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을 과식했는가 싶더니 우뇌 쪽 신경이 살짝 당기더라고요. 예감이 좋지 않네요. 얼른 잔차를 몰고 운동을 나갔습니다. 그렇게나 잔차를 타고 돌아댕겼는데 소화가 시원치 않네요. 대신 너무 무리한 것 같습니다. 오른쪽 뇌가 약간 띵한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가 새벽부터 계속 깼습니다. 결국 이번 달도 PMS를 비껴가지 못했네요.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그냥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산책 갈 여력도 없는 게 물만 조금 마셨습니다. 기운을 쥐어짜서 줄넘기 천 개를 하고 왔더니 그나마 기분도 약간 좋아지는게 이때다 싶어 반하사심탕을 한잔 들이켰습니다.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다 토했지요. 그냥 위를 쉬게 하는 것, 이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조금 괜찮아지는가 싶어서 오후에 다시 오령산을 타서 마셨습니다. 이것도 얼마 못가 바로 토해버리네요. 위가 이렇게도 거부하는데 빨리 낫고 싶은 욕심에 그만 약을 자꾸 들이부었으니.
밖에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하릴 없이 계속 누워만 있으니 마음이 자꾸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제가 웬만해선 독서를 잘 안 하는데 이 정도면 큰 마음먹은 거죠?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by 파커 J. 파머'는 그저께 동생이 추천해 준 책인데, 저자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을 줄 아는 미덕이 빛납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글 주제와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 이런 식으로 풀어가면 되겠구나 힌트도 얻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몸이 한결 풀립니다. 허기가 지면 위가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의미거든요.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조당수를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조당수는 좁쌀죽입니다. 어릴 적 한 번씩 앓고 나면 할매가 "야야 산이 조당수 좀 끓여주거라" 엄마한테 말씀하셨지요.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가끔 몸이 탈 날 때마다 저는 회복식으로 조당수를 끓여 먹습니다. 노오란 좁쌀이 퍼져 우러나온 물은 담백하고 좁쌀은 쌀보다 찰기도 덜해서 위에 부담이 없습니다.
저희 할매는 어릴 적 넉넉한 집안에서 여러 어르신, 언니, 오빠들의 귀애를 독차지하며 자랐습니다. 당신이 워낙 귀염을 많이 받아서인지 할매는 그 시절 흔한 딸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할매는 손자 하나, 손녀 넷의 다섯 손주들을 늘 공평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엄마가 셋째인가, 넷째인가 암튼 딸을 낳고 의기소침해 있었답니다. 아들은 하나인데 딸이 더 많으니 아부지 보기에도 미안하더랍니다. 큰 이모는 아들만 셋이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그리 많이 낳았는지 그것도 부러웠고요. 그때 할매가 말씀하셨답니다. "야이야, 지금은 섭섭할지 몰라도 나중에 봐래이. 곧 딸이 더 귀한 시대가 올 거다. 아마 니 큰형보다 니가 훨씬 나을 거다." 시어머니께 그 말을 듣고 나자 비로소 엄마의 섭섭하던 마음이 가시더랍니다. 우리 할매, 대단하시죠? 백순이 가까우셨는데 당시에 저런 열린 사고를 하셨다니요. 그러니 할매는 손주 하나하나를 생일도 꼬박꼬박 챙겨주시고 각별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저희 클 때 단 한 번도 기집아, 머슴아 소리 한 적도 없었다니까요.
그런 할매가 가르쳐준 조당수, 나중에 한약국을 하면 환자 회복식으로 조당수를 만들어 팔아야겠다는 사업 아이템이 문득 스쳐 지나가네요.
조당수를 먹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고 바람이 부는데 춥다기보다 상쾌하고 시원하네요. 귀한 조당수가 소화되도록 복부 운동을 삼십 분간 했습니다. 이제 위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머리도 차츰 맑게 개고 있습니다.
조당수 덕분에 에너지를 얻었으니 내일은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이 되겠죠? 이젠 진짜 소식하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습니다. 매일 앉아 있다보니 소화가 진짜 큰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식탐을 줄여야 합니다.
잠도 일찍 잘 자야 합니다. 그만 자야 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요즘엔 5pm이 아니라 10pm입니다. 매거진 제목을 조만간 바꿔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