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특강 : 신앙인의 용서 (박현민 베드로 신부)를 듣고서
6개월간의 교리공부가 모두 끝나고, 3월 22일 세례식을 앞둔 수요일, 본당 성전에서 사순특강을 들었다. 오전에만 들르던 성당을 밤에 가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직 공기는 쌀쌀하지만, 집에서 성당까지 30여 분간 천천히 걸으면서 기분이 상쾌하고도 경건해졌다. 역시 나를 공짜로 반겨주는 곳이 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속세에서 1시간이 넘는 명사 특강을 들으려면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성당에서는 미국 유학을 다녀오신 [심리상담 전문 박사]의 강의를 공짜로 들려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오늘 강의를 해주신 박현민 베드로 신부님은 현재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인 레오 14세와 대학원 동기라고 하였다. 그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나, 유명인과 동기라고 하면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게 속세인인 나의 시선이니까, 재밌다고 생각했다.
1시간 15분여간 쉬지 않고 계속된 강의는 내게 큰 인사이트를 남겼다. 내게는 평생 용서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박아둔 사람이 있는데, 내 평생을 힘들게 한 사람이다. 그분을 사랑하고도 미워했고, 애처로워하면서도 혐오했으며, 그리워하면서도 멀리했다.
만 49세의 나이에도 충분히 사랑하지도 충분히 내치지도 못한 어정쩡한 관계를 언제 끊어낼 수 있을까? 그로부터 받은 상처를 지금도 털어내려 고민하는 나의 고통은 어디서 보상받을까 하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괴로웠고 억울했기에, 오늘 [신앙인의 용서]라는 특강은 내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피해자, 그가 가해자라는 생각에 오롯이 박혀서는 용서도 화해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가해자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살펴보고, 객관화해 본 후, 지금의 불행이 과연 가해자에게서 100프로 온 것인가 둘러보라고 했다. 나의 선택이나 결정은 조금도 없었는지, 나의 영향력을 잊어버리고 가해자의 힘 안에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둘러본다는 것은 성경에서 말한 [회개]의 개념이라고 한다.
회개는 내 죄를 성찰하는 것 외에도, 같은 상처를 다른 방식으로 본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영어로 말하자면 [Look at it different ways. See it differently.]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상처와 가해자에 대한 생각의 방식을 다르게 접근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피해자이기만 한 생은 없다고, 기나긴 삶 속에서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내가 피해를 준 대상이 아닌 다른 이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고.. 그런 일의 연속을 [삶의 연결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고 하였다.
또한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용서와 화해는 너무나 고차원적인 레벨이라, 지금 당장 그것이 되지 않는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으며, 신앙생활 30년이 넘어도 되기 힘들다고 한다. 사제인 신부님조차도 트라우마를 잊어버리는 일, 가해자를 증오하는 일을 멈추기는 힘이 든다니, 오히려 그 점이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되었다.
나의 가슴속에 가시처럼 박힌 그 사람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내 맘속에서 빠져나오길. 너무 많은 애씀과 고통으로 빼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내 삶에서 희미해지기를 바라본다.
그 자유롭고 평화로운 날이 올 때까지 내 마음을 하느님께 의지하며 기대어본다. 그리고 오늘도 기도한다.
주님, 외롭고 슬픈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