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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난돌 Jan 13. 2019

길을 헤맨 끝에

떠이선 현 떠어빈 사 위령비

  1966년 베트남의 빈딘성, 꾸이년 떠이선 현 떠어빈 사에서는 1,200명이 넘는 민간인이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다시 지도에 떠어빈 사까지 검색을 하고는 일단 그곳으로 향했다. 꾸이년 중심가를 나오니 작은 마을이 나오고 국도를 따라 한참을 가니 더욱 작은 마을이 나왔다. 이번에도, 구글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마을 한복판의 길가에 서 있을 뿐이었다. 위성 사진으로 바꾸어 보니 조금 더 위쪽에 민가와 가게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쪽으로 가서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씬 로이(실례합니다)!”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인사하자 가게에 있던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았다.

  “한 꾸옥! 비아 뜨엉 니엠!”

  같은 단어를 반복하며 사진을 보여주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젊은 아빠가 나왔다. 그는 사진을 유심히 보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 보여주었다. 그들은 사진을 돌려보며 의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젊은 아빠가 펜과 종이를 가져와 설명을 한다. 역시 말로 언어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쭈욱 가서 주유소가 있는 곳에서 좌회전을 한 뒤 다리를 건널 때까지 가라는 뜻 같았다.


  “깜 언! 깜 언!”

  연신 우리가 인사하자 그는 길가까지 따라 나오더니 자신의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여주곤 밝게 웃어주었다.

  그가 꽤 멀리 가야 한다고 말했기에 한동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바로 앞에 작은 강이 흐르고 그 위에 다리가 보일 때였다. 오른 편에 사당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 옳다구나 싶어 길을 멈췄다. 안쪽 가운데에 큰 비석이 있어 맞다고 생각했는데, 묘지가 보이는 것에 비해 분위기가 화려하여 다시 보니 전쟁 유공자들을 기리는 곳이었다.


  그가 보여주었던 사진이 생각나 다시 검색을 하자 지금 있는 곳에서 더 가야 할 것 같았다. 다시 큰 대로를 지나 산이 보이는 샛길로 빠지자 오솔길처럼 보이는 곳을 굽이굽이 따라갔다. 집도 하나 보이지 않고 나무들만 이따금 심어져 있어 이런 곳에 도대체 있긴 한 건가 싶을 때, 표지판이 하나 보였다. 표지판을 따라가자 길을 꺾기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사원이 보였다. 큰 입구 뒤로 계단이 촘촘히, 그리고 높게 연결되어 있었다. 헉헉대며 계단을 올라가니 오토바이 의자 안에 들어 있던 물도 열에 달아올라 목을 축여도 시원하지 않았다.

길을 직접 안내해주신 아저씨


  다 올라가서 보니 제사를 지낼 때 쓰는 것처럼 보이는 돌들이 방향을 맞추어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만큼은 너무나 아름다워 남들이 모르는 곳 한 군데 알고 간다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어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길을 안내해주신 아주머니


  온 길을 되돌아가는 데만 해도 40분이 넘게 걸렸다. 처음 가게가 있던 곳으로 향해 다른 가게에서 길을 물었다. 한 아저씨가 유심히 보더니 갑자기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그러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기에 우리는 어리둥절하며 따라갔다. 그는 한참을 앞서 마을 입구로 우리를 데려갔다. 아무래도 몇 번 길을 꺾으면 나온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되돌아갔다. 사실 잘 못 알아들어도 몸짓으로만 알려줄 수도 있는 일인데,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 후로도 길을 헤매다 못해 다시 길을 물어본 아주머니도 아예 가게를 잠시 닫고는 아예 위령비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마치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아주머니 역시 쿨하게 손가락으로 한 끝을 가리키고는 사라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점점 다가가는데 문이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뛰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순간 베트남의 박물관이나 은행 등이 점심시간을 캍같이 지키는 것이 생각났다. 지금 시간은 한 시니까 두 시 반쯤 다시 되돌아오면 열려 있지 않을까?

  하지만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을 때도 위령비의 문은 닫혀 있었다. 비록 향은 올리지 못했지만 그 밖에서 잠시 묵념을 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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