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전>, 인간 본성과 스스로의 정체성 규정 화두를 던지다
[결론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이해영 감독의 영화 <독전>은 어딘지 께름칙하다. 누구나 예상 가능할 법한 반전이 있었는데, 그에 비해 결말은 열려있다 못해 허무했다. 찝찝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집에 가는 사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에 나오는 요한 리베르트가 생각났다.
#1. 말끔하고 선한 외모에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해 보이기도 했던 게 요한이었다. 이 모습은 자신이 기르던 개를 끔찍이 아끼고, 손목이 잘린 채 마약을 만드는 농아 남매와 소통하는 이선생과의 행동과도 겹쳐 보였다.
특히 영화 속 '이선생'의 부모가 어린 시절 약에 취해 죽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구동독 시절 고아를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장에서 탈출한 요한의 비화와 흡사한 느낌이었다. 집에 와서야 감독이 이 연출을 의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 이선생이든 요한이든 모두 극한의 어린 시절을 겪어오면서 아이로서는 겪기 힘든 잔인한 환경에 내몰렸다. 이들을 그런 환경이 만든 악마로 봐야 할지, 아니면 아이가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자랐어야 했다고 지탄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마약에 취한 부모 밑에서 자라 모든 아이들이 공격성을 타인에게 향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이상한 사람이 있는 '또라이 총량 보존' 같은 법칙과 비슷한 이치이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란 살풍경한 과거를 모른채 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3. 영화를 통해 한 가지 가설을 세우게 됐다. 인간의 자의식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 주고, 그 일부의 귀결로 생긴 선악의 개념이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게 해 주는지에 대한 관련성 여부가 그것이다.
어쩌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선생'과 요한이 자신의 부모와 교감한 기억이 없어 자신의 뿌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살인 과 같은 단적인 죄악을 저지르면서 이에 대한 죄의식이 없었다는 점에서다.
그 외의 부차적인 소감.
1. 차승원의 사칭 연기는 자신이 명품 배우라는 사실조차 스스로 지우고 임한 느낌이 들 만큼 어설펐다.
2. 차승원의 사칭 연기로 김주혁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됐다.
3. 김주혁 RIP...
4. 김주혁과 진서연의 망나니 짱개 부부 연기는 일품이었다.
5. 이번에 개봉한 영화는 7월 확장판의 티저일 수도 있겠다.
6. 7월 확장판에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친절해져서 감정이입이 좀 더 수월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