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싱가포르에서 6년째 뜨거운 햇살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 아침 햇살은 더 뜨겁고 눈부시다.
뜨겁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나를 찾아온 친구처럼 나의 기분을 한껏 올려 준다.
나는 기분 좋은 텐션을 유지하면서 행복한 나의 아침을 맞이할 권리를 갖고 싶다.
그러나 이를 와장창 무너뜨려 버리는 그것이 있다.
소음. 층간소음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해야 되는데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온다.
12.15pm 윗집 아이가 유치원에서 올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에 조용했으니 분명 오후에는 뛰어다니고 난리가 날 텐데…… 나의 마음은 초조해진다. 속이 메스껍고 식욕이 없어진다.
우리의 층간 소음에 대한 고통은 1년 8개월 전 우리가 이사를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계약을 하기 전에 집을 보러 왔을 때는 그들이 장기 여행 중이었다. 오 마이 갓!!!
현재 윗집에는 6살과 3살이 살고 있다. 그들이 소음의 주된 원인이다.
episode 1
아침에 아이들이 마스터룸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다다다다다ㅡ 걷는 법이란 없다. 무조건 뛴다. 그러다가 내 머리 위 정도에서 장난감을 떨어뜨린다.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깬다. 몇 분 간격으로 들어와서 뛰어다니다 나간다. 나는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어 일어나 이불을 정리했다. 6.30am
episode 2
유치원에 간 아이가 뛰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밥을 먹고 뛴다. 댄스타임이라고 춤까지 춘다. 뛰기 시작하면 1시간은 기본이다. 2시간에서 3시간을. 댄스 신동인가. 그 나라 애들은 체력이 좋다는 걸 알았다.
episode 3
아이들이 블록을 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나도 마음속 에선 이미 같이 블록을 쌓고 있다. 블록이 쓰러질 시간이 다가오면서 나의 마음도 덩달아 불안해진다. 마음의 준비를 하자. 블록이 무너진다. 우르르르르.
episode 4
가구 끄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인테리어를 바꾸는 날이란다. 무슨 인테리어를 그렇게 자주 바꾸는지. 윗집 여자가 인테리어에 관심 많다는 걸 알았다.
episode 5
한 밤중에 자다가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나도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떨어졌단다. 정말 가지가지한다.
episode 6
갑자기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소음이 들려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를 넘었다. 1시간 30분 정도 지나자 샤워소리가 들리고 소음도 멈췄다. 예측 가능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 이건 이해하고 지나가기로 했다. 그들은 잠들었겠지만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episode 7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새벽 5시부터 소리를 지르면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소음은 3단 고음을 넘어선 소리이다. 정말 어린 나이에 목청이 트일 것 같다.
episode 8
아이가 뛰다가 의자를 넘어뜨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나는 천장이 뚫어지는 줄 알았다. 역시 나무 의자보다는 대리석 바닥이 단단하다.
episode 9
문이 부서질듯한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동생이랑 싸우면서 화가 나서 그런다고 한다. 싸움까지 잘한다. 못하는 게 뭘까.
episode 10
플레이 타임이라고 쉴 새 없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집 친구들까지 와서 셋이서 뛴다. 역시 친구는 닮는다더니 친구도 너무 잘 뛴다. etcetc.
오랜 시간 이 층간소음을 감당한다는 것은 정말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젠틀하게. 나도 아이를 키워 본 입장에서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음악 소리 같은 것은 이해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바닥에 무엇을 던지거나 떨어뜨리거나 두드리는 소리, 의자를 끌거나 가구를 끄는 소리, 아이들이 2시간 이상 뛰어다니는 것은 견디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서로의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면서 최소한 이웃주민으로서의 매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소음이 있을 때마다 문자를 주고받기로 했다. 그렇게 1년 8개월이 지나갔다. 소음으로 인해 그들과 수십 번의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생활했다.
그런데 이 층간소음이 심해진 것은 코로나와 겹쳐지면서부터이다. 이곳에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코로나로 인해 거의 모든 시간을 집 안에서 생활해야 했었다. 우리의 고통은 극에 달해졌다.
우리가 문자를 보내면 경우에 따라 쏘리를 하기도 하고 자기네 소리가 아니라고 발 뼘을 했다. 그깟 쏘리가 뭐라고…... 스트레스받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쏘리라고 말하면 그래도 마음이 진정이 되면서 그 날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발 뼘을 하면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증거로 많은 것을 녹음해서 들려줬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어떤 경우에는 소음을 내는 것은 쏘리지만 자기들도 애들 뛰지 못하게 하느라고 너무 스트레스받는다고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적반하장이다
쏘리는 그냥 단지 쏘리였을 뿐 나아지는 게 없었다.
쏘리만 잘한다.
하이 대신 쏘리를 하나.
층간소음은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끝이 없는 터널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루를 의미 없게 만들고 생각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상쾌하게 맞이할 나의 아침을 빼앗아갔다.
우리는 바닥에 매트를 깔 것과 의자 다리에 소음방지용 끼우 개를 제안했다. 그들은 소음을 줄일 것이라 했고, 의자 다리에는 무언가를 붙였다. 그러나 매트는 깔 수 없다고 했다. 윗집 여자는 인테리어의 문제로 처음에는 안된다고 얘기했고, 지금은 위생문제로 할 수 없다고 했다. 매트 까는 것은 너희의 선택이고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소음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것은 아직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층간소음이 진행 중이다.
서킷브레이커가 계속되면서 나는 세 달 정도 극심한 소음에 시달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구토 증상이 생겼다. 배까지 아프고 소화가 되지 않았다.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진단을 병원에서 받게 되었다. 정말 스트레스는 없던 병도 키운다는 말이 맞다. 그래서 윗 집에 나의 상황을 얘기하고 소음을 줄여줄 것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그들은 쏘리라고 했다.
잘 자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의사는 말하지만 윗 집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게 잘 되질 않는다. 우리가 원할 때 쉬거나 자는 것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이다. 생각을 바꾸면 될까 해서 나는 윗 집에 나의 조카가 산다고 생각하면서 소음을 견디기도 했었다. 층간소음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화가 난다고 마음 가는 대로 할 수가 없다. 관계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맺어져 있는 것이고 나는 그 관계속에서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니까. 그 관계를 최대한 매끄럽게 이어가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관계를 잘 풀어가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앞 집 이웃하고의 관계. 윗 집 이웃하고의 관계
앞 집 이웃하고는 관계가 좋은데 윗 집 이웃하고는 관계가 그닥.
관계는 수평적일 때 비교적 편하고 수직적일 때는 편하지 않다는 어떤 삶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묘한 철학적인 느낌이 느껴진다.
오늘 아침 윗집 식구들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무슨 말을 할까. 나는 이 관계를 유지할까 무너뜨릴까 오늘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