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후 일 년 동안 배운 것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할 때 잡지를 잘 읽는다. 평소 읽기 힘든 매체이기도 하고, 은근 쏠쏠한 정보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날도 잡지를 보고 있었는데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짧은 글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감정을 글로 적어보면 잠시 동안이라도 그 감정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회사일로 많이 힘들어하던 동생이 떠올랐다. 동생이 쉽고 예쁘게 감정을 기록할 수 있는 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폰 메모장을 열어 잡지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옮겨 적고 이렇게 적었다. '아주 쉽고 예쁘게 감정을 기록할 수 있는 앱'. MOODA 앱 기획의 출발이었다.
상위 기획을 할 때 거창하게 문서를 작성하는 편이 아니다. 메모장에 어떤 앱을 만들고 싶은지와 주요 기능을 간단히 적어보고, 참고할 만한 이미지가 있다면 몇 개 첨부해둔다. 내가 만들고 싶은 앱은 '아주 쉽고 예쁘게 감정을 기록할 수 있는 앱'이었다. 아무리 기능이 많고 좋아도 복잡하고 어려우면 쓰기 싫기 때문에 무조건 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항상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앱이 조금이라도 복잡하거나 어려우면 잘 열어보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예뻐야 한다. 예쁘면 일단 열어볼 때마다 마음이 기쁠 것 같았다. 쉽고 예쁜 감정 기록 앱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떠올랐다. 특히 영롱하게 빛나는 색색의 감정 구슬들이 또르르 굴러가 기억저장소에 보관되는 장면. 이걸 앱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에서 감정을 의인화한 것처럼 앱이 감정을 털어놓는 대화의 상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정 선택-작성-완료에 이르기까지 마치 친구에게 감정을 털어놓는 듯한 흐름으로 설계했다.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말을 걸고, 내 마음을 기록하면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를 해주는 앱. 한 달 간의 내 마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앱. 앱의 주요 화면과 기능은 대략 다 그려졌다. 하지만 내 메모장에만 머무는 한 이 기획은 나의 수많은 Wish List 중 하나에 불과했다.
만들고 싶은 아이템이 생기면 초기 단계에 주변에 잘 이야기한다. 친한 동료들과 티타임 할 때 은근슬쩍 꺼내본다.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생각이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감정 기록 앱도 친한 동료에게 언젠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동료가 메시지를 보내왔다."이거 만들어 줄 만한 사람 아는데 소개해줄까요?" 당장 콜이었다. 이미 다른 일기 앱을 만들어 본 경험도 있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앱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은 개발자였다. 무슨 앱을 왜 만들고 싶은지 간단히 이야기했는데, 이야기를 듣는 눈빛을 보니 내가 하는 이야기 100중에 90은 알아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다 듣더니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자기가 아는 실력 있는 디자이너 한 명을 섭외해왔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데 뭔가 숨겨진 내공이 있는 것 같았다. 앱을 같이 만들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팀이 결성되었다.
우리 팀은 느슨하게 연결된 팀이었다. 자주 모이지 않고 필요할 때만 메신저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공유할만한 결과물이 있을 때만 가끔 만나 결과물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처음으로 디자인 시안을 봤을 때 아이가 손그림으로 그린 듯한 아날로그적이고 귀여운 느낌이 좋았다. 내가 보기엔 그냥 이대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디자이너는 급하게 작업한 거라 맘에 들지 않고, 조금 더 손을 보고 싶다고 하며 아티스트 같은 면모를 보였다. 최종 시안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그동안 개발자가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프로토타입을 보면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개발자가 한 달의 감정을 모아 보는 첫 화면에서 화면을 흔들면 같은 색 감정끼리 모아주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며 다 같이 즐거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개발자는 앱 인터랙션에 굉장히 강한 개발자였다.)
앱 이름도 정해야 했다. 몇 개 후보를 만들어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또 반대로 주변에서 추천을 받기도 했는데 결국 맨 처음 생각한 이름으로 결정했다. MOODA. Mood Diary의 줄임말. 받침이 없어 발음하기 쉽고 뭔가 귀여운 느낌이 있어 앱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 역시 이름 짓는 일이 가장 어렵다. 우리의 프로젝트가 조금 늘어질 무렵, 목표 일정을 정하고 그 일정에 맞춰 앱을 출시하기로 했다. 목표 일정에 임박할 즈음 두세 번 정도 다 같이 모여 강도 높은 작업을 했다. 나는 번역기 및 주변 지인의 도움을 통해 다국어를 완성하고 앱스토어에 올릴 설명글을 작성했다.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나란히 앉아 가이드를 하나하나 맞춰가며 앱의 디테일을 만들었다. 목표 일정이 있다 보니 숙제하는 기분이었을 텐데 (나중에 개발자로부터 당시 숙제하는 기분으로 마무리했다는 고백을 들었다.) 결코 타협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꼼꼼하게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목표로 한 D-day를 맞추려고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까지 열일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App Store 심사 등록 요청 완료! 늦은 밤이었지만 기념하기 위해 셋이 간단히 치맥을 하고 헤어졌다.
2019년 8월 17일 MOODA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앱 아이콘만 봐도 기분이 좋고 앱을 열면 더 행복했다. 항상 머릿속에만, 메모장에만 있던 작은 아이디어가 실제로 동작하는, 심지어 예쁜 앱이 되어 세상에 나오니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만큼 기뻤다. 일단 가족 및 가까운 몇몇 친구들에게만 앱 출시 소식을 알렸다. 아직 주요 기능이 다 붙지 않은 0.9 베타 버전임을 강조하고 적극적인 홍보는 하지 않았다. 출시 첫날 한국 앱 스토어 유료 앱 순위 80위권에 등장했다. 내가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더니 한국 유료 앱 시장은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주변 지인들만 바짝 다운로드를 받아도 그 정도 순위가 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개발자가 말해 주었다. 출시 직후 MOODA의 가장 열렬한 팬은 나였다. 매일 MOODA에 일기를 쓰고, MOODA 인스타 계정에 게시물을 올리며 하루하루 소소한 즐거움을 획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앱 스토어를 열었는데 세 번째 탭 '새롭게 추천하는 앱' 컬렉션 가장 첫 번 째 순서에 MOODA가 떡하니 걸려있었다. 아직 0.9 버전인데 애플에게 관심받다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관심받은 것처럼 기뻤다. 애플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이후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국 앱 스토어 유료 앱에서 순위가 급상승하더니 출시 22일째 되던 날 1위를 기록했다. 같은 날 미국과 일본의 앱 스토어에서도 '우리가 지금 사랑하는 앱' 컬렉션 가장 첫 번째에 소개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후 다이나믹한 순위 변동은 없었다.) 아직 우리가 생각한 주요 기능을 다 붙이지 못한 베타 버전인데 얼떨떨했다. 좋기도 했지만, 얼른 1.0 버전을 출시해서 다운로드 받은 유저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번엔 '목표 일정'이 아닌 '유저'들을 위해 똘똘 뭉쳤다. 첫 출시 후 한 달 동안 약 세 번의 업데이트를 했고, 일기 작성 외에 암호 잠금 기능, 알림 기능, 페이징 기능을 갖춘 1.0 버전이 정식으로 출시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MOODA를 잘 키우는 것이었다. 화면의 기본 뼈대 위에 살을 붙여 나가는 작업. 앱은 업데이트가 가능한 소프트웨어니까 언제든 부수고 다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비효율적이고 기존 유저들에게도 불편함을 줄 수 있다. 앱의 주요 화면들은 무엇인지, 각각은 왜 필요한지, 이들을 어떻게 연결할지 처음부터 잘 설계해야 앱의 구조를 크게 흔들지 않고 살을 붙여나갈 수 있다. 살을 붙여나가는 건 꾸준한 업데이트를 의미한다. 꾸준한 업데이트는 앱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계속 새로운 유저들을 만날 기회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무조건 많은 업데이트가 좋은 건 아니다. 업데이트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우리가 넣고 싶은 기능보다는 유저들이 원하는 기능을 우선순위에 둔다. 이 중에서 지금 꼭 필요한 기능을 정하고, 우리의 핵심 가치인 '심플함'을 해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디자인 톤으로 새 기능을 설계한다. 구현의 과정은 험난하다. 우리 개발자는 매번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구현해내는 걸 목표로 한다. 디자이너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디자이너가 전달해주는 명확하고 꼼꼼한 가이드로 인해 신뢰가 단단해진다. 하지만 디자인을 그대로 구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고민과 머리 아픈 시간들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업데이트를 하면 유저들의 반응이 바로 온다. 수십 번의 업데이트 중에서 특히 유저들의 반응이 컸던 업데이트를 네가지만 소개해 보겠다.
1. 2019년 11월, 버전 1.3.0 - 감정 추가 기능 업데이트
출시 당시 MOODA에서 고를 수 있는 감정은 총 다섯 가지-기분 최고/평온해/짜증나/걱정돼/우울해-였다. 출시 후 많은 유저들로부터 감정을 더 늘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감정을 기록하는 앱인 만큼 제공 중인 다섯 가지로 표현할 수 없는 다른 감정들을 추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감정을 다 넣을 순 없고, 우리의 심플한 매력을 해치지 않는 방식이어야 했다. 유저가 직접 커스텀해서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식과 현재의 감정 선택 휠을 옆으로 돌리면 추가로 감정을 네 개-완전 좋아/설레/그저그래/피곤해-를 더 보여주는 방식 중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했다. 그게 더 심플한 방식이기도 하고, 감정 개수가 너무 많아지면 첫 화면에서 한 달간의 감정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추가되는 감정들을 인스타에 예고하자 좋아요 수가 평소 대비 세배 정도 늘었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이 추가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감정을 더 추가해달라는 의견들이 가끔씩 있다. 하지만 일단 현재의 아홉 가지 감정을 유지 중이다.
2. 2019년 12월, 버전 1.5.0 - 크리스마스 테마 업데이트
크리스마스 테마는 유저들에게 깜짝 선물로 준비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해마다 12월에 MOODA앱을 열면 전구에 반짝반짝 불이 들어오고, 감정들이 모두 귀여운 크리스마스 복장을 하고 있으며, 바닥엔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11월 29일 인스타에 크리스마스 복장을 한 MOODA 사진을 올리고 12월 1일 눈을 뜨면 MOODA를 열어보라고 예고했다. 유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평소엔 이런저런 기능을 요청하는 이메일이 많은데 이 업데이트 직후 앱을 열어보고 감동했다는 이메일이 많이 왔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유저들이 인스타 스토리에 MOODA의 크리스마스 테마를 공유했다. SNS 바이럴에 힘입어 다운로드 수도 많이 올랐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정말 유저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것 같은 기분이라서 행복했다.
3. 2020년 4월, 버전 1.7.0 - 사진 기능 업데이트
최소한의 스펙으로 빠르게 출시하려고 사진 기능을 미처 넣지 못했다. 출시 이후 몇 개월이 지나자 앱을 잘 쓰고 있는 사용자들로부터 사진을 넣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이 매우 많아졌다. 연말, 연초 동안의 폭발적인 성장이 끝나고 신규 다운로드 수가 조금씩 떨어지던 무렵, 드디어 사진 기능을 출시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사진 기능을 넣을 때도 위에서 말한 업데이트 원칙을 고려했다. 우리의 핵심 가치인 '심플함'을 해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디자인 톤으로 새 기능을 설계할 것. 디자이너가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넣어주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개발자가 폴라로이드 사진이 '찰칵' 하고 나오는 느낌을 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남은 일은 가장 심플한 UX로 이 아이디어들을 잘 연결하는 것이었다. 최대한 일기 작성 화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쉽게 사진을 올리는 데 초점을 맞춰 설계했다. 설계도를 전달하면 우리 디자이너는 항상 기획자의 의도를 100% 구현한 디자인을 가져온다. 거기에 특유의 깨알 같은 디테일과 귀여운 감성이 같이 온다. 엄청난 고민의 시간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넘겨받으면 개발자는 풀가동을 시작한다. 사진 기능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사진을 어떤 식으로 넣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아이폰 메모장에서처럼 사진을 텍스트같이 넣는 방식을 채택했다. 업로드한 사진은 현재 커서가 위치한 곳에 들어가고, 텍스트처럼 지울 수 있다. '사진 한 장을 붙인다'라는 한 마디 말을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고민할 사항이 꽤나 많다는 걸 깨달았다. 많은 시간을 공들인 끝에 사진 기능이 출시되었다. 우리의 기대보다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사진 기능 업데이트 직후 하향세이던 신규 다운로드 곡선이 반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앱을 설치하고 잘 쓰지 않던 유저들이 많이 돌아왔다. 모두가 밥 먹듯이 사진을 찍고 소비하는 '이미지의 시대'에는 아무 말 없이 감정 하나, 사진 한 장만으로 내 하루를 풍성하게 기록할 수 있다.
4. 2020년 6월, 버전 1.8.0 - 스티커 기능 업데이트
스티커 기능은 진작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 유저들이 원하기도 했고, 앱이 더 풍성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스티커 기능은 거의 앱을 하나 더 만드는 수준으로 구현 난이도가 높았다. 단단히 준비가 필요했다. 촘촘하게 정의해야 할 세부 기능들이 많아서 기존의 사진 편집 앱이나 메신저 앱들을 참고해 기능 리스트를 만들었다. 내가 세부 기능들을 정리하는데 급급했던 반면, 이번에도 MOODA다운 남다른 접근이 있어야 한다는 걸 디자이너가 잊지 않고 고민해주었다. 스티커팩을 가위로 잘라 개봉하는 느낌으로 디자인을 가져왔다. 시안을 본 순간 이거다 싶었다. 심플하면서 귀엽고 아날로그적인 이 느낌! 개발자도 디자인을 100% 구현해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이후의 과정은 이번에도 역시 험난했다. 스티커팩 안에서 스티커들이 흩날리는 UX를 구현하기 위해 물리엔진 기술을 꼬박 하루 동안 새로 공부해 개발했고, 스티커를 붙이고 편집하는 UX를 구현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개발의 과정에는 기획 단계에서 잡히지 않는 예외 케이스들이 항상 튀어나온다. 사실 튀어나온다기보다 유저의 사용성을 꼼꼼하고 예리하게 생각하다 보면 예외 케이스들을 발견하게 된다. 기획 단계에서 모든 예외 시나리오를 다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주요 시나리오를 완성하기에도 벅찬 경우가 많다. 개발 과정에서 예외 케이스들이 발견될 때는 기획자와 이야기해서 베스트 시나리오를 만들면 된다. 물론 말처럼 쉬운 과정은 아니다.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모두가 ‘함께’ 집중하는 것이다. 내 기량을 펼치는 일뿐 아니라, 내 옆의 동료가 자기 기량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공을 정확히 패스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나도 아직까지 이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으니 열심히 노력하면 늘지 않을까 싶다.
힘겹고도 중요한 업데이트였어서 말이 길어졌지만, 어쨌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티커 기능 업데이트 이후 정체하던 일간 사용자 그래프가 상승 곡선으로 바뀌었고 신규 다운로드가 늘어났다. 특히 스티커팩을 가위로 잘라 개봉하는 부분에 많은 유저들이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최근에는 일본의 한 유저가 스티커 개봉씬을 화면 녹화해 트위터에 올렸는데 해당 동영상이 (2020년 9월 4일 기준) 11만 회 이상 재생되고, 해당 유저의 MOODA 소개 트윗이 2만 회 이상 리트윗 됐다. 트위터 바이럴이 최고조였던 며칠 동안 일본 App Store 유료 앱 1위를 달성하는 기록도 세웠다. (현재 2위로 내려왔다.) 스티커 개봉 씬에서의 남다른 디테일이 그동안 크게 반응하지 않던 일본 유저들을 사로잡은 것 같았다. 그리고 새삼 SNS 바이럴의 위력을 실감했다. 요즘 유튜브에서는 옛날 영상을 끄집어내 댓글 놀이하는 게 유행이다. 십 년 전 노래도 유튜브에서 유저들의 눈에 띄면 다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시대다. 단, 무난한 건 눈에 띄지 않는다. 뭘 하더라도 남다르게 해야 한다.
앱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비단 꾸준한 업데이트만이 아니다. 온라인 상에서 유저들과 관계를 만들고 소통하면 앱의 생명력은 더욱 강해진다. MOODA가 현재 운영 중인 온라인 채널을 소개해 보겠다.
앱 스토어
MOODA 출시 이후 앱 스토어에 리뷰가 올라오는 게 신기했다. 다들 어떻게 알고 다운로드 받았는지 너무 감사했다. 초기에는 리뷰에 일일이 답변을 달았다. 유저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제안해준 기능을 검토하겠다고 하고 꾸준히 업데이트할 테니 함께 해달라고 했다. 점점 많은 유저들이 리뷰를 남기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리뷰가 좋아서, 개발자의 답변을 보고 믿음이 생겨서 앱을 다운받았다는 내용도 보였다. 유저들의 의견을 반영해줘서 고맙다는 리뷰도 많았다. 서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생각을 말하고 응원하고 약속하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MOODA를 매개로 '소통'하고 있었다. 현재는 일일이 답변을 달 수 없을 만큼 많은 리뷰가 쌓이고 있다. 한국에서 3,700개 이상, 전 세계적으로 7,000개 이상의 리뷰가 쌓였다. 오류 리포트나 기능 문의같이 대응이 필요한 리뷰 중심으로 답변을 달고 나머지 리뷰는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다.
인스타그램
출시 직후 미리 만들어둔 MOODA 인스타 계정 운영을 시작했다. 앱 아이콘 이미지로 프사를 등록하고, 앱 한 줄 카피-내 안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를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해 적어 두었다. 앱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해시태그, 앱 다운로드 링크까지 걸어서 프로필 완성. MOODA 운영자 모드지만 평소 내 감성으로 하나 둘 게시물을 올렸다. MOODA는 어떤 앱이고 왜 세상에 나왔고 어떤 만남을 기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스타는 유저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창구가 되었다. 업데이트 소식을 알리기도 하고, 내 한 달간의 MOODA 기록-그냥 앱 첫 화면을 캡처하면 된다!-을 올리며 유저들에게 이번 한 달은 어땠는지 묻기도 한다. 월말이 되면 유저들이 자신들의 지난 한 달간의 MOODA 기록을 자발적으로 스토리에 공유한다. 이때 MOODA 인스타 계정을 태그로 걸어주면, 내가 그 게시물에 간단히 코멘트를 붙여 MOODA 계정 스토리에 다시 공유한다. 그럼 그걸 다시 공유하는 유저들도 있다. 마음먹고 마케팅 용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 평소 친구들과 쓰듯이 자연스럽게 운영하다 보니 부담이 없다. 단, 글로벌 유저들을 위해 한국어/영어 같이 올린다. MOODA가 유저들에게 말을 건네는 형태의 앱이라 유저들도 더 친근하게 다가와주는 것 같다. 감사하게도 유저들이 팬아트를 그려 주거나, 직접 MOODA 키링을 제작해 우편으로 보내준 적도 있다.
이메일
앱 설정 화면에 '의견 남기기'를 클릭하면 MOODA의 Gmail 계정으로 메일을 보낼 수 있다. (단, 유저의 아이폰 설정에서 미리 이메일 등록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메일도 정말 많이 온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답장을 하진 못하지만 메일을 통해 유저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오류를 수정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번역을 도와줄 테니 자기 나라 언어를 제공해달라고 한 프랑스, 러시아 유저도 있었다. 리소스 부족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언어를 제공하고 싶다. 유저들과의 소통 채널이 많으면 좋은데 관리의 부담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소통 채널 및 내용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트위터
트위터는 계정만 만들고 운영을 하진 못하고 있다. 가끔 MOODA를 검색해 유저들이 올린 트윗을 눈팅하는 정도다. 일본과 태국 유저들이 가장 활발하게 트윗을 올린다. 트위터 바이럴로 가끔씩 태국, 일본 앱 스토어에서 순위가 급상승할 때가 있다.
우리 가족들도 MOODA의 헤비 유저다. 가끔씩 자신의 MOODA 첫 화면을 찍어 가족 대화방에 공유한다. 얼마 전 엄마가 공유한 8월 MOODA 화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파란색(우울)과 보라색(걱정)이 너무 많았다. 엄마는 코로나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다. 가끔씩 안부 전화는 하지만 엄마의 하루하루가 어떤 지, 그 속에서 엄마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안부 전화로는 알 수 없었던 엄마의 힘든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요즘 코로나로 모두 너무 힘들다. 마스크 착용 생활, 집콕 생활, 랜선 생활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마냥 길어지고 있다. MOODA를 통해 감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가장 큰 행복이다.
MOODA를 출시하고 일 년. 전 세계 26만 명의 유저가 MOODA를 다운로드 받았고, 매일 3만 명 이상의 유저가 MOODA에 일기를 쓴다. (한국, 중국, 일본, 태국 순으로 사용자가 많고 이 네 개 국가가 대부분의 비율을 차지한다. 이외에 대만, 미국, 홍콩, 싱가포르, 독일, 필리핀, 말레이시아, 멕시코, 캐나다, 인도네시아,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이탈리아, 스위스 등 전 세계 다양한 국가의 유저들이 MOODA를 다운로드 받았다. 글로벌 플랫폼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앱 사용 시간을 보면 주로 새벽인데 초기에 1분 남짓하던 체류 시간이 스티커 업데이트 이후 3분대로 올라갔다. 자기 전 잠깐 앱을 열어 3분 동안 '내 하루를, 마음을 돌아보고 그 끝에는 나를 응원하는 말을 적어보는' 것이다. (실제로 유저가 리뷰에 적어준 말이다.) 3분의 시간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쌓이다 보면 마음의 근육이 조금은 튼튼해지지 않을까. 유저들이 남긴 리뷰 중에서 MOODA를 통해 꾸준히 일기 쓰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는 이야기가 제일 기분이 좋다.
지난 일 년 동안 MOODA를 통해 배운 게 참 많다. 내 메모장 속에만 머물렀다면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현업 앱 제작자들에게 유용한 깨알 같은 꿀팁들도 많지만 이런 것들보다는 앱 제작 꿈나무들에게 내가 깨달은 큼직한 이야기들을 공유해주고 싶다. 단, 여기에는 내 경험과 취향이 반영되었으므로 걸러 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
최근 인상적으로 읽은 <의미의 발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제품의 유용성만으로 진정한 차별을 두기 어려운 시대다. 공급의 과잉 때문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 수월해졌고, 누구나 유사한 원제품을 구하여 공급할 수 있다. 소수의 혁신 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비슷비슷하다. 제품의 스펙만으로 구매를 유도할 만한 결정적인 요인을 구성하지 못한다면, 제품 외적인 영역에서 구매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구매 설득은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의미로 구성될 때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최장순, 틈새책방, 2020, p55
이 구절이 내게는 제품을 팔려면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편리하고 유용한 기능은 기본으로 갖추어야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나도 진심이어야 한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왜 만드는지 나만의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단순히 인기 카테고리의 아이템이라서, 시장 1등을 목표로, 명예를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만든다면 만드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는 새 길을 잃기 쉽고, 애초에 가서 닿을 진짜 마음이 없으니 유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다. 마음을 움직이려면 심플해야 한다. 복잡하면 마음은커녕 이리저리 눈길만 주다 지쳐 나가떨어진다. 손도 어디에 둘 지 몰라 헤매다 다신 열어보지 않게 된다. 핵심적인 기능만 심플하게 제공해야 한다. 기능을 하나 추가할 때마다 이게 정말 필요한 지, 왜 필요한 지, 어떻게 넣어야 가장 심플한 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또 마음을 움직이려면 감동 포인트가 있어야 하는데, 앱에서 이 포인트는 디테일이다. 혁신적인 기술에 우와-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 연인이 나의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고 챙겨줄 때 감동받는 것처럼 앱도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디테일하게 만들 때 유저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이려면 디자인이 아름다워야 한다. 예쁘면 눈에 들어오고 쓸 때마다 기분이 좋다. 너도 나도 다 비슷한 앱의 세계에서 아름다운 디자인은 갈수록 중요해질 것 같다.
전략적인 선택과 집중도 중요
철학, 심플, 디테일, 아름다움을 갖춘 앱을 만들었다 해도 저절로 알려지는 것은 아니다. 위에도 말했듯이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생명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업데이트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만약 경쟁이 치열한 환경이라면 단 한 번의 헛발질로도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선택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유저들의 리뷰를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유저들은 이미 정답을 다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맞는 팀'을 만나는 것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맞는 팀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어느 정도 운에 달려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효리 언니의 말을 되새기며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수밖에. 각자 가진 장점이 확실하고, 각자의 장점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수 있으며, 모두 겸손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만나는 게 베스트인 것 같다. 우리 팀이 100% 이렇다고 할 순 없지만 이 모습에 가깝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MOODA를 통해 만난 우리 팀은 지금 두 번째 앱을 준비 중이다.
MOODA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 해야 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Android 버전도 곧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업데이트해서 오래오래 사랑받는, 힘이 되는 앱이 되면 좋겠다. MOODA 출시 5년 후, 10년 후에도 그동안 배운 것들에 대해 끄적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