)에 속하고, 공채였어서 면접 프로세스가 빡셌다.
서류 - 인적성 - 실무진 면접 - 임원 면접(PT)
솔직히 말하면, 자소서에 영혼을 갈아 넣거나 밤새 면접 준비를 하거나 하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첫 지원이어서 한번에 붙어도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서 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물론 면접장에서는 열과 성을 다해 나를 어필하고, 면접에 임했다. 그런데 이 첫 번째 지원에서 덜컥 합격해버린 것이다. 물론 불합격했다면 낙담하고 자괴감에 빠졌겠지만, 막상 합격해도 어안이 벙벙했다. 취준 없이 이렇게 한방에 합격하다니, 기쁘면서도 다른 곳에 지원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어려움 없이 합격해서 처음엔 학벌 때문에 프리 패스한 줄 알았는데, 입사하고 보니 동기 중에 SKY도 있었다.(서성한은 조용히 지나갑니다) SKY 출신인데 몇 년간의 취준 생활에 지쳐 눈을 낮춰서 온 동기를 보며 취준의 무서움을 새삼 느꼈고, 욕심부리지 않고 한번에 원하는 직무에 합격한 내 선택이 굿 초이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입사한 후 5년간 근무하며,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선택에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입사 1년 차부터 "평생 직장은 없다."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겨둔 채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더 큰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래 아이템들을 체크리스트에 추가하고 실행했다.
1.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최고의 결과/성과를 낼 것
2. 직무와 관련된 자격증 취득, 독서, 스터디 등 꾸준히 자기개발할 것
3. Next Step으로 목표한 기업의 문화, 사용하는 협업 툴을 미리 익힐 것
4.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Action Item을 작성할 것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업무를 대충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회사도 학교와 비슷하여 업무를 하며, 그리고 동료, 상사들과 협업을 통해 배울 점이 정말 많다. 나는 최대한 뽕 뽑아서 배우고 성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야근 수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철야를 하고, 중요한 프로젝트 기간에는 아침 6시에 퇴근하거나 주말 출근도 불사했다. 그리고 노력한 만큼 좋은 성과를 내서 우수직원상을 받기도 하고, 입사 4년 만에 최연소/최단기 팀장이 됐다. 어디에서 어떤 업무를 하더라도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배우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열심히 부딪히고, 깨지고, 굴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불만이 있더라도 우선 맡은 업무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 한다.
입사하고 1-2년은 회사에 적응하고, 업무를 배우기도 벅차서 자기개발할 시간이 없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일과 휴식 외에 다른 것을 할 정신이 없다. 그렇지만 3년 차부터는 자기개발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말로 지금 다니는 회사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으니까, 그 외에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일들을 꾸준히 찾고 실천해야 한다.
나는 3년 차 때부터 직무와 관련된 자격증(마이데이터 관리사, 검색광고마케터, SNS광고마케터 등)과 직무와 큰 관련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거나 살면서 도움이 될 것 같은 자격증(ADSP, GTQ) 등을 취득했다. 퇴근하고 매일 카페에 가서 인강을 듣고, 모의고사를 풀었다. 주말에는 고등학생처럼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만 하기도 하고, 시험 전날은 연차를 내고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렇게 1년 동안 쉬지 않고 공부했고, 총 7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업무 때문에 기획한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특허 등록(출원 아니고 무려 등록!)까지 해냈다.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내 첫 직장은 대표님과 임원 대부분이 은행 연구소 출신으로 금융기관이 원하는 비즈니스를 정확히 캐치하고, 그를 토대로 오픈 API 및 마이데이터 등 다양한 핀테크 비즈니스를 선두하는 트랜디한 기업이었다. 그러나 금융기관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기도 해서, 내가 Next Step으로 목표한 애자일한 조직(like 네카라쿠배)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애자일하게 일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스크럼과 회고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관련 책을 읽고, 네카라쿠배 현직자들의 포스팅도 자주 찾아봤다. 그리고 Wiki와 Jira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기에 개인 계정으로 가입해서 체험판을 이용했다. 이처럼 다음 직장으로 목표한 곳의 조직 문화나 그들이 사용하는 협업 툴을 미리 스터디하는 것을 추천한다.
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일해야 하는 기간도 늘어났다. 60-70대까지 일해야 하는데, 앞으로 남은 40년 동안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내가 최종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자주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내 모습을 그려본다. 그리고 단계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Action Item을 나열하고, 완료 여부를 관리한다. 체크리스트 문서를 만들어서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내 미래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5년 차에 더 큰 규모의 기업(조직)으로 이동하고, 또 n 연차에 한 번 더 이동, 이런 식의 이직 계획이라도 세워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40년 넘게 일해야 하는데 여러 기업의 문화를 겪고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여 배우는 것이 나에게 남는 장사 아닐까.
스타트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어디에서 일하더라도 분명 배울 점이 있고, 내가 어떤 자세로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뚜렷이 목표하는 바가 있어서 특정 기업을 노리고 취준 생활을 한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그저 대기업에 가고 싶어서 몇 년 동안 취준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첫 직장은 어느 곳에 입사하더라도 충분히 배우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곳에서 시작해도 나쁘지 않다. 회사의 네임밸류 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40년 동안 흥미를 갖고 일할 수 있는 직무가 무엇일지 충분히 고민하고 이력서를 제출하기 바란다. 다음에는 인터뷰 후기를 들고 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