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들 일 중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시야의 확장 아닐까
경험속에서 자연스레 습득되는 경우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시야를 넓혀 성장하지 않으면, 한낱 우물속의 개구리로 평생을 살아갈 뿐이다.
뭐, 시야를 넓히건, 그렇지 않건
어차피 우물속의 개구리가 인간의 숙명인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조금씩 넓어지는 시야속에서 얻는 깨달음과 성장이
내 나이 마흔들어, 나에게는 기쁨과 행복으로 자리잡았다.
이것이 늙어감의 매력이라고 확신했으며,
그래서 늙어지는 나 자신 역시 이전보다 더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내적으로 성장한다는 느낌,
세상의 잣대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과거 세상을 맞이했던 소극적인 태도와는 다르게 자발적이고 능동적, 건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가치의 기준점.
그래서 한동안, 진심으로 충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에 너무 감사했고,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고,
누가 사회적으로 더 성취해도 부럽지 않았고, 그 자체를 진짜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던 적이 있다.
그때는 한참 새볔녘의 시간에 매료되었던 시기였는데,
이것이 So called, 나의 미라클 모닝이였던 것 같다.
혼자 고요하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새볔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느냐, 무엇으로 너의 새볔을 채우는가, 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 같는데,
나는 먼저,
일어나서 씻고, 커피 한잔을 타고, 내 책상에 앉아서 눈을 감고 고요하게.
나의 내면과 이야기를 하곤 했던 것 같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번쩍거리는 세상,
남는 것 없이 하나 없이 손가락 사이로 우수수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흘러가는 하루하루
정신없이 분주함 속으로 빨려들고 정신을 못차리려는 찬라,
고요하게 나를 잡아주는
하루 내, 가장 행복하고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
그런데 이런 충만감도 계속 지속되지 않는다.
충만감이 사라지는 계기?
뭐,
술 한번 진탕 먹고 몇일을 꼬박 숙취에서 고생하면서.
오후쯤 마신 커피 한잔에 밤을 꼴딱 세고, 바이오리듬이 바뀌면서
남편과 싸우고 감정선의 변화
가족간의 문제
기타 등등 삶의 여러 요소들에 의해, 순간
나의 의지력을 상실하게 될 때
뭐 이런 저런 잡다한 문제들로,
그것을 계기로
혼자만의 시간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면서
살 빼는 것 어렵지만, 살 다시 찌는 건 금방인 것 처럼
그렇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금새 금방 원상복귀
다시금 불안 초초 경쟁의 세계 안에 놓여진 연약한 모습으로 come back
금새 충만감을 잃어버리고
세상을 비탄하고 핑계거리를 찾게 되고.
세상
그 모든 것은 그대로 있으며
간교하게 변하며 바뀌는 것은 오직 나 뿐이며
그렇게 변한 나로 인해 내가 맞이하는 세상이 달라진다.
동일한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오늘 어제 새볔 기상을 했다.
별다른 감흥 없이
충만감이 여며들지 않았지만,
우선은, 절대 놓지 말하야 할 것들
내가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들
그런것들을 꾸준하게 지속시키는 힘이 지금에서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자기 머릿속 세상을 진실, 하나뿐인 답이라고 믿고 사는 것처럼 교만하고 어리석은 것이 없다.
시야를 내 안에, 나의 좁디좁은 머릿속에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확장 시키는 것.
시야를 내 경험을 벗어난, 내 머릿속을 뚫고나와 넓디 넓은 세상 밖으로 드러내 놓고,
세상을 넓게 이해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
절대 흔들리지 말고
이것 하나만은 끈질기게 앞으로 끌고 나가야 하는 것.
그래야 비로소
사회의 틀이 아닌,
내 소신의, 내면의 결정을 믿고 따라갈 수 있는 확신이 생길 수 있다.
깨어 있자고.