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나를부르는 숲

by 김커선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우연히 마을 끝에서 숲으로 사라져 가는 길을 발견했다.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니었다. 그 유명한 '애팔래치아 트레일'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트레일은 장거리 종주 등반의 원조로 불린다. 미국의 동부 해안을 따라 고요히 솟아 있으면서 은근히 사람의 발길을 부르는 애팔래치아 산맥 위로 굽이굽이 3천360킬로미터나 흐르는 길이다. 조지아 주에서 메인주까지 14개 주를 관통하면서 이름만 들어도 맘이 설레는 블루리지, 스모키, 컴벌랜드, 그린 마운튼, 화이트 마운튼을 지나간다.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튼'이라든지 '셰넌도어 국립공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주의자 존 뮤어가 표현한 대로 빵 한 덩어리와 차 한 봉지를 낡은 배낭에 넣고서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달려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내가 막 정착한 뉴잉글랜드의 조그만 마을에 뜻하지 ㅇ낳게도 이 트레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이 길을 따라 조지아 주까지 2천880킬로미터를 걸어서 가거나, 또는 반대 방향을 택해 거칠고 돌이 많은 화이트 마운튼을 따라 720킬로미터를 걸어서 몇 사람 경험해보지 못한 전설적인 마운트 캐터딘 산을 밟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뜨거워졌다. '근사하지 않은가. 당장 바로 하자'는 충동이 불끈 솟았다.

나는 대장정을 위한 구실 찾기에 들어갔다. 게을러터졌던 수년간의 생활을 바로잡을 기회다. 20년간 해외에서 생활하다 돌아왔으니 조국의 장관과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명분도 있지 않은가. 또는 거친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것도 유용한 일이다-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기키는 행동인지 확신키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했다. 군복 비슷한 등산복을 입고 사냥용 모자를 쓴 사나이들이 둘러앉아 들판에서 겪은 아찔한 경험에 대해 얘기할 때 나는 더 이상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잘 깎은 화강암과 같은 눈매로 지평선을 응시하면서 나지막하고 걸걸한 목소리로 "그래, 숲 속에서 단숨에 해치워버렸지"라고 일갈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가야 할, 더 설득력 있는 이유들이 있었다. 애팔래치아 산맥은 세계의 온대지방에서 가장 다양하고 풍성한 수종을 자랑하는 위대한 숲의 하나인데,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 만약 향후 50년 동안 지구의 온도가 4℃ 상승한다면 뉴잉글랜드 이남에 있는 전 애팔래치아 산맥의 숲은 사바나(대초원)로 바뀌게 된다. 이미 나무들은 놀라운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 참나무와 밤나무는 오래전에 사라졌고 소나무도 사라지고 있으며 붉은 전나무와 단풍나무 등도 그 뒤를 따를 조짐이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경험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중략)


1996년 3월 9일. 이제 출발이다.

길은, 살얼음이 낀 시내가 졸졸 흐르는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가 800미터쯤 지나서 다시 나무가 빽빽한 숲으로 가파르게 올라갔다. 여기가 처음 만날 봉우리인 프로스티 산의 밑바닥이라는 게 분명했다. 곧바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해는 빛나고 하늘은 가슴이 시릴 만큼 푸르렀지만, 지상에 있는 모든 게 갈색-갈색 나무, 갈색 땅, 얼어붙은 갈색 잎사귀-이었다. 물러서지 않는 추위처럼 달라붙은 갈색 천지. 봉우리를 향해 30미터쯤 갔을까. 눈알이 튀어나오고 질식할 것처럼 숨이 막혀서 멈추어 섰다. 카츠는 벌써 뒤로 처져서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묵묵히 전진했다.

지옥이었다. 등반 첫날은 항상 그랬다. 내 몸 상태는 구제 불능이었다. 배낭은 그냥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천근만근이었다. 준비가 안 된 채 이렇게 무거운 걸 메본 것도 처음이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힘겨운 투쟁이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리 걸어도 끊임없이 새로운 봉우리가 나온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봉우리에 올라서면 지금까지 올라온 길은 훤히 보이지만 앞으로 뭐가 나올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나무 커튼 사이로 가파른 비탈길이 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 다시 뒤로 물러서고, 그럴수록 몸의 기운은 쪽쪽 빠지고 얼마나 왔는지조차 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중략)

기다리기를 45분! 결국 카츠를 찾으러 나섰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저녁의 냉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걸었다. 산 아래로 내려가 끝없는 나무숲을 헤치고 내가 그토록 지나쳐 온 것을 다행스러워하던, 다시는 안 올 것으로 착각했던 산기슭을 넘어서 계속 되밟아 갔다. 여러 차례 그의 이름을 부르고 가만히 들어보곤 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걷고 또 걸었다. 몇 시간 전에 힘겹게 넘었던 쓰러진 고목을 다시 타 넘고, 이제는 오직 희미하게 생각날 뿐인 비탈길을 거슬러 내려갔다. '아마 우리 할머니라도 여기쯤은 이미 왔을 텐데'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굽이를 돌아가자 드디어 그가, 머리칼은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지고 장갑 한 짝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지금까지 살면서 성인 남자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가장 심한 히스테리 증세에 빠져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조리 있는 설명을 듣는 것은 불가능했다. 글자 그대로 격노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배낭에 매달아 놓았던 모든 물건들을 절벽 너머로 집어던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뭘 버린 거야?"

나는 놀라지 않은 척 애를 쓰며 물었다.

"빌어먹을, 더럽게 무거운 것들...... 페페로니, 쌀, 흑설탕, 스팸...... 몰라, 뭘 버렸는지. 하여튼 많이. 제기랄."

카츠는 자신이 생각했던 트레일이 아니란 듯, 마치 배신이나 당한 사람처럼 굴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가 생각했던 그런 트레일은 아닌 게 분명했다.

30미터쯤 뒤에 장갑 한 짝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집어 오면서 내가 말했다.

"좋아, 어쨌든 갈 길이 멀지는 않아."

"얼만데?"

"아마 1.6킬로미터쯤."

"제기랄"

그의 어조는 비통했다.

"배낭을 들어줄게."

배장을 들어보니, 완전히 빈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가벼워졌다. 그가 뭘 버렸는지는 신만이 알 일이다.

우리는 봉우리를 넘어 어둠이 몰려올 즈음 정상에 다다랐다. 장상 너머 수백 미터를 가자 넓은 개활지에 목조 대피소가 있는 야영장이 나타났다. 이렇게 이른 시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싶게 야영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대피소-경사진 지붕에 앞이 툭 터져 있고 3면만 벽이 있는 구조물- 안은 이미 비집고 들어갈 데가 없어 보였고, 대피소 근처도 12~13개의 텐트가 둘러싸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야외용 버너의 연료 타는 소리와 모락모락 올라가는 밥 짓는 연기, 그리고 호리호리한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야영장의 끝 자락, 거의 숲 속이어서 텐트 안에 누우면 우리 몸이 경계선이 될 곳에 자릴 잡았다.

"난 어떻게 텐트를 치는지 몰라."

카츠가 심술궂은 어조로 말했다.

"그래, 내가 해주지."-'내가 애주지, 이 의지박약한 큰 아기야.'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나무에 걸터앉아서 내가 그의 텐트를 쳐주는 걸 지켜보았다. 텐트 설치가 끝나자 그는 패드와 슬리핑 백을 밀어 넣더니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나는 또 하나의 텐트를 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겨우 텐트를 설치하고 허리를 곧추세우다가 그의 텐트에서 어떤 소리나 움직임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

깜짝 놀라 물었다.

"벌써 자니?"
"어."
그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벌써? 저녁도 안 먹고?"

"어."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화를 내기엔 너무 고단했다. 나도 너무 피곤해서 배고픈지 어떤지도 몰랐다. 물병과 책을 가지고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야간 조명과 비상 방위를 위해 칼과 손전등을 머리맡에 두고 마침내 슬리핑 백 안으로 재즈를 추듯 몸을 비틀며 들어갔다. 내 몸이 수평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감사해한 적이 없었다. 곧바로 잠이 들었다. 어쩜 그렇게 단잠을 잘 수 있었는지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배낭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배낭에 짐을 몽땅 집어넣었다. 그걸 들쳐 메고서 동네를 휘 한 바퀴 크게 돌아보았다. 궁색한 추리닝 차림으로 산처럼 높게 쌓아 올린 배낭을 메고 골목을 돌아다니자 동네 사람들이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적잖이 의식된다 싶기 무섭게 배낭 무게가 온몸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파왔고, 허리는 활처럼 자꾸만 뒤로 휘어지고 있었다. 20분 만에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다. 미친 녀석처럼 배낭을 마구 풀어헤친 뒤 '필요할 것 같은 것들'은 죄다 내던져 버렸다. 물건을 하나 잡고 두 눈을 꼬옥 감은 채 스스로에게 두 번 세 번 질문했다. "필요해? 진짜 필요해? 없으면 못 살겠어?" 이 관문을 통과한 것들만이 비로소 다시 배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카츠도 트레킹을 떠나기 전 배낭을 들쳐 메고 동네 한 바퀴만 돌았어도 쌀이며 스팸이며 페페로니가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진 않았을 텐데. 아까비.

사진 없어도 생생한 묘사를 이어가는 저자의 장면 캐치력이 놀랍고, 그의 유머가 일단 재미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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