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시절 내내 육상부원으로 활동했었다. 주종목은 100미터 달리기, 400미터 계주 그리고 멀리뛰기였다. 어릴 적부터 몸이 날렵하고 재발라서 순발력이 좋은 편이었다. 고무줄놀이, 제기차기, 줄넘기 등등 친구들과 놀이를 할 적마다 에이스 역할을 도맡곤 했었다.
왠만한 운동이라면 다 잘할 것 같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 없는 종목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오래 달리기였다. 단거리용 근육인 백근은 발달했는데 장거리에 적합한 적근은 발달되지 않아서 오래 달리기라면 젬병이었다. 초딩시절 연례행사인 '호골산' 한 바퀴 돌기를 하고 나면 어린 마음에도 이렇게 가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었다. 아무리 육상훈련을 해도 오래 달리기만큼은 늘지가 않았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 형편이다.
그러고 보면 성격도 근육분포와 비슷하다. 순간적인 판단력이나 대응력은 좋다고 평가받는 반면, 오래 지속한다거나 참을성을 갖는다거나 하는 것들에는 영 소질이 없다.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건 사회생활이든 개인적인 생활이든 많은 부분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곤 한다.
작년부터 올해 중반까지 합기도를 나름 꾸준히 수련했었다. 합기도는 순간적인 판단이나 힘을 발휘하는 훈련을 반복하기에 순발력 강화에 좋은 운동이다. 노화를 늦추려면 백근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전문가의 조언도 있으니 근육이 퇴화되는 시기에 합기도 수련은 매우 적합한 운동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제는 달리 해보려 한다. 장점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단점을 어느 정도는 보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면에서건 한쪽이 너무 강화되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을 잡아가는 게 육체건강은 물론이고 정신건강에도 도움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며칠 전부터 오래 달리기를 새롭게 시작했다. '오래'라고 해서 한 시간씩 달리고 뭐 그런 건 아니고 30분 정도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기량으로 쉼 없이 달리는 것이다. 처음엔 3분만 넘어가도 가슴이 답답하고 더 이상 뛸 수 없겠다 싶었는데 고비를 넘기니 어느새 탄력이 붙어서 그럭저럭 멈추지 않아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첫날엔 자세가 잘 못 되었는지 왼쪽 엄지발가락이 아프더니, 다음날엔 달리는 와중에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려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가 컸었다. 마사지겔을 바르고 쌍화탕 복용도 하고 잤더니 이튿날이 되자 통증은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운동화 끈을 바짝 조이고 집을 나섰다. 비가 와서인지 그 많던 달리기 인파가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 혼자 넓은 길을 전세 낸 것 마냥 독차지하며 신나게 달렸다. 다행히 잔잔한 빗방울이 떨어지길래 땀까지 시원하게 식힐 수 있었다.
매일 밤 땀을 흠뻑 쏟아내고 나면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지 않고 생각보다 재미있는 운동이 달리기라는 사실을 새롭게 아는 요즘이다.
이제는 나도 지구력을 길러야 할 때이다. 긴 시선으로 보고 긴 호흡으로 일이든 뭐든 끌고 나갈 힘이 필요하다. 아직은 택도 없이 느리지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하다 보면, 황소처럼 뚝심 있게 나만의 힘이 길러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제라도 머리를 비우고 싶으면 어김없이 운동화 끈을 바짝 조이고서 일단 밖으로 뛰쳐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