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자유롭게 하는 힘

by 김커선

"겸손은 우리를 낮은 곳으로 이끈다. 그곳은 서 있어도 안전하고 넘어져도 괜찮은 땅이다. 겸손은 그 안에서 더 확고하고 충만한 자아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By Parker J. Parmer


왜 겸손해야 하는가? 으레 동양에서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고 서양에서는 자기를 자꾸 드러낼 것을 권장한다. 그 사이에서 갈피를 종잡기가 어려웠다. 어떤 때는 이게 맞는 것 같고 다른 때는 저게 맞는 것 같고, 예전에는 이게 맞았다가 지금은 저게 맞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상황에 따라 다르니, 둘 다 맞다고 해 두자고 혼자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왜 겸손해야 하는지 마땅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주역에서는 부디 자기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본색은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알려지는 것이 좋지 겉으로 표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다. 아무래도 가진 게 많을수록 잃을 게 많고 주변의 시기와 질투,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래 이 정도는 이해한다. 그래도 왜 겸손해야 하냐고, 그렇다면 가진 게 없을수록 안 겸손해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지 않은가?


겸손에 대한 위 구절을 읽자마자 머리를 차가운 얼음물에라도 담근 듯 시원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 보다 겸손을 와 닿게 표현한 작가를 그간 보지 못했다. 하기야 나는 애지간히 책을 안 읽으니 그래서 높은 확률로 못 본 것이라 쉽게 추측되기는 한다.

그렇다. 높아진 에고는 사람을 허공에 휘적거리게 만든다. 현실 감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붕 뜬 듯한 그 기분을 스스로 잘 이해할 것이다. 이게 아니라는 것 쯤 이내 알 것이다. 그렇다면 안전한 곳으로 이만 내려오자.

스스로 이것도 잘 났고 저 것도 잘났다고 자랑해 봤자 금방 깨지고 금방 부서진다. 명약관화, 그 방면에 그보다 잘난 이는 세상에 널렸고 발에 채이고 채인다. 원래 전교 1등은 모든 과목 1등이 아니라 두루두루 괜찮게 하다가 그걸 다 합쳐 1등이 되는 원리이다. 잘났다고? 다이다이 떴을 때, 대한민국에만도 내 앞에 줄 선 이들이 족히 수백만은 너끈할 것이다.

더 이상 불안하게 그러고 있지 말고 안전한 곳으로 이만 내려오자. 겸손은 내가 두 발을 땅에 디딘 상태이다. 이 곳에서는 넘어져도 괜찮고 자빠져도 괜찮다.


보고 싶은 대로 보지 말고, 냉정하게 바라보자. 대체 어디쯤 땅을 딛고 서 있는지 차분하게 둘러보자. 그 냉정함과 차분함이 도리어 나를 더없이 안전하게 그래서 무한히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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