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길, 신나게 달리고 달리고
자 오늘도 보람 있는 하루를 위해 히치하이킹을 나서볼까?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 체코의 프라하와 인근 도시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한 여름 유럽에 닥친 폭염 때문에 한낮에는 축축 늘어져 있기 일쑤였다. 이런 날에는 히치하이킹 하기가 정말로 힘이 든다. 그늘 하나 없는 도로 갓길에서 자동차 매연을 마시며 서 있자면 차라리 버스를 타는 게 낫지, 후회가 막심해진다.
사실 중부 유럽을 중심으로 교통 이동량이 많은 나라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등)에서는 저렴한 버스표를 구하기가 쉽다. 프로모션이 있으면 단돈 천 원에 10시간이 넘는 거리를 갈 수도 있다. 평소에도 2~3시간 거리는 6천 원 정도면 표를 구할 수 있다. 경제 수준에 비해 교통비가 저렴하다는 우리나라보다 더 싼 값에 국경을 넘나들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오늘따라 편안하게 이동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솟아올랐다. 한 편 여기서 히치하이킹 여행을 중단할 수 없다는 오기도 솟아났다. 내가 경험한 히치하이킹은 상당히 피곤하고 긴장되고 예측 불가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차를 수월하게 잡을 수 있는 소위 좋은 히치하이킹 포인트를 잡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고속도로 한가운데 떨구어지거나 교통사고를 겪는 등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이상 운전자를 맞딱뜨리기도 했다. 운이 좋은 날도 많았지만 '공짜 여행'이라는 이득을 감가 하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위험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려 보면 나는 도로 갓길에 서서 또 차를 잡고 있었다. 히치하이킹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의 일화, 예상치 못하게 겪은 사건중 충분히 모험이라 불릴만한 것들이 많았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겪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도 있었다.
히치하이킹은 그 자체로 엔도르핀이 팡팡 솟아나는 흥분된 일이었다.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또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게 마치 중독 같았다. 히치하이킹을 마치고 밤에 자려고 누울라치면 '오늘 하루도 보람 있게 보냈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중독 소리를 하고 보니 뜬금없지만 한 때 심각한 메스암페타민(히로뽕) 중독자였던 한 러시아인 친구 A가 떠오른다. A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메스암페타민 제조를 해 판매한 적도 있었다. A의 친구 중 B는 경찰이었다. 경찰 신분임에도 조직책을 섭외해 마약을 판매하다 검거되었다. 당시 징역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또 다른 러시아 중학생 C는 학교에서 실시한 마약 검출 테스트에 적발되어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었다. 여행을 다니며 보니 러시아, 동구권, 태국 산간지방 등 일부 동남아 국가에도 마약중독이 만연해 있었다.
마리화나(대마초)야 뭐, 우리나라만 벗어나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어서 놀랍지도 않았다. 시골에 사는 한 부부는 집에 자그마한 온실을 마련해 직접 재배하고 오븐에서 말려가며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굳이 네덜란드가 아니더라도 독일, 스위스, 호주 등 길거리나 집에서 합법적으로 마리화나를 흡연하고 있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최근 들어 마약 청정국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고 카더라. 이상 중독 이야기 끝.
어이 히치하이커, 너 지금 잘못된 곳에 서 있다고
프라하 외곽에서 지하철을 타고 도심을 가로질러 반대편 외곽으로 향했다. 슬로바키아로 향하는 고속도로 인근까지 도착한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 다리를 건너고 도로를 횡단하고 또 횡단해서 드디어 고속도로 갓길에 서게 되었다.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나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얼마나 걸었던지 벌써 목적지에 다다른 기분이 들었다.
고속도로에 다다르긴 했는데 마땅한 히치하이킹 포인트를 찾기가 어려웠다.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갓길에 공터가 하나 보였다. 얼른 배낭을 땅에 내려놓고 '브라티슬라바'라고 적힌 사인보드를 들고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차량통행이 꽤 많았는데도 멈추기는커녕 눈 길조차 주는 운전자가 없었다.
일주일만의 히치하이킹이라 감이 녹슨 건가 어쩐가 오늘은 차를 잡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GPS지도를 꺼내 다시 한번 현재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지금 서 있는 방향이면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얼마나 서 있었을까. 지프차 한대가 공터에 섰다. 앗싸 가오리를 외치며 재빨리 배낭을 둘러메고 차량을 향해 달려갔다. 5~60대쯤으로 보이는 운전자였다.
"브라티슬라바로 간다고? 너 지금 잘못된 지점에 서 있어.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태워다 줄게"
어라 내가 잘못된 곳에 서 있었나? 그래서 차들이 안 섰던 거구나 싶었다.
아저씨 이름은 이고르였다.
"사실 아까 지나면서 너를 봤었어. 네가 서 있던 곳은 브라티슬라바와 영 틀린 방향이었어. 몇 시간이고 서 있어도 히치하이킹하기 힘들었을 거야. 그럴 것 같아서 일부러 돌아왔지. 역시나 네가 그 자리에 있더구나."
알고 보니 잘못된 지점에 서 있는 히치하이커가 안쓰러워 이고르 아저씨는 자신이 가던 방향을 돌린 것이었다. 고속도로를 나가서 한참을 돌아 돌아 내가 있는 지점으로 돌아왔다. 생판 모르는 일개 히치하이커를 돕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과 기름을 써 가면서 말이다.
알고 보니 이고르 아저씨 역시 젊은 시절 꽤나 방황하던 영혼이었단다. 몇 년을 바쳐 세계를 유랑했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 경비를 충당하며 여행을 했다고 했다. 히치하이킹으로 유럽 곳곳을 누비고 다닌 것은 물론이었다. 벌써 몇십 년도 지난 이야기였지만 지금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에게 자동차가 생긴 이후부터 히치하이커가 보이는 족족 태워준다고 했다.
아저씨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아저씨에게 여행지 어디가 가장 흥미로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뉴욕이지, 뉴욕! 하늘로 멋지게 쭉쭉 뻗어 이어진 건물이 만든 마천루를 보는 데 가슴이 막 뛰더라고."
엥? 다소 의외의 대답이었다. 유럽을 여행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되어가는 나에게 유럽은 그야말로 인상적인 여행지였다. 고딕 양식의 웅장한 교회 건축물,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 속 인물을 담고 있는 조각상, 몇 백 년 동안 이어진 돌길 등 유럽이야말로 이색적인 곳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유럽인에게는 번쩍번쩍 빛이 나고 커다란 현대식 고층건물이 이색적이라니. 재미있는 사실이었다.
이고르 아저씨의 유쾌함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깔깔대는 수다가 이어졌다.
친절은 돌고 돌아 나에게로
이고르 아저씨는 곧 어마어마한 크기의 주차장이 딸린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나에게 기다리라고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에 서성이는 운전자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아저씨가 나에게 자기 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배낭을 둘러메고 쪼르르 달려갔다.
"여기 이 두 운전자가 브라티슬라바를 지나간대.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 길인데 브라티슬라바 인근에 너를 내려 줄 거야."
이고르 아저씨는 헝가리 트럭 운전자 아저씨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나를 꼭 좀 잘 데려다 주라며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트럭 운전자 아저씨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선한 인상들이었다.
"이 운전자분들이 영어를 못해. 대신 믿을만한 것 같아. 내가 중간중간 전화를 할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여행 잘하고 네 삶에도 행운을 빌어"
이고르 아저씨는 히치하이커를 돕기 위해 가던 길을 되돌아오더니, 다음 목적지로 가는 운전자들까지 섭외를 해 주었다.
누군가 이고르 아저씨에게 베푼 친절이 아저씨에게서 나에게로 건네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 또 나에게서 누군가에게로 건네질 것이다. 친절은 돌고 돈다는 걸, 친절의 속성을 다시 한번 경험했다.
유쾌 발랄한 헝가리 트럭 운전자 아저씨들
헝가리 아저씨들의 트럭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내가 타 본 트럭 중 가장 커다란 규모였다. 처음에는 산더르 아저씨가 운전을 하고 유리 아저씨가 보조석에 앉았다. 나는 좌석 뒤편에 마련된 간이침대에 앉았다. 드디어 출발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앉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왕좌에라도 앉은 기분이었다. 다른 차들이 모두 장난감처럼 자그마해 보였다. 호가호위 (狐假虎威: 전국책(戰國策)"의 "초책(楚策)"에 나오는 말로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라고 괜히 내 어깨가 으쓱으쓱 했다.
아저씨들이 영어를 못 한다고 하니 혹시나 싶어 러시아어로 말을 걸어 보았다. 아저씨들은 기초적인 단어를 조금 아는 수준이었다. 대신 기대치 않게 산더르 아저씨가 간단한 영어 단어나 표현을 약간 구사할 줄 알았다. 이어 러시아어 단어와 영어 단어를 뒤섞은 대화가 트럭 안에서 이어지기 시작했다.
아저씨들은 집 떠난 지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헝가리에서 물품을 싣고 영국까지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유럽에는 트럭 운행 규정이 있다. 모든 트럭은 운행기록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해 실시간으로 감시를 받는다. 트럭운송 기사 (승객 운송 버스도 해당)의 경우 휴식시간이 법으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예외규정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4.5시간 운행 후 45분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하루 최대 9시간 운행 후엔 최소 11시간의 휴식을 취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식료품 운반을 제외한 3.5톤 이상의 화물트럭은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밤까지 고속도로 이용이 제한된다.
히치하이킹을 하다 보면 고속도로 휴게소나 쉼터에 트럭이 가득 차 있는 광경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운행시간이 엄격히 적용되다 보니 일일 운행시간이 채워지면 운전자들은 그 자리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트럭마다 잠 잘 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취사도구나 먹거리 등을 가득 싣고 다니며 밖에서 조리를 해 먹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들에게 굴라쉬나 음료수 등을 얻어먹기도 했었다.
만약 한대의 트럭에 운전자가 2명이라면 일일 최대 9시간 운행 규정에서 자유롭다. 운행시간을 단출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헝가리 아저씨들도 2명이 팀을 이뤄 헝가리-영국을 왕복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일주일이 걸렸다니 유럽이 참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한 지 어느 정도 지나자 아저씨들은 휴게소에 들러 운전자 위치를 바꾸었다. 이번에는 유리 아저씨가 운전대를 잡고, 산더르 아저씨가 보조석에 앉았다.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그런지 아저씨들은 다소 들떠 보였다. 두 분의 입가에선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신나는 먹자 드라이브
트럭에 타자마자 아저씨들은 먹을 것을 하나씩 둘씩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목마를 까 봐 물로 시작하더니 이내 커피가 건네지고 맥주가 등장했으며 처음 보는 '아드레날린'음료까지 나왔다. 좀 쉬려는 찰나 아이스크림이 조그마한 냉장고에서 또다시 등장했다. 이번엔 조그만 숟가락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살림하는 아줌마처럼 꼼꼼한 아저씨들의 모습에 쿡하고 웃음이 나왔다.
유리 아저씨는 조금 과묵한 성격인 듯했다. 묵묵히 운전을 하고 간혹 담배를 피웠다. 반면 산더르 아저씨는 말투나 생김새에서부터 쾌활한 성격이 묻어났다. 이번에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떠날 계획이라고 했다. 바닷가에서 푹 쉴 거라며 아이처럼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뜬금없이 자신의 딸에게 전화를 걸더니 나를 바꿔주기도 했다. "내 딸이 영어를 잘 하니까 한 번 대화해 봐."
나는 얼른 핸드폰을 받아 들고 산더르 아저씨의 따님과 한참을 이야기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뭐 하는 인간인지, 가족관계는 어떤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등등 산더르 아저씨가 궁금해했을법한 것들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또 아저씨의 여름휴가 계획에 대해서도 꼼꼼히 들을 수 있었다.
한바탕 인터뷰가 끝나고 바깥 풍경도 좀 둘러보던 찰나였다. 산더르 아저씨가 다급하게 "검문 지점이 나오니까 너 숨어야 돼" 하고 말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운전석 뒤편에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지나는 길에 단속 경찰과 감시 카메라가 있는 모양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운전자 2명 외에 추가 인원이 있으면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에어컨도 없는 찜통 트럭 안에서 담요를 덮어쓰고 있자니 땀이 차고 숨이 턱턱 막혔다. 그래도 색다른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니 마냥 신이 날 뿐이었다. 경찰을 속이기 위해 운전자 둘은 태연한 듯 가장하고 히치하이커는 몰래 몸을 숨기고 있다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또다시 아드레날린이 팡팡 솟아나고 있었다.
어느덧 아저씨들과 장장 4시간이 넘는 흥겨운 드라이브가 거의 끝이 나고 있었다. 슬로바키아 국경에 들어온 것이다.
그동안 내 무릎엔 식빵 한 봉지, 인스턴트 수프 2 봉지, 굴라쉬 통조림 하나, 스튜 통조림 하나, 식빵에 발라 먹는 통조림 두 통이 쌓여 있었다. 캔 따개는 서비스였다. 간간이 물이나 음료도 제공되었다.
산더르 아저씨는 부다페스트에 들르거든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 역시 아저씨들과의 즐거운 먹자 드라이브 시간이 끝나가는 게 아쉬웠다. 아저씨에게 이메일 주소를 받고 내가 찍은 사진을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트럭으로는 시내를 통과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들은 브라티슬라바와 최대한 가까운 휴게소에 트럭을 세웠다. 나는 배낭과 통조림, 음료수를 챙겨 트럭에서 폴짝하고 뛰어내렸다.
엄마처럼 먹을 걸 잔뜩 챙겨 준 유리 아저씨와 산더르 아저씨. 비록 국적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달랐지만 그들이 보여 준 따스한 애정은 내 가슴에 그대로 와 닿았다.
아저씨, 항상 안전 운행하시길 바랄게요. 돈도 많이 아주 많이 버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