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혐오스럽게는 안 할게요
"눈이 많이 나쁘신가 봐요."
"렌즈 끼니까 확 달라 보인다. 렌즈 끼고 다녀~"
나는 고도 근시다. 회사에선 두꺼운 안경을 낀다. 공식 행사가 있어 렌즈를 낀 나를 본 회사 사람들은 대체로 내게 렌즈를 끼라고 권했다. 아 그럴까요? 나는 건성으로 답하고는 여전히 안경을 끼고 다닌다. 다 이유가 있다.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안경을 끼기 시작했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안경 두께도 같이 두꺼워졌다. 한참 외모에 관심이 많던 시절이어서, 중3 때부턴 렌즈도 끼기 시작했다. 친구들, 특히 남학생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진 걸 그 때 느꼈다. 조금 더 호의적인 느낌이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스물일곱, 첫 직장에서 몇 개월 동안은 렌즈를 끼고 다녔다. 시종일관 모니터만 보다 퇴근하는 일이었지만, 왠지 신입사원은 좀 더 단정해야 했고 그러려면 안경을 안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눈은 여름엔 에어컨 바람에, 겨울엔 히터 바람에 계속 건조해졌다. 집에서 렌즈를 뺄 때면 눈은 렌즈를 토해내듯 뱉어냈다. 결국 다시 안경잡이로 돌아왔다.
그 이후에 다른 직장에서도 나는 안경을 끼거나 벗거나 했지만, 이제는 계속 안경을 끼고 다닌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거나 연예인처럼 외모가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다면 아마 다시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주로 사무실 안에 있고, 업무 성격은 크게 성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외모를 가꾸는 일이 내 업무의 영역이 아니라는 의미다.
게다가 사회생활에서 드러내는 외모는 타인의 향유 대상이다. 이 공간에서 내가 내 외모에 만족한다고 하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즉 다른 사람이 만족해하는 내 모습에 만족하는 것과 같다. '나를 이렇게 봐 달라'는 이미지 설정조차 소모적이라고 느끼는 나는, 외모를 혐오감을 주지 않는 정도로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 특히 남자가 여자인 나를 예쁘게 봐줄만한 요소인 큰 눈과 잘록한 허리, 매끈한 다리 등은 업무에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외모가 아닌 일로 인정받고 싶다는 태도에서 나온 생각이다.
한 기사에서 쇼트커트를 하고 화장을 지우고, 집에 있는 짧은 바지를 모두 버렸다는 한 여성의 얘기를 읽었다.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한 모든 행위를 일컫는 '탈코르셋 운동'의 일환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코르셋은 화장, 긴 머리, 치마가 있다고 했다. 이들 목록은 내게 취향의 문제이기에 나는 여기에 '안경'을 추가하고 싶다. 눈이 나빠서 알 두꺼운 안경을 썼을 때 '렌즈를 껴 보지 그러냐'는 제안은 지레짐작으로도 남자보다 여자가 좀 더 많이 받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니 안경 낀 아나운서, 스튜어디스의 사례가 화제가 되는 일도 무리는 아니다.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여름마다 땀이 차는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라섹을 하고 싶긴 하다. 렌즈를 낀 모습이 사람들에게 특히 이성에게 친절을 이끌어내기 쉬운 방법이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해도, 속한 집단의 드레스코드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해도 내 눈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업무 외적인 요소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안경을 쓴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