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어른의 일기>를 읽고
제대로 읽고, 읽은 대로 사는 삶.
작년에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다음 문장을 만나고 여러 번 읽으며 곱씹어 봤었다.
'반복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문장으로 줄여보면
'제대로 읽으면, 읽은 대로 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수많은 책을 읽고도 '아, 정말 좋은 책이다.' 정도만 느끼고 그걸로 끝이었던 것 같다. 사사키 아타루의 말처럼 정말 '제대로' 읽었다면, 읽은 대로 행동하며 내 삶에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제대로 읽으면 정말 읽은 대로 살 수밖에 없을까? 이런 질문들이 마음속에 떠올랐지만 더 깊이 파고들진 않았다.
이번에 친구들과 김애리의 '어른의 일기'를 같이 읽었다. 20년이 넘게 일기를 써 온 작가의 에세이였다. 책에는 작가가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지, 어떻게 써 왔는지 굉장히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친구들은 하나같이 앞으로 감정 일기를 쓰며 나에 대해 알아가고 돌봐주겠노라고 다짐했다. 나도 그동안 내가 나의 감정이나 내면세계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 외부 세계에 더 집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사키 아타루의 표현을 빌리면 '외부의 명령을 수집하는 데' 급급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읽기 전에는 하지 않았던 것들-브레이크 없이 엑셀만 밟고 달리듯 솔직한 감정들을 써 보기, 나의 감정들을 잘 돌보고 품어주기-을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왠지 그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에야말로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닌가! 정말 읽은 대로 살게 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제대로 읽은 비결은 무엇인가? 그건 이 책이 최근 가장 강하게 품고 있는 나의 욕망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닌, 나만의 고유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싶다.-을 건드렸기 때문인 것 같다. 조급하고 답답한 상태로 어떻게 하면 될지 몰라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는데 '너에게 집중해. 너를 잘 들여다보고 돌봐주고 믿어줘. 두려워하지 말고, 네가 진짜 원하는 걸 하나씩 해 봐.'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머리로만 읽은 게 아니고 머리와 가슴으로 동시에 읽은 것이다.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진 감정들, 욕망에까지 발을 디뎌가며 문장들을 읽어 내려간 것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 자신의 꿈도 마음도 신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일체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내던지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온몸과 마음을 다 해 읽는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제대로 읽으면 읽은 대로 살게 되는 것일까?
심불시불(心不是佛), 지불시도(智不是道)
마음이 곧 부처는 아니고, 앎이 곧 길은 아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곧 부처는 아니고, 앎이 곧 길이 아니라 했다. 깨닫는 것과 깨달은 대로 사는 일은 별개라고 할 정도로, 그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과 행동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것은 무엇일까? 의식적인 노력, 훈련일 것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책에서 "시장 안에서 우리는 매일 자신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생산성을 위해, 효율을 위해, 그것도 하나의 '인간을 훈련한다'는 '예술=기예'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이나 문학 또한 이 인간 신체의 통치 또는 훈련이라는 수준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고도했다. 어떤 행동거지를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것, 이것이 자신이 숭배하는 것이며, 그 숭배는 한 사회 안에서 교육되고 훈련된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숭배하며 살고 있는가? 내가 제대로 읽고 훈련을 통해 읽은 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숭배하며 살지 결정하는 일이다.
제대로 읽고, 읽은 대로 사는 삶. 세상과 만나고, 몸과 마음으로 읽고, 매일의 훈련을 통해 읽은 대로 사는 삶에 관해 내가 만든 이론은 다음과 같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1. 삶의 프로세스
우리는 [감각 - 감정 - 생각 - 행동]의 프로세스를 통해 삶의 변화, 흐름을 만들어낸다.
각각의 단계에 대해 자세히 서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감각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내 몸의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때, 활자를 읽는 눈의 감각으로도 읽고, 종이를 만지고 밑줄을 긋는 손의 감각으로도 읽는다.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의 모양과 색을 보는 눈의 감각으로도 먹고, 냄새를 맡는 코의 감각으로도 먹고, 맛을 느끼는 혀의 감각으로도 먹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외부의 것을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감각도 활짝 열려있고, 어떤 사람은 몸 자체를 잘 안 움직이고 움직이더라도 감각이 무디다.
[2] 감정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와 접촉한 나는 '좋다, 싫다, 두렵다, 설렌다, 감사하다, 혐오스럽다...'등 수많은 감정들을 느낀다. 감정들을 마치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처럼 내 마음속을 부유한다. 한 번에 여러 감정이 들기도 하고, 쓰나미처럼 몰려오기도 한다. 이때 감정들은 '뿅'하고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습관적이 된 것들, 심지어는 아주 깊은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던 것들일 수도 있다.
[3] 생각
감정들이 가라앉기 기다렸다가, 가만히 들여다보고, 이름 붙여보고, 그것들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것이 바로 '생각'이다. 이 작업은 쉽지 않다. 이름 없는 감정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어야' 할 수도 있다. 이때 '잘 모르겠다.'라고 대충 얼버무리는 건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또 머리만 써서 쉽게 생각한 것들, 어디서 들은 것을 빌려서 생각한 것들은 금방 휘발된다.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움직여 깨달은 것들, 무의식에까지 발을 내디뎌 치열하게 생각한 것들은 내 마음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는다.
[4] 행동
진심으로 깨달았다면, 깨달은 대로 행동해야 한다. 행동에는 의식적인 노력, 훈련이 필요하다.
무수한 반복을 통해, 이 행동을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훈련해야 한다. 훈련은 어디 특별한 곳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의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일상이 우리가 가진 인생의 전부다."라고 말했다.
[5] 변화
행동하면 크든 작든 변화가 찾아온다.
톨스토이는 "작은 변화가 일어날 때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라고 말했다.
[6] 흐름
반복적인 변화는 어떤 흐름, 방향을 만들어낸다.
행동 이후에 찾아오는 변화나 흐름은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완벽히 내가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감각에서 감정의 단계까지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이 과정이 곧 '경험'이다.
감정에서 생각의 단계로 넘어가려면 의식적인 노력, 에너지가 필요하다.
생각에서 행동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도 의식적인 노력, 에너지가 필요하다.
행동 이후 변화와 흐름의 단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에너지가 많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감정에서 생각의 단계로 넘어가고, 생각에서 행동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필요한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질문에 이르자 불현듯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떠올랐다. 물리학은 잘 모르지만 대충 '에너지는 그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곳으로 전달할 수 있을 뿐 생성되거나 사라질 수 없다.'라고 한다면, 내적 에너지의 근원은 결국 내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 세계의 에너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에너지 보존의 법칙
내가 세상에서 감각을 통해 만나는 것들은 모두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결국 바깥의 에너지가 내 안에서 내적 에너지로 전환되어, 나의 고유한 프로세스 - 감각 > 감정 > 생각 > 행동-가 돌아가도록 해 주는 게 아닐까?
결국 ‘세상과 만나는 일 = 경험’이 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다.
3. 순수한 에너지 이론
세상에는 좋은 에너지도 있고 나쁜 에너지도 있을 텐데 나를 위해 좋은 에너지를 취하자.
또한 바깥의 것들을 남의 눈을 통해서 혹은 세상의 잣대로만 바라보면, 나의 고유한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 에너지는 쉽게 고갈되거나, 오히려 내가 가지고 태어난 잠재력을 갉아먹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편견 없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전의 경험을 통해 얻은 감각을 총 동원해 몸과 마음을 활짝 열고 세상을 매일 새롭게 경험하자.
'편견 없음, 순수함' 필터에 정화시킨 외부 에너지를 나의 내적 에너지로 전환시켜 나만의 고유한 내면세계를 매일 조금씩 새롭게 만들어가자.
결국, 제대로 읽고 읽은 대로 살기 위해서는 연습, 연습,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연습,
세상과의 만남에서 생겨난 내 감정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것들의 의미를 깨닫는 연습,
깨달은 대로 행동하는 연습.
<어른의 일기>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의 습관, 태도, 마음. 이게 전부다.'
사실 <어른의 일기>에서 제일 좋았던 구절은 이거였다.
'작은 씨앗 하나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줄기를 지탱할 튼튼한 뿌리와 나무 기둥까지 다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나라는 고유한 씨앗이 마음껏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 수 있게 물을 주고 바람을 쐬주고 햇빛을 쐬주자.
법정 스님의 책을 읽고 메모장에 적어놓은 구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며 글을 마무리한다.
'본질에 집중하고
본질 이외에 것들에 집착하지 않는다.
본질은 나다운 것이다.
나다운 것은 내가 갖고 태어난 것으로
나다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내 안에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구해야 한다.
자기답게 살려는 사람이 자기답게 살고 있으면 환희심으로 충만해진다.
꽃다운 삶.
꽃은 다른 꽃을 닮으려고 하지 않는다.
꽃은 자기가 가진 빛깔, 모양, 향기를 온전히 발산하며 우주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