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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joge Dec 09. 2021

성공과 성장이라는 필터

<노 필터>를 읽고

#첫 인스타그램의 추억

  내가 인스타그램을 처음 쓴 건 2011년 IT 회사 모바일 전략팀에 입사하고 나서였다. 당시 팀원들은 모두가 아이폰을 쓰고 있었고(노키아폰을 쓰고 있던 나는 입사 직후 팀장님을 통해 비품 스티커가 부착된 아이폰을 지급받았다.) 매일 아침 티타임에 전날 새롭게 다운로드한 앱들에 대해 떠들곤 했다. 인스타그램도 팀원들을 통해 알게 돼 쓰기 시작했는데 사진을 올릴 때마다 어울리는 필터를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출근길 육교 위에서 찍은 풍경 사진에 필름 카메라 스타일의 필터를 입히거나, 점심시간 레스토랑에서 찍은 파스타 사진에 뽀얀 필터를 입혀 올리면 회사 동료들이나 얼리어답터 친구들이 눌러주는 '좋아요'가 대여섯 개 정도가 달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인스타그램은 전 세계에서 매달 10억 명 이상이 쓰고 있는 글로벌 서비스가 되었다.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켰고, '인스타스러운 인테리어' 표준을 만들어냈으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해서 아름답고 재미있게 꾸며 전시하는 습관을 가지게 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는 모두의 일상 전시 기획자가 되었다. 유저로서 매일 한 시간 정도 앱을 사용하고, 서비스 기획자로서 앱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나로서는 인스타그램의 탄생과 성장 스토리를 생생하게 기록한 책 '노 필터'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창업자의 철학

  인스타그램은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서비스다. 시스트롬은 자신의 철학을 어떤 '느낌'의 서비스로 구현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하나의 이미지로 전달하되 심플하고 정제된 형태여야 한다는 것, 콘텐츠는 창작들로부터 직접 나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항상 인스타그램이 '공유' 기능을 넣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단단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서비스가 반짝하고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트위터에서 160만 팔로워를 보유한 잭 도시처럼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알렸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은 출시 첫날 2만 5천 명의 방문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또한 인스타그램이 출시된 시기는 아이폰이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다. 사진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심플하지만 세련된 매력을 가진 인스타그램은 조악한 앱들이 우글거리던 초창기 앱스토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앱이었다. 이후 인스타그램은 앱스토어 1위, 한 주만에 사용자 10만 명 달성, 일 년 만에 사용자 천만이라는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인스타그램은 매력적인 제품이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 얼마나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구성원들의 열정과 노력의 총합

  책 속에는 인스타그램의 성장 과정에서 한몫을 한 여러 구성원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창업 초기 시스트롬의 채용 속도가 느려서 투자자들이 불만을 가졌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최고의 멤버만 채용해 뭔가 다른 걸 만들어낸다는 창업자의 자부심과 야심이 느껴졌다. 공동 창업자 크리거 외에 앱 출시 이후 초기 멤버들의 합류 과정도 꽤 자세히 다뤘는데 나중에 페이스북에 인수되고 나서 이 열정적이었던 초기 멤버들이 창업자 둘에 비해 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결국 하나 둘 떠나가는 과정을 보며 씁쓸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에밀리 화이트도 책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다. 페이스북에서 온 에밀리 화이트가 인스타그램의 정체성을 세 개의 키워드로-커뮤니티, 단순성, 창의력- 정리해서 페이스북에 전파한 사례를 보고 시스트롬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둘 다를 이해할 수 있는 인재를 곁에 두었기 때문에 페이스북 안에서 인스타그램의 독립성을 꽤 오랫동안 지켜나갈 수 있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인재는 나중에 경쟁사인 스냅챗의 COO로 간다.) 인스타그램을 셀럽의 성지로 만든 찰스 포치의 스토리도 재밌었다. 인스타그램은 수많은 셀럽들과 친밀한 네트워크를 따로 관리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셀럽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찰스 포치라는 인물이 있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신청해서 인스타그램의 공식 마크를 받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인스타그램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공식 마크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공식 마크를 탐나는 것으로 만든 이 전략 또한 셀럽들의 마음을 제대로 공략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인스타그램에서 추천 계정을 발굴하고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운영한 담당자들의 노고도 인스타그램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은 창의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리딩하는 커뮤니티를 지향했고 그 커뮤니티는 단순히 엔지니어링을 통해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운영 공수'가 들어갔다. 서비스는 창업자의 빛나는 철학으로만 성공할 수 없다. 서비스의 성공은 결국 모든 구성원들의 열정과 노력의 총합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한 성장

  유저로서 인스타그램의 업데이트를 직접 경험해온 나에게 이 업데이트 이면의 스토리를 읽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사용자들을 위해 '버그 잡고 성능 개선'한 사례도 많았을 테지만 인스타그램 업데이트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의 경쟁 상대 1호는 의외로 모회사 페이스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둘은 한 회사였지만 수면 밑에선 페이스북으로부터 독립성을 사수하고 견제를 이겨내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 인수 후 일어난 약관 사태-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의 약관을 수정했는데 사용자들의 사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용자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삭제 운동이 일어났다-를 수습하기 위해 시스트롬은 창업 이후 최초로 장문의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시스트롬은 페이스북이 제시한 수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광고를 허용했지만 페이스북의 방식을 차용하지 않고 인스타그램만의 방식으로 광고를 운영했다. 시스트롬이 광고주의 눅눅한 감자 사진을 직접 포토샵으로 보정했다는 일화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결국엔 페이스북의 방식으로 광고를 하게 됐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그렇게 하진 않았다. 인스타그램은 커뮤니티의 진정성을 위협하는 봇 계정들, 악성 댓글들과도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끝내는 창업자 스스로의 철학과 고집과도 한판 승부를 봐야 했다. 좀 더 부담 없이 재미있는 사진을 올리고 싶어 하는 유저들을 뺏기지 않기 위해 스냅챗의 스토리를 따라 만든 일화는 극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스토리를 론칭하고 나서 '경쟁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라고 인터뷰를 했을 때 시스트롬의 심정은 어땠을까? 또 스냅챗의 창업자 스피겔은 어땠을까? 총성만 없지 정말 전쟁이다. 살아남기 위해 업데이트해야 한다! 업데이트로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이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인기 있는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좋지만 인기 있는 것을 빨리 잘 따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페이스북이 만든 스토리를 보면 너무나 조악해서, 복제를 인정하지만 나름의 혁신도 인정해달라던 시스트롬의 말이 이해가 간다.


#노 필터의 필터

  책에서는 주커버그가 성장과 숫자에 집착하는 비즈니스맨으로 묘사된다. 인스타그램이 결국 페이스북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조치가 취해져야 했다. 페이스북의 성장을 위한 패밀리 서비스들과의 통합 전략이 본격화되자 시스트롬은 인스타그램의 독립성을 사수하기 위한 싸움에서 손을 놓는다. 그리고 새로운 영감과 세상의 요구를 찾아 회사를 나온다. 저자의 이런 설명이 공평한지는 잘 모르겠다. 시스트롬은 인스타그램을 페이스북에 팔아 큰돈을 벌었고 각종 운영 인프라 혜택을 받으며 서비스를 키워 나갔다. 성과를 인정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위협으로 느끼는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도 있었겠지만 나름 오랜 시간 독립성을 보장받으며 서비스를 운영했다. 타협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손을 놓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온 것도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인스타그램의 시작과 성공 스토리는 주인공과 악역이 있는 드라마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비즈니스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시대에도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그런 시대가 정말 올 지,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늘어날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써 나가는 이들이 비단 시스트롬이나 저커버그 같은 실리콘밸리 엘리트들 뿐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어떤 필터로 세상을 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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