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즈베키스탄에서 있었던 일화를 글로 엮는 중인데요, 이게 십여 년 전 일이다 보니 사람 이름부터 가물가물하더란 말이죠. 문득 그때 일기 썼던 게 어디 있을 것 같은데 그걸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비로소 했습니다. 하 아무리 뒤져도 없네요. 1차 수색 포기. 우즈베크로 출국하던 공항에서 지기가 인사동에서 샀다는 한지 노트를 줬었는데, 그걸 일기장으로 사용했던 것 같거든요. 그것만 찾으면 글쓰기가 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죠?
한 동안 바쁘게 지내다 보니 한 달이 지났네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오늘 아침부터 2차 수색을 재개했습니다. 역시나 없네요. 다른 방 책장을 모조리 뒤지고 가족들에게 물어봐도 노노. 이쯤 되니 포기해야 되나 싶어 졌습니다.
저녁 먹은 거 소화도 시킬 겸, 자전거를 타고 광화문으로 나갔습니다.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늘 가는 아지트가 있거든요. 생각이 복잡하거나 기분이 울적할 때면 그곳에 가서 자전거를 백 바퀴 건 이백 바퀴 건 마냥 빙글빙글 돕니다. 그간 아지트에 차곡차곡 쌓아둔 고민이 하나 둘 튀어 오릅니다. 그럼 피식 웃음이 나지요. 그래, 그때 그렇게 심각했던 일들도 결국엔 봐봐 다 나름의 길이 열렸잖아. 마음이 아니 가벼워지지 않을 수가 없지요.
예전엔 슬럼프라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압니다.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았을 때 그런 증상이 나타나고 그러면 결국 방황할 시간에 뭐라도 하면 저절로 풀어진다는 것을요. 그러니 별로 고민이 필요가 없죠.
집으로 돌아와 베란다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일기장 수색을 시작할 겸 겸사겸사였지요. 이리저리 흩어진 물품을 한데 모으고 오래된 박스는 처리하니까 한결 보기가 좋네요. 그때 바닥에 눌린 조그만 상자 사이로 책 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혹시. 힘을 다해 밖으로 끄집어냈습니다. 와우 빙고! 보물 상자를 찾았습니다.
상자를 열어젖히니 그렇게나 오매불망 찾아 헤매던 일기장이 맨 위에 떡 하니 있더라고요. 심봤다를 외치며 일기장을 펼치는데 글쎄, 이게 아니네. 기억이 왜곡됐었네요. 이건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일기장으로 쓴 거더라고요. 우즈베크에서 썼던 노트는 다른 거였습니다. 아직 자세히 보지는 않았는데 무슨 내용이 들어 있을지 몹시 궁금 두근두근합니다.
상자 속에는 그동안 기록해둔 메모지, 다이어리, 편지 등등이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부치지 않은 편지는 왜 이리도 많은 건지. 수신인은 대부분 군대 간 친구들이더군요. 그 친구 중 한 명이 수신자부담으로 가끔 전화를 했었거든요. 그게 그 요금이 꽤 비싸잖습니까. 몇 번 받아주다가 하루는 'XXX의 전화를 받으시겠습니까'하는데 그냥 끊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갑자기 미안해지네요. 여기 그 친구에게 못 부친 편지도 좀 있구먼요.
편지를 꺼내 이리 읽고 저리 읽다 보니 절로 웃음이 납니다. 그때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머리를 푹 담갔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그만하고 자야겠습니다. 지난 추억을 가득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다가 내일 일어나자마자 아끼는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읽을라구요. 그럼 이만, 스빠꼬이노이 노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