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애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삶은 우주에 흔적을 남긴다. 한 사람의 탄생은 사회라는 공간 속으로 물결을 일으킨다. 그 탄생은 부모, 짝, 친척, 친구에게 영향을 미친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세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그중에는 의도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도하지 않은 것이다. 소비자가 내리는 결정은 경제에 작은 변화를 낳고 정치적 결정은 국가의 앞날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의 따뜻한 행동 하나, 비열한 행동 하나는 그가 속한 공동체가 얼마나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가에 영향을 끼친다. 자기 목적성이 뚜렷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의식에서 무질서를 크게 줄인다. 많이 가지려 하고 자기 영토를 넓히는 데 혈안이 된 사람은 사회 전반을 무질서하게 만든다.
자신보다 더 위대하고 항구적인 무언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진정으로 충실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이것은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의 삶에 의미를 가져다준 다채로운 종교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과학 기술이 가져온 놀라운 진보가 위세를 떨치는 시대라서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하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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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자기의식을 흩트려 뜨리지 않으면서 어수선한 주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느냐다. 불가에서는 그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이처럼 진지한 유희의 정신이 살아 있고 근심과 겸손이 조화를 이루어낸 사람은 어딘가에 전념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지혜를 익힌 사람은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성패와는 무관하게 우주의 질서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시도 자체가 그에게는 보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사람만이 뻔히 질 줄 알면서도 선의를 위한 싸움에서 희열을 맛보게 된다.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런 자아상이 없이는 멀리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자아상에는 맹점이 있다. 어린 시절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이 자아상은 곧바로 이식 전체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경직된 자아상에 자기를 비끄러맨 나머지 자아는 의식의 여러 내용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라는 인식에 머물지 않고,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지어낸 가공의 대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 정력을 쏟아붓는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가 만든 자아가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 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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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는 게 좋다. 목표를 달성하는 게 중요해서라기보다는 목표가 없으면 한 곳으로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렵고 그만큼 산만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등반가가 정상에 오르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내거는 이유는 꼭대기에 못 올라가서 환장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목표가 있어야 등반에서 충실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이 없는 등반은 무의미한 발놀림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을 불안과 무기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자기가 세운 목표에 합당한 일을 하는 동안에는 설령 몰입은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이 개운해진다는 걸 입증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가령 친구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은 무척 즐겁다. 죽이 잘 맞는 친구들과 있으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일을 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있으면 아무리 가까운 친구들과 있어도 마음이 무겁다. 반면에 아무리 하기 싫은 일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생각이 들면 덜 괴롭다.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길은 주인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 혹은 달리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하는 일이다. ...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진해서 원하는 일을 늘려야 한다. 무엇을 원한다는 사소한 마음의 움직임이 집중력을 높이고 의식을 명료하게 만들며 내면의 조화를 이루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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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니체 철학의 중심개념이라 할 '운명애'에서 잘 드러난다.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를 논의하는 대목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운명애를 가진 사람은 위대하다는 게 나의 신조다. 운명애는 살아갈 날에서도, 살아온 날에서도, 달라지지 않기를. 아니, 영원히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자세다. 불가피한 것을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랑할 줄 아는 태도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나는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자꾸자꾸 배우고 싶다. 그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연구도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 임상적 관찰과 자기실현에 이르렀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의 면접을 통해 그는 성장의 과정이 절정감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절정감은 자아와 환경의 일치를 뜻한다. 그것은 '내적 필요성'과 '외적 필요성', 혹은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안 하면 안 되는 것' 사이의 조화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매슬로는 말한다. 그 경지에 이른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자기 의지대로 선택한다."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심신이 건강한 사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내적 자극에 대해서건 외적 자극에 대해서건 가장 경제성이 높은 방향으로 행동 방침을 정하고 그쪽을 따르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깊은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로저스의 말은 이어진다. "심신이 건강한 사람은 확고하게 결정된 것을 자유 의지로,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추구할 때 가장 확실한 자유를 경험할 뿐 아니라 그것을 선용한다." 그러므로 니체와 매슬로의 말대로 운명애는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자기 행동의 주인 의식을 가지려는 자세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희열과 인격의 성장은 무질서한 일상생활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때만이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