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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maseve Feb 29. 2024

그. 삶. 안 VIII

산드로 보티첼리: All's fair in Love and War

어찌보면 합리적이어서 빠르게 수긍이 되니 이렇게 쓰는게 맞을지 고민이 되지만, 미국에 와서 문화 충격 아닌 충격이랄까.. 약 6개월 정도 생활해오면서 대략 두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첫번째는 퇴근 후 맥주 한 두잔 정도는 가볍게(?)하면서 교통정체 시간을 'Happy Hour'로 보낸 뒤 직접 운전들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더라는 것(물론 이것은 불법이다.), 이어서 두번째는 연애 관계에 있어서 참으로 다양한 정의가 있고, 그 중 한국에서 소위 '썸'이라고 부르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직은' 애매모호한 관계를 한번에 여러 사람과 유지하거나 혹은 한 사람과 장기간 유지하더라는 것.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은 Friends with benefit은 여기서 논외로 하겠다. 이것도 wikipedia에서 찾아봤다가 아직도 헤매는 중이라..)


아무튼 이러한 혼돈의 카오스와 같은 문화충격과 더불어 지난 십수년간 남녀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은 질리지도 않게 '비너스와 마스'이다. 로마(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그린 수많은 그림들 중에서도 비너스(아프로디테)를 주제로 한 작품은 차고 넘치는데 보티첼리의 이 작품만 수십년이 넘도록 주구장창 찾아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반전'의 매력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상황을 뒤집는 반전 그리고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둘 중 어느 걸 써야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현실 같은 비현실 커플, 사랑과 전쟁

실제로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이 그림이 걸려있는 전시장에서도 '비너스와 마스'는 군계일학으로 다가왔다. 비슷한 시기의 참으로 지루해보이는 그림들 사이에서 등장인물 모두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비너스의 표정에서는 참아왔던 화가 곧 터질 것 같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속절없이 곯아떨어진 마스의 얼굴 주변에서는 마치 코고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이 둘을 둘러싼 사티로스들의 표정도 다채로운 장난스러움과 급하게 마스를 깨우려는 제스처에서 느껴지는 긴박감까지, 멈춰둔 영화 속 한 장면이 꿈틀꿈틀 다음 장면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알고보면 불륜의 현장, 비너스와 마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비너스는 마스와 사랑을 나누던 순간 사실상 유부녀 였다는걸. 심지어 남편이 대장장이의 신으로 비너스의 불륜 사실을 알고 난 뒤 이 둘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했으며, 이 장면 또한 수세기 동안 화가들의 단골 주제였다. 비너스는 이후에도 남편 뒷통수 치는 걸 멈추지 않고 그 다음 상대는 심지어 연하남이다.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이러한 남성편력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이 순간을 골랐다. 비너스와 마스가 격렬한 사랑을 나누고 난 직후의 순간을.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_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 )

아마 오랫동안 이 그림을 봐오면서 여전히 설레임의 물음표를 가지고 있었던 나의 이유는,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랑에서 그리고 관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미학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지지 않기' 위해 '참여' 해야하는 전쟁과 같은 사랑, 그래서 말도 안되는 모든 것들이 다 '정당화' 된다는 '사랑'이라는 행위를 감히 정의하려던 시도는 참으로 호기로웠다. 그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읽고, 보고, 듣고, 상상해보며 관계를 정의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그러나 불손했다. 하지만 나의 마지노선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모호함(non-committal) 안에서도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

결국 20여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그림을 보아오며, 이제야 읽게된 보티첼리의 메시지는 '다름과 차이'이다. 각각 다른 서로에게 끌리고, 둘 사이의 차이를 그 자체로 바라봐주면서 소유하고 싶어지는 욕망을 다스려 서로에게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

이제 비너스의 얼굴을 분노가 폭발할 것 같은 표정으로 읽지 않는다. 마스의 표정은 사티로스의 알람을 듣자마자 눈을 번쩍 뜰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 둘이 같은 상황 안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많이 다르고 차이가 나지만, 결국 함께 있는 이 상황은 같지 않겠는가. 누군가를 아끼고 아낌을 받는 '사랑'이 하고 싶다는 것.


그러니 비너스와 마스는 당장 그림 밖으로 나와 서로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 비너스는 남편에게 상처주는 것을 멈추고, 마스는 이제 좀 정신을 차릴 때가 되지 않았나? 모든 것이 정당화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랑과 전쟁은 신들의 게임이었을 뿐이다. 비인간적이다. 하지만 이 불륜 커플의 비현실적 연애 결실이 큐피트(에로스)가 되는건 인간적으로 받아들여야하나.. (나머지 자식들은 다음 기회에 엮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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