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그 맛을 모른다. (유교 경전 '대학')
공부를 잘했어도 의사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유는 어릴 적 깨진 무릎의 딱지를 뜯는 언니의 모습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파 보이기도 하고, 피딱지가 징그러웠다. 건강검진 시 피를 뽑아야 할 때 팔에 들어오는 주삿바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찔끔 감는다.
신형건 님의 봄날은 무릎에 생긴 딱지를 꽃씨 같다고 보았다. 그래서인지 이 시를 읽으며 봄이 떠올랐다. 딱지를 보면 징그럽다, 보기 싫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다르게 봄을 말할 수 있는 힘은 볼 줄 아는 힘에서 나온다.
엄마, 깨진 무릎에 생긴
피딱지 좀 보세요.
까맣고 단단한 것이 꼭
잘 여문 꽃씨 같아요.
한번 만져 보세요.
그 속에서 뭐가 꿈틀거리는지
자꾸 근질근질해요.
새 움이 트려나봐요.
신형건, 봄날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를 읽은 후 간장게장을 먹을 때마다 엄마 꽃게의 마음이 생각나 괜한 죄의식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게딱지에 밥을 비벼먹고 게다리의 양념과 살을 쪽쪽 빨아먹는 나의 모습을 마주 할 때면 양면성에 놀라곤 한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힌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스며드는 것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살고 있을까? 또 무엇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며 지내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최근 "저한테 왜 잘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이 말을 듣고 잠시 당황했지만 내가 보지 못한 것, 상대가 보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상대의 성향을 잘 알았어야 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적당하다 생각한 온도가 상대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상대는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끼며 누군가와 연락을 하는 것이 싫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다 보니 자신을 향한 응원과 관심도 싫었다.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상대를 볼 줄 몰랐던 것이다.
삶을 풍요롭게 그리고 유연하게 살기 위해서는 깊은 마음과 넓은 귀가 필요한 듯하다. 가끔은 두 눈을 부릅뜨고 가끔은 실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들을 흘리지 않고 마음에 저장해 두는 것이 필요한 듯하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과 달, 매일 출근하는 직장, 매일 보는 얼굴들을 그저 뻔한 의미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다 보면 일상의 많은 것들을 놓친다.
매 초 숨을 쉬지만 하늘 아래 단 한 번도 같은 호흡은 없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라지만 단 하루도 똑같은 날은 없다.
결국 뻔한 것들을 뻔하지 않게 만드는 힘은 세상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